한겨레21 진단

법을 바꿔야 여성이 바뀐다

(사진/근로기준법도 구체적인 시행령에 들어가면 여성차별적 요소가 여전하는 게 여성계의 주장이다. 여성단체연합 실무회의 모습.)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1조 제1항)

우리 헌법은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차별하는 일체의 행위는 따라서 헌법을 어기는 것이다 .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하지 않은 결혼생활이나, 성별에 따 라 근로의 조건을 달리하는 것 따위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종종 그런 법조문을 비웃는다. 심지어 법 자체에 여성을 차별하는 규정이 담겨 있기도 하다고 여성계는 지적한다.


긍정적 차별, 모성보호법령

일반적으로 여성을 달리 대우하는 법령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말 그대로 여성을 차별하는 법령이다. 남성에 비해 기회와 대우를 제한하 거나 배제해, 그 결과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줄 우려가 있는 법령을 가리킨다. 둘째는 모성을 보호하는 법령이다. 임신, 출산, 수유, 생리와 같이 여성에게 고유한 모성기능을 특별히 보호하는 경우다. 셋째는 여성 보호법령으로 정치적으로 여성에게 특혜를 주거나 여성고용을 촉진하는 따위의 법령을 가리킨다.

여성계가 문제삼는 것은 물론 첫번째 경우다. 모성보호법령은 남녀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기초를 두고 남녀를 달리 대우하는 것이어서 평등의 이 념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여성보호법령은 최근 평등의 관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으나 여성이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이를 성차별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1975년 채택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은 “남녀 간에 사실상의 평등을 촉진할 목적으로 실시하는 잠정적 여성우대 조처는 성차별로 보지 아니하나 기회와 대우의 평등이라는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중지되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차별 법령은 대부분 부계혈통주의나 출가외인의 관념, 남 성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관에 기초한다. 특히 이런 뿌리가 깊은 가족법이 지난 90년 1월13일 상당 부분 남녀평등의 방향으로 개정됐음에도 다른 법 령에서는 여성차별 조항이 여전하다고 여성계는 지적한다. ‘여성은 가정 , 남성은 사회’라는 말로 압축되는 성별에 따른 역할분업에 근거해 여성 의 사회적 기회나 대우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용 및 경제활동에서의 여성차별은 그동안 계속적으로 누그러져 왔다. 사실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여성을 연소자에 버금갈 정도로 보호하고 있다 . 여성은 야간과 휴일근로가 금지돼 있고, 임산부일 경우 시간외근무를 제한하는 등의 보호를 받는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은 우리나라의 대표 적인 여성보호법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도 국제노동기준 에 비하면 모성보호 규정이 빈약하고, 특히 구체적인 시행령에 들어가면 여성차별적 요소가 여전하다는 게 여성계의 주장이다.


군 제대자 가산점 부과도 논란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으로 신체에 장해를 입었을 경우 사용자로 하여금 그 장해 정도에 따라 일정한 금액을 보상하도록 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행령으로 보상의 기준이 되는 신체등급을 정하 고 있다. 여성계는 이 기준이 성별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한다. 현행 신체 등급표에 따르면 ‘외모에 현저한 추상(醜傷)이 남은 여자’는 ‘양쪽 고 환을 상실한 남자’와 똑같이 7급으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외모에 현 저한 추상이 남은 남자’는 ‘외모에 추상이 남은 여자’와 마찬가지로 1 2급에 해당한다. ‘외모에 추상이 남은 남자’는 가장 낮은 14급으로 책 정돼 있다. 여성의 경우 외모의 부상을 남성의 성기능 상실과 맞먹는 장 해로 보는 것이다. 이는 여성에 대해선 외모를 중시하고 남성에 대해선 성기능을 중시하는 사회통념을 반영한 결과로 지적된다.

제대 군인의 취업보호를 규정한 국가유공자예우 등에 관한 법률에서도 여 성차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성계는 공무원 공개채용시험에서 제대 군 인에게 가산점을 주도록 한 규정을 문제삼는다. 물론 가산점 부여제도는 남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도 병역법 또는 군인사법의 규정 에 따라 소정의 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하면 이 제도를 적용받는다. 그러 나 우리나라에서 남성은 강제징집의 대상인 반면, 여성은 지원하는 경우 에만 군 복무를 할 수 있어 대부분의 제대 군인은 남성이게 마련이다. 결 국 이 규정 역시 간접적이나마 여성차별을 담고 있는 셈이다.

사회보장 부문에서의 여성차별은 여성의 경제활동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한다. 이 경우 여성의 가사노동을 인정하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지난 2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여성의 국민연금법 확보 방안에 관한 토론회’에서는 국민연금법의 여성차별적 요소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김용하(36)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부가 이혼했을 경우 남편 이름으로 가입한 국민연금도 자동적으로 아내가 분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국민연금법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여성을 남 편의 부양가족으로 취급해 가입자인 남편과 이혼하면 연금을 받지 못하도 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소송을 제기해야만 남편의 연금을 나눠받을 수 있어 아내의 가사노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 다.

국민연금법은 유족연금 부문에서도 여성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다. 연금에 가입한 남편이 숨지면 아내는 아무런 제한없이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으 나, 남편이 유족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60세 이상이거나 2급 이상의 신체 장해에 해당해야만 된다. 또 아내가 18세 미만 또는 장해등급 2급 이상의 자녀와 생계를 같이 하지 않을 때는 50세 이전이라도 유족연금의 지급을 정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여성이 남성의 피부양자라는 사회인식을 그 대로 반영하고 여성의 경제능력의 한계를 50세로 보는 편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남녀가 동일한 갹출료와 조건으로 보험가입을 하더라도 여성이 사망하면 유족들의 보험 혜택에서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재산형성 기능 무시당한 전업주부

상속세법에서 세금부과 기준을 성별로 구분한 것도 여성차별에 해당한다. 상속법은 상속재산 가운데 각자가 받은 재산의 점유비율에 따라 상속세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이때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되지 않는 재산 또는 채무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으로 피상속인의 성별을 들고 있다. 게다가 상 속세 과세가액에 산입되는 공익사업의 요건을 구성하는 특별한 관계에서 모계혈족보다 부계혈족의 친족 범위를 넓게 잡고 있다. 여성계는 이런 것 들이 상속세법의 여성차별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계가 특히 상속세법에서 문제삼는 부분은 이 법이 여성의 가사노동에 의한 재산형성 기능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속세법에 따르면 여성 이 이혼을 할 경우 남편과 분할하는 재산에는 증여세가 부과된다. 증여라 는 개념 자체가 여성의 가사노동을 배척하고 있다. 혼인중 부부가 같이 노력해 모은 재산을 아무 노력없이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재산상속과 같이 보는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선 자신의 재산에 세금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 다. 여성계는 또 배우자간 상속·증여세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배우자간 상속·증여세는 현재 공제의 폭을 넓히는 데 그치고 있다. 한국 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배우자간 상속·증여세가 완화된 것은 여성계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여성계의 기본입장은 비과세”라고 강조한 다. 세금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부부가 공동으로 일군 재산에 대해 상 속·증여세를 물리는 것은 여성을 경제적 무능력자로 취급하는 남성중심 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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