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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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대선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선구도는 여전히 복잡하고 어 지럽다. 가장 큰 원인은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의 내분 때문이다. 당의 공 식 후보를 밀어내려는 이른바 ‘10월 대란설’이란 예고 속엔 내분의 깊 이와 폭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정세력, 10월10일을 D데이로
신한국당은 9월30일 대구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후보를 당의 최고책임자인 총재로 선출함으로써 이회창 체제를 구축했다. 이로 인해 이 후보는 당내 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1인자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이 후보의 당내 위치가 형식적인 지위에 걸맞게 자리매김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 다. 후보교체를 노리는 세력이 공공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정치 적 쿠데타, 반정(反正)을 노리는 셈이다.
‘반정세력’은 일단 10월10일로 D-데이를 설정해놓고 있다. 그때까지 이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을 경우 후보교체를 공식화하겠다고 벼르고 있 다. 이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정당은 정권 장악이 최대의 목표인데, 정권 장악의 수단인 대통령 후보가 약체라면 당연히 강한 후보로 교체해야 한 다는 것이다. 정권이 있고 난 뒤에 경선도 민주주의도 있다는 논리이다.
7월21일 신한국당 전당대회 직후부터 이 후보를 흔들어오던 반정세력은 당초에는 한가위 연후 바로 뒤쯤 명분을 쌓은 뒤 탈당한다는 계획이었으 나 최근에는 당 잔류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당내 분위기가 서둘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흘러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한가위 이후에도 올라가지 않는 데다가 오히려 주류 내부에서도 흔들리는 기미가 나타난 것이다. 비주류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잘만 하면 내부에 남아서도 이 후보를 낙마시킬 가능성이 커졌는데 우리가 왜 미리 나가느냐”고 반문했다. 서석재 의원 등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내가 왜 탈당하느냐” “이 당이 누가 만든 당인데…”라고 목소리를 높 이고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 여유까지 보이고 있다. 이 대표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1 0월 초순까지는 일단 흔들기를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서청원 의원 그룹 은 특히 26일 회동에서 “마치 (비주류 인사들의) 노력이 없어서 정권재 창출이 안 되는 것 같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우 선 당이 전당대회를 계기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거듭나는 데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이는 ‘이 후보의 지지율 저하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비주류의 줄기찬 흔들기 때문’이라는 당내 비판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앞으로 공격의 명분을 쌓기 위한 작전상 후퇴인 셈이 다. 이들은 이후에도 이 후보의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을 경우 후보 사퇴 를 위한 총공세를 편다는 계획이다.
밀어보고 안 될 때는…
(사진/지난 9월26일의 신한국당 당무회의 당무위원들은 이회창에 힘을 모아주기로 했지만, 표정이 어둡다. )
이에 대해 9월30일 전당대회에서 당 총재로 지위가 격상된 이회창 후보는 ‘어떠한 경우에도 후보사퇴는 있을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TV토론과 당 소속 의원들과의 회동에서 “경선을 통해 선출한 후보를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교체하자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상 말도 안 된다”면서 “어렵다고 물러날 생각이라면 애당초 당 경선에 나서지도 않 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쪽은 후보교체론의 빌미가 되는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10월 한 달간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비주류에서 계속 흔들기를 시도할 경우에는 이들과의 결별을 감수한다는 방침이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내부 반대 세력을 지지부진하게 끌어안고 가봐야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면서 “이 제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된다는 분위기가 내부에서 우세하다”고 말했다 . 비주류와 정면대결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당내 분위기는 현재 이 총재쪽에 유리하게 잡혔다. 비주류가 당분간이라 도 조용히 있겠다는 한시적인 휴전을 선포한 데다가 주류쪽은 이 후보 밀 기에 발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덕룡 의원이 9월27일 기자간담회를 자청 해 “후보교체는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면서 “당인으로서 할 일 을 하지 않고 후보교체와 탈당을 거론하는 것은 정권재창출을 포기하는 것으로 문민정부를 창출한 정치세력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민 주계 비주류의 행동을 정면에서 비판한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박관용 의 원과 김형오 김무성 의원 등 민주계 중도파들이 경선 승복을 촉구하는 서 명운동을 벌이는 것도 ‘이회창 밀기’의 일환이다. 또 김윤환 고문도 일 본에서 조기 귀국, 전당대회에 참석해 이 후보와 이한동 대표의 손을 들 어줬다.
모두 ‘이 후보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 일단 해보자’는 행동들이다. 그러 나 문제는 이처럼 ‘한번 해본 다음’에도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비주류가 일단 입을 막고 있는 것은 바로 주류의 이런 ‘취약점 ’을 노린 것이기도 하다. 허주(김윤환 고문의 아호)나 김덕룡 의원 등 주류쪽 중진들은 비주류 인사들을 만나면서 “해보고 안 될 때는 그때 가 서 다시 대책을 논의하더라도 일단 한번 노력이라도 해보야 할 것 아니냐 ”고 설득했던 것이다.
비주류 민주계는 주류가 한번 해본 뒤에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으면 자신 들의 후보교체론에 주류쪽의 상당수가 동조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 다. 김윤환 의원 등 주류쪽 인사를 만난 서석재 의원, 박찬종 고문은 이 와 관련해 “나와 입장에 그다지 차이가 없더라”고 말한다. 지지율이 현 재처럼 3위에서 답보상태를 보인다면 김윤환 고문과 김덕룡 의원 등 주류 쪽 중진들도 나름의 ‘대책’ 마련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판 단이다.
대안은 누구로 통일할 것인가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들 주류쪽 중진들의 ‘대책’이 비주류와 동일하게 후보사퇴쪽으로 결론날지 여부는 미지수다. 대안문제에 대해 주류쪽 중진 들의 생각은 비주류와 다르기 때문이다. 즉, 서석재 의원 등 비주류 민주 계는 이 전 지사를 대안으로 선호하고 있지만, 김윤환 고문 등 민정계는 정서상 이 전 지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민주계의 새로운 좌장을 꿈꾸는 김덕룡 의원도 연하의 이 전 지사쪽으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주류쪽 중진들이 이인제가 아닌 다른 대안에 합의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현실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능가하는 대안적인 새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주류쪽은 야당을 하더라도 이 후보와 같이 가 는 길을 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민정계의 한 초선의원은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더라도 후보교체는 이 후보 본인이 거부하는 한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끝까지 이 후 보를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허주와 이한동 대표 등 민정계쪽은 특히 재집권에 실패한 뒤에도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의 내각제 개헌이라는 카드가 남아있다. 설령 민주계가 다 떠나더라도 내각 제 카드로 자파 세력을 보호할 수 있는 만큼 이 후보와 동행하는 명분을 따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 후보를 보호하는 정치적 세력이 있는 한 민주계 비주류가 반정을 당내 에서 성공시키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비주류가 선택 할 길은 동조자를 최대한 규합해서 탈당하는 길밖에 남지 않는다. 최대한 당내에서 이 후보를 흔든 뒤 집단 탈당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남아있는 셈 이다. 민주계의 동조자가 늘어나면 결국 민정, 민주계가 딴살림을 차리는 결과로, 동조자가 적으면 일부 반대세력만 당을 떠나는 것으로 결말날 것 이다.
10월 대란이 분당이냐 아니면 일부 탈당사태에 그치느냐를 결정하는 요인 은 궁극적으로는 이 후보의 지지율에 달렸다. 정가 안팎에서 이 대표쪽의 지지율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종철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