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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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연구를 목적으로 보스턴에 와보니, 여기에 ‘간선도로·터널 공사 ’(Central Artery/Tunnel Project)가 한창이다. 이 공사는 미국의 역사 상 지역(Local) 공사 중 그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복잡한 공정을 요하 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이를 ‘대역사’(大役事, Big -Dig)라 부른다. 80억달러의 예산으로 2004년까지 지속되는 공사다.
보스턴을 관통하는 오래된 고가(高街)간선도로는 복잡하고 막히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런데 흥미있는 사실은 1950년대 건설된, 이제는 낡고 흉 한 이 고가간선도로가 미국의 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 y)를 도심에 직접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운동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1950년대에 주민의 이해, 교통의 원활, 보스턴의 경제적 이익 사이에서 복잡한 모습으로 만든 타협점이, 지금은 엄청나게 증가해버린 교통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1950년대의 설계는 하루 평균 7만5천대의 소통을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약 20만대가 이를 이용하니 그 체증은 짐작할 만하다.
이 애물단지 고가간선도로를 손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는가였다. 간선도로를 막고 공사를 하면 보스턴으로 흘러 들어 오는 차량을 막아 보스턴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했다. 또 도심으로 고속도로가 통과하면 1950년대와 똑같이, 이 때문에 집을 잃는 사람들이 양산될 것도 분명했다. 이런 요소들을 고려해서 80년대에 새롭 게 얻어진 해결책이 도심 ‘지하’고속도로였다. 약 12km에 이르는 이 도 심 지하고속도로는 보스턴 ‘대역사’의 핵심이다.
시민의 삶과 교통에 방해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하도로는 주로 밤 에 건설된다. 파낸 흙과 먼지가 환경오염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이 흙을 보스턴 하버의 쓰레기처리 섬에 덮어, 이 섬을 시 민의 휴식공간으로 바꾸는 식으로 해결되었다. 쓰레기와 쓰레기가 만나 훌륭한 공원이 된 셈이다. 또 이 지하고속도로를 파는 동안 17세기 초엽 여기서 살던 사람들의 유물이 발견됐는데, 고고학자들을 대거 불러모아 이 유물을 손상하지 않고 공사하는 법을 연구하게 하고, 이 유물로 박물 관을 세우는 등 보스턴의 미래가 과거와 이 공사를 매개로 손잡는 재미있 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하도로를 건설하는 동안 증가하는 교통체증을 돌리기 위해 보스턴과 로 건공항을 연결하는 해저터널이 지난 95년 말에 완공됐다. 이 터널을 만드 는 동안 자연보호주의자들은 터널 공사가 물고기의 생존과 산란을 위협한 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해양생물학자와 해양물리학자를 모아 물고기 경보 시스템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공사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을 최소화한 것이다. 이 밖에도 보스턴의 지역마다 대표를 뽑아서 공사 진행에 주민이 직접 의견을 낼 수 있게 하고, 이런 의견이 기술 디자인에 반영되게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이에 참여하는 신문과 방송, 그리고 과학 박물관에 의해 전시되며, 이는 시민과 학생에게 ‘시민이 참여하는 기술 ’의 좋은 교육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시민들은 이 길고 짜증나는 공사 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즐거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스턴 대역사가 거대공사(Megaproject)의 새 장을 열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시민의 목소리를 배제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 발전된 기술 디자인을 위해 포용, 고려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 했다는 의미에서다. 마침 올해부터 MIT공과대학에 ‘공중참여의 경영’(M anagement of Public Participation)이라는 새 과목이 개설됐다. “시민 의 참여가 더 좋은 기술을 낳는다”는 정신은 전자주민카드를 막무가내로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기술관료와 기업이 한번쯤 새겨볼 얘기일 것이다. 홍성욱/ 토론토대학 교수·과학기술사 전공(필자는 1년간 안식년 휴가로 MIT 디브너 과학사연구소에 있을 예정입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