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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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차세대 정보검색 기술로 각광받는 푸시. 불필요한 정보를 쏟아내 사용자에게 불편을 준다.)
‘네트워크’(통신망)가 사람들 사이의 소통 방식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 력한 매개체로 떠올랐다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이제 별로 없을 것 같 다. 의사소통체계를 뒤흔드는 태풍의 진원지가 인터넷이라는 점 또한 명 백하다.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인터넷 등 온라인 관련 제품과 새 기술은 ‘아주 자주’ 사람들을 강박에 빠지게 한다. ‘컴맹’ 또는 ‘넷맹’이 라는 비판 섞인 호칭을 호기롭게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 역시 점차 줄어 들고 있다.
그러나 새 기술은 항상 좋은 것인가. 새 제품들은 업체들의 요란한 선전 만큼 뛰어난 성능으로 사용자들에게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편리함을 제공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미국의 온라인 뉴스업체인 ‘시네트’의 편집장 크리스토퍼 바는 최근 “인터넷 신화의 정체를 폭로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세 가 지 의문을 제기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진정으로 푸시 기술을 원하는 가. △56K 모뎀은 업체들의 선전처럼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가. △위성과 케이블(유선) 모뎀은 무한대의 통신대역을 보장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이 른 시일 안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보편화할 수 있는가 등이 그것 이다.
그가 제기한 ‘푸시’와 ‘56K 모뎀’, ‘위성통신’ 등은 국내에서도 정 보통신기술업체와 통신인들 사이에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는 화두들이다. 과연 실상은 어떤가. 사람들은 이것들을 인간의 기술력이 이끌어낸 ‘신 의 축복’으로 받들어야 하는가. 차분하게 따져보자.
필요없는 정보, 무엇이 밀어내나
‘푸시’는 인터넷 정보검색 프로그램의 최강자 넷스케이프와 소프트웨어 왕국 마이크로소프트(엠에스)가 인터넷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펼치 고 있는 혈전의 승부처가 될 차세대 정보검색 기술로 일컬어지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정보제공자(ISP)가 사용자의 컴퓨터에 자 동으로 ‘밀어주는’ 방식이다. 넷스케이프의 넷캐스터와 엠에스 인터넷 익스플로러 4.0판의 액티브 채널이 ‘푸시’기술을 지원한다.
두 업체의 선전대로라면, 인터넷 사용자들은 지금까지처럼 정보의 바다에 서 허우적대지 않고 인터넷에 연결하자마자 날씨·뉴스 등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정보를 자동으로 받아볼 수 있게 된다.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프로 그램을 자동으로 판올림(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
엠에스는 이미 익스플로러4.0판의 ‘액티브 채널’을 통해 한겨레신문사, 디지틀조선일보사, (주)데이콤 천리안 등 9개 업체의 뉴스채널 방송을 제 공하고 있다. 익스플로러4.0에 연결하기만 하면 초기화면에 다양한 뉴스 채널이 자동으로 뜨는 것이다. 엠에스는 세계적으로 월트 디즈니, 타임 워너, 뉴욕타임스, CNN 등 2백50여개 업체와 액티브 채널을 통한 인터넷 뉴스방송 계약을 맺었다. 넷스케이프도 넷캐스터를 통해 같은 방식의 뉴 스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흔히 ‘푸시’라 불리는 것을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웹캐스팅’이다. 인터넷이 ‘방송’을 자신의 영토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방송이 그러하듯 인터넷도 이제는 사용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무수히 많 은 정보를 사용자의 PC 화면에 끊임없이 ‘밀어낸다’는 것을 말하는 것 이기도 하다.
(사진/통신기술 가운데 속도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56K 모뎀. 하지만 아직까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
경험해본 사람들은 느꼈을 법한 일인데,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딘 속도가 우선 문젯거리다. 그러나 이보다 심각하고 근본적인 의문은 “밀려 쏟아 지는 수많은 정보들을 과연 나는 정말로 필요로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들 탓에 끊임없이 방해받는다면 이는 ‘편리 함’이라기보다 ‘고통’일 수 있다. ‘푸시’가 통신기술 부문에서의 획 기적인 기술 발전임은 분명하지만 그저 찬양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아 직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푸시의 미덕’이라면 인터넷을 통한 전자 우편 주고받기 정도일 듯하다.
일반 전화선을 이용한 데이터 통신기술 중 가장 빠르다는 56Kbps(1초에 5 만6천비트의 데이터를 전송) 모뎀은 아직까지는 내용없는 ‘신화’에 가 깝다. 미국의 ‘시네트’가 최근 23개 업체의 56K 모뎀의 성능을 정밀 테 스트한 결과 그중 어떤 것도 56Kbps의 제 속도를 내지 못한 것으로 밝혀 졌다. 성능 평가에 따르면, 56K 모뎀은 데이터를 받을 때는 43.6Kbps의 속도를 냈고, 송신 때의 속도는 33.6Kbps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그나마 이런 정도의 속도도 정보제공업자와 전화회사 사이에 디지털교 환장치가 설치돼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33.6Kbps 모뎀에도 못미치는 속도를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군다나 56K 모뎀은 현재 유에 스로보틱스의 ‘x2’와 록웰-루슨트 테크놀로지의 ‘k56플렉스’가 표준 확보를 위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어 아직 국제표준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 다.
가입해 있는 정보제공업체(ISP)가 자신이 지닌 56K 모뎀 방식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저 비싼 골칫덩어리를 안고 있는 처지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지난 94년 빌 게이츠가 “우리는 10년 안에 무한 대역의 통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른 시일 안에 통신속도 때문에 짜증을 내는 일은 사라질 것인가. 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33.6Kbps 이하 의 속도로 통신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일반 전화선이 아닌 케이블을 이용한 모뎀으로 ‘아주 빠른’ 통신 속도를 즐기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극도로 적은’ 수에 불과하다.
위성통신은 5년 뒤에나 가능하다
유선텔레비전방송처럼 케이블을 활용한 모뎀의 속도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다. 일반 전화선을 쓰는 모뎀보다 1천배 가까이 빠르다. 그러나 이에 는 두 갈래 통신이 가능한 광케이블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 다. 모든 가구의 70% 남짓이 케이블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있을 만큼 케이 블망이 잘 깔린 미국에서도 두 갈래 통신이 가능한 케이블시스템을 갖춘 가구는 전체의 7%에 불과하다. 이를 일반화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돈의 투자가 불가피하다.
위성을 활용한 통신은 환상적인 그만큼 아직은 꿈에 불과하다. 빌 게이츠 가 돈을 대고 있는 ‘텔레데식’ 프로그램은 2002년이나 돼야 실행가능하 다.
사람들이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을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 하거나, 새 기술 또는 새 제품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깊이 있는 반성적 성찰에 이르지 못할 때, 멀티미디어 시대는 또다른 강박을 불러오는 괴물 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훈 기자/ <한겨레> 생활과학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