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건강만세/소아과

“아기는 눕혀 키워야 좋다”

아기를 엎어 키워야 하나, 아니면 눕혀 키워야 하나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다. 엎어 키우면 머리가 좋아지며 심장과 가슴이 튼튼해지고 성장이 빨 라지고 머리모양이 예뻐진다는 등의 벼라별 이유를 들며 할머니와 신경전 을 벌이기까지 한다. 아이를 더 잘 키우고 싶은 부모에게는 중요한 문제 가 아닐 수 없다.

서구에서는 엎어 키우는 것이 보편적인 육아방법이었다. 전통적으로 아기 를 눕혀 키우던 우리나라도 새로운 육아법으로 엎어 키우는 것을 받아들 였다. 또한 미에 대한 기준이 바뀌어 과거의 복스러운 둥글넓적한 얼굴 모양보다는 갸름한 얼굴형을 더 예쁘고 귀엽게 여기는 경향이 생기면서 엎어 키우려는 부모가 늘어났다.

아기를 엎어 키우면 토하는 것과 흡입성 폐렴이 줄고, 덜 놀래서 잠도 좀 더 잘 잔다는 것은 사실이다. 얼굴이 갸름해진다는 것도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엎어 키우면 멀쩡하게 잘 자라던 아기가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자는 도중에 갑자기 사망하는 ‘영아 돌연사 증후군’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이제 소아과 의사들 은 엎어 키우지 말라고 권장한다. 특히 신체의 모든 기능이 아직은 미숙 한 6개월 이전의 아기는 엎어 키우면 영아 돌연사의 위험성이 높으며 심 장과 호흡기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엎어 키우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지만, 이미 한두달 엎어 자는 게 습관이 된 아기를 다시 눕혀 키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는 엎어 자는 아기를 수시로 살피고 평소에 눕히는 연습을 계속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엎어 재울 때도 푹신한 침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푹신한 침구를 사용하면 코가 눌려 숨이 막히거나, 내쉬는 숨 속에 있던 이산화탄소가 침구 속에 갇혔다가 숨을 들이쉴 때 몸 속에 다시 들어가 아기를 위험하 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아기들은 푹신한 곳에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아기들의 몸은 말랑말랑하고 탄력이 있어 약 간 딱딱한 곳에 재워도 전혀 불편해 하지 않는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으니 엎어 키울 수 없게 됐다며 너무 아쉬워 하는 부모가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엎어 키우 기의 장점은 대개 의학적인 근거가 희박하거나 아기들에게 그리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엎어 키우지 말라는 이유를 설명하면 다른 것은 다 수긍하면서 이상하게 머리모양 문제만은 못내 아쉬워하는 부모들은 실 망할 필요가 없다. 아기의 머리는 어느 정도 눕히는 방향에 따라서 모양 이 잡히는데, 엎어 재우면 코가 막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리 게 돼 머리모양이 갸름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엎어 키워야만 얼굴 이 갸름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기를 양쪽 옆으로 번갈아 눕혀 키우거나 도넛처럼 구멍이 뻥 뚫린 베개를 사용해도 뒤통수가 나오고 갸름한 머리 모양을 만들 수 있다. 또 눕혀 키워서 뒤통수가 납작해 보이거나 삐딱해 진 머리라도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좋아지기도 한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아기의 머리모양 때문에 아기의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 을 것이다.

엎어 키우는 것이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위식도 역류’와 같이 잘 토하는 병이 있을 때는 신체 구조상 엎어 키우면 음식의 소화를 도와주고 토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아기를 진료하는 소아 과 의사가 엎어 키우라고 미리 알려주기 때문에 보통은 생각할 필요가 없 다. 엎어 키워야만 하는 경우는 가능하면 1개월 이전에 소아과 의사와 상 의해서 차츰차츰 엎어 키워야 아기들이 쉽게 적응한다. 간혹 큰 아이가 소아과 다닐 때는 엎어 키우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는 엎어 키우지 말라 니 누구 말을 들어야 하냐고 푸념하는 부모도 있다. 엎어 키우지 말라는 것은 가장 최근에 바뀐 육아법이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할 수 있다. 현 재 소아과 의사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아기를 엎어 키우지 말라고 권 장한다.

하정훈/ 소아과 전문의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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