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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진실 4/골잔치는 싫다!

(사진/현대축구는 오프사이드를 이용하 다양한 전술을 실전에 적용한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경기에서 한국의 이상윤이 문지기를 제치고 있다.)

어떤 구기 스포츠이건 골이란 너무 많이 나도 재미가 없고, 반면 너무 적 게 나도 재미가 없게 마련이다. 최근 “월드컵에서 골이 잘 터지지 않아 재미가 없다”고 투덜대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94년 미국월드컵대회 다음해에 발간한 <스포츠 연감>(95년판)에 따르면 역대 월드컵에서 가장 골이 많이 나온 것은 54년 스위스대회로, 평균 한 경기에 5.38골이었단다 . 58년 스웨덴대회에서는 한 경기 3.60골로 떨어지더니 74년 서독대회에 서는 2.55골로 더욱 내려가고, 86년 멕시코대회에서는 2.54골 그리고 90 년 이탈리아대회에서는 2.21골이라는 극심한 골가뭄을 보였다. 94년 미국 대회에서는 2.69골로 약간 회복세를 나타내기 시작했으나 그래도 팬들을 만족시킬 만한 수준은 못 된다.

이처럼 월드컵에서 골기근이 계속되자 FIFA(국제축구연맹)는 궁여지책으 로 오프사이드 룰 폐지를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실현 되지 않고 휴지통에 들어가고 말았다. 고쳐 보았자 축구의 재미에 결정적 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골기근 해소 위해 한때 폐지론 검토

‘선수가 볼보다 앞으로 나가면 반칙으로 친다’는 중세 영국축구에서의 합의가 모습을 달리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이 오프사이드 룰이다. 도 대체 축구와 오프사이드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오프사이드 룰이 있는 구 기, 특히 축구는 골이 잘 나지 않는 경기다. 두 팀의 득점을 모두 합쳐 봐야 한 경기에서 5점을 넘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다.

득점으로 승패를 가리는 경기이면서도 축구는 어째서 득점을 가로막는 오 프사이드 룰을 두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중세축구의 참된 목적은 승패를 가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가 끝날 때까지의 과정을 즐기는 데 있었기 때문에 오프사이드 룰이 태어난 것이다.

매스 풋볼(mass football)이라 불리는 중세축구의 재미란 경기중 △돌진 에 이은 돌진 △볼을 상대진영 깊숙이 차넣기 △양쪽 팀이 뒤엉켜 있는 속에 용감히 뛰어들기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밀집상태에서 볼을 차내 기 등이었다. 중세축구는 신나는 놀이잔치였기 때문에 승패를 하루에 판 가름내지 않고 며칠씩 즐기는 것이 예사였다. 축구에서 럭비축구를 갈라 져 나오게 만든 것으로 이름난 영국의 퍼블릭 스쿨인 럭비스쿨의 옛날 축 구경기 규칙 제6조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경기를 3일간 혹은 5일간 치 르고도 득점이 없을 때는 비긴 것으로 한다.” 이 조항을 보면 그때의 축 구경기는 닷새를 치르고도 결판이 나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음을 알 수 있 다.

오늘날 우리들은 “축구란 일정 시간 안에 상대골에 볼을 한 차례라도 더 많이 넣는 것이 목적인 경기”로 알고 있다. 현대축구에 너무나도 익숙해 있는 우리들은 중세의 축구를 생각할 때도 역시 “두 지역의 주민들끼리 골의 득실차를 다투는 게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이런 착 각은 비단 축구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를 돌이켜볼 때에 빠지기 쉬 운 함정이다.


영국 축구엔 놀이잔치의 전통 그대로

(사진/1845년 럭비스쿨의 축구경기. 당시에는 5일동안 경기를 치르는 등 스우보다 경기를 즐겼다. )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달리 옛날 사람들은 골을 넣는 것보다 몸으로 부딪 치면서 자신의 용감함과 강인함을 뽐내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데 보람을 느꼈다. 그때의 축구는 어느 쪽이든 먼저 한골 만 올리면 끝이 나는 경기였다. 한골만 터지면 그토록 재미있던 놀이잔치 가 끝나고 마는 것이다. 상대방 골 근처에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볼을 받 아 득점을 올려 경기를 빨리 끝내버리는 것은 패배한 팀뿐 아니라 승리한 팀의 멤버들로부터도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므로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 한 일이었다. 따라서 축구에 참가한 사람들은 진지하게 경기를 펼치면서 한편으로는 즐거운 놀이잔치가 단시간 내에 끝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경기가 단시간 내에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맺어진 약속과 베풀 어진 배려는 하나의 관습이 되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이러한 관습 이 명문규정으로 자리잡은 것이 오늘날의 오프사이드 룰이다.

오늘날에도 영국축구에는 경기과정을 즐겼던 중세 놀이잔치의 전통이 살 아 숨쉰다. 유럽대륙이나 남미대륙에서는 정확한 패스를 잇는 근대축구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종주국인 영국축구는 여전히 패스게임으로 옮 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모처럼 상대의 볼을 가로채 미드필드에서 볼을 지배하고 있는데도 적진을 향해 길게 차넣어 볼 재배권을 스스로 포 기해버린다. 그래 놓고는 볼의 낙하지점에서 육탄전과 헤딩겨루기로 또다 시 볼 지배권을 다투려 드는 것이 영국축구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축구 를 받아들일 때 이미 현대 스포츠로서의 룰이 갖춰진 ‘완성품’을 수입 했다. 때문에 중세축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채 발전을 거듭해 축구 를 탄생시킨 영국을 크게 앞지르며 ‘21세기의 축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고두현/ 스포츠평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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