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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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역전! 대형태극기를 펼치는 `붉은 악마'.)
9월28일, 프랑스 월드컵 예선 한-일전이 벌어진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 선수들의 치열한 몸싸움에 버금가는 뜨거운 응원전쟁이 그라운드 밖에서 벌어졌다. 5천명이라는 대규모 한국 응원단이 원정 응원을 펼친 것도 처 음일 뿐 아니라, 한국대표팀의 공식 응원단으로 자리잡은 ‘붉은 악마’ 와 일본대표팀 응원단 ‘울트라 닛폰’의 첫 맞대결이 이루어진 것.
프로축구단 동호인들 모여 결성
한국 응원단은 본부석 오른쪽 골문 뒤에 가로 28m, 세로 18m의 초대형 태 극기와 호랑이를 그려넣은 대형 깃발을 펼쳐놓고 학이 날개를 편 듯한 ‘ 학익진’의 형태로 포진했다. 날개 양쪽 진영에는 국내원정 응원단과 민 단 소속 재일동포, 유학생 등이 자리잡고, 학의 부리에 해당하는 앞쪽에 붉은 악마가 선봉을 섰다. 인원은 60명에 불과하지만, 소수 정예부대인 붉은 악마가 한국 응원단의 수적 열세를 만회하는 돌격대의 임무를 맡은 것이다.
응원단은 경기시작 2시간 전부터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선수들의 사기 를 올렸다. 신토불이 악기 징과 꽹과리소리는 일본 응원단의 함성을 압도 했다. 일본에 한점을 먼저 내줘 잠시 주춤하던 응원단의 열기는 서정원의 동점골과 이민성의 역전골이 터지자 절정에 달했다. 대형 태극기와 오색 꽃가루, 막대풍선이 경기장을 뒤흔들고, 미리 준비한 ‘아리랑’‘오레, 대한민국’ ‘개선행진곡’ 등 승전가가 경기장에 메아리쳤다. 이민성은 경기를 마친 뒤 상기된 표정으로 “원정경기인데도 한국팬들이 건너와 응 원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응원단의 조직 적인 플레이가 한-일전 승리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5천여명이나 되는 적지 않은 응원단을 조직적인 힘으로 묶어낸 붉은 악마 . 붉은 악마의 ‘악명’이 일반인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였다. 당시 잠실운동장 한켠에서 붉은색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응원단 1백여명이 눈에 띄는 색다른 응원을 펼친 것이다. 유럽이나 남미에서만 볼 수 있었던 얼굴의 울긋불긋한 페인트칠, 통일된 복장, 관중석을 뒤덮는 깃발은 관중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 다. 그동안 특정 연예인이 즉흥적으로 이끌던 응원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 를 보여준 것이다.
붉은 악마는 각 국내 프로축구단의 동호인 모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컴 퓨터통신망 축구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프로축구 팬들이 지난 1∼2년 사이 에 구단별로 ‘서포터즈’를 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관망자로서의 팬클 럽 수준을 뛰어넘어, 체계적인 후원과 응원을 보내는 활동적인 조직을 구 성한 것이다. 이런 모임들을 주축으로 이번에 붉은 악마가 탄생했다. 현 재 회원수만도 5백여명이고 응원단 규모도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3백여명 을 돌파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11월 홈경기 “뭔가 보여주겠다”
이번 한-일전에 5천명의 대규모 응원단이 꾸려질 수 있었던 것도 붉은 악 마의 남다른 축구열정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이 지난 9월7일 도 쿄경기장에서 일본 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에 넋을 잃고 6골을 헌납하자 붉은 악마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이 광경을 지켜본 한국의 붉은 악마는 피시통신을 통해 비상대책 수립에 나섰다. ‘일본으로 가자. ’ 이들의 열성에 감동한 대한축구협회도 팔을 걷어붙였다. 이렇게 해서 한국민단과의 긴급협의를 통해 교포 3천5백여명과 한국에서 온 원정응원 단 1천5백여명이 참가하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응원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 다른 한국 응원단도 일사불란한 응원을 위해 붉은 악마의 지휘에 따르 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11월에 벌어지는 두번째 한-일전은 붉은 악마의 홈경기. 이번에야말로 세 를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관록에서 앞서는 일본의 응원 단 ‘울트라 닛폰’도 설욕을 벼르고 있어 다시 한번 만만치 않은 장외전 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울트라 닛폰의 대반격에 맞서는 붉은 악마의 전략 이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