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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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9년 만인 54년 스위스월드컵 예선전 때부터 시작된 ‘한-일 월드컵 축구 대결사’는 이번 승리를 포함해 12전8승3무1패로 한국이 절대우위를 보이고 있다.
월드컵 예선 한-일전이 처음으로 벌어졌던 54년에는 홈 앤 어웨이 경기로 치러야 했으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선수들이 한국땅을 밟게 할 수 없다”며 고집을 피웠다. 그 바람에 한국은 두번 모두 도쿄에서 어웨 이 경기를 펼쳤다. 해방 뒤 처음으로 치러진 일본전이었기 때문에 한국선 수들은 “이기지 않으면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경기를 펼쳤고, 1차전 5-1, 2차전 2-2로 일본을 돌파했다.
일본과 벌인 명승부로는 86년 멕시코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전을 빼놓을 수 없다. 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1-2) 패배로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 은 한국은 최종예선전에서 투혼을 불살랐다. 도쿄에서 어웨이로 벌어진 1 차전에서 정용환은 전반 30분께 이시카미가 차낸 볼을 되받아 그대로 중 거리 미사일포를 날렸고, 볼은 보기좋게 골네트를 갈랐다. 전반 41분에는 최순호가 일본의 밀집수비를 유인한 뒤 절묘하게 내준 볼을 이태호가 침 착하게 이시카미를 제치고 인사드킥으로 차넣어 쐐기를 박았다. 일본은 2 분 뒤 기무라의 프리킥 골로 영패를 면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일주일 뒤 서울에서 홈경기로 벌어진 2차전에서도 한국은 허정무의 결승 골로 1-0으로 승리해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당시 패배로 모리 감독은 이후 다시는 대표팀 감독을 맡지 못했고, 한국 의 김정남 감독은 86월드컵, 86아시안 게임, 88올림픽 대표팀 감독 등 엘 리트 코스를 밟아 감독 개인의 앞길에도 명암이 엇갈렸다.
일본에 대해 줄곧 우위를 보여오던 한국은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전에서 쓰라린 치욕을 맛보았다. 당시 카타르에서 벌어진 한-일전에 서 한국은 ‘타도! 한국’을 부르짖으며 탄탄히 준비해온 일본에 패해 ‘ 정신력’만의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요시다가 올 린 센터링이 나카야마의 발을 맞고 흐르자 쏜살같이 달려든 미우라가 차 넣어 0-1로 패한 것이다. 사흘 뒤 한국은 북한을 3-0으로 누르고, 반면 일본은 같은 시각 이라크전에서 경기 끝나기 10초를 남겨두고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2-2로 비긴다. 한국이 골득실차에서 일본을 누르고 천신만고 끝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이다.
20세기 마지막 월드컵을 향한 최종관문에서 벌어진 이번 한-일전도 ‘환 상의 뒤집기’를 펼쳐 한국팀에는 또하나의 명승부로 기록될 것이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9일 제 1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