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주장

농민보건, 대책이 없다

노동자들의 건강문제가 위험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가 운데 노동자를 잡는 직업병 문제를 다룬 것은 매우 적절한 기획이었다. 산업사회에서 노동자는 어쩌면 생명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기에 말이 다. 하지만 농민의 현실을 세세히 들여다본다면 차라리 노동자들의 형편 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뚱딴지 같은 말이 아니다. 농민들은 노동자에 대 한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가운데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농민과 노동자의 현실을 비교해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노동자들에게 는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유해작업장의 특수건강검진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물론 그러한 검진사업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문제가 지적되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노동현장에는 각각 안전관리자라든지 보건 담당 인력이 배치돼 있어서 노동자들의 안전한 작업(?)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노동자들은 직업병 판정을 받아 요양치료를 받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어떤 기능을 하 고 있는지는 면밀히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일단 제도적 장치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농민들의 경우를 보자. 현재 한국 농촌의 많은 농민들은 이른바 ‘농부증 ’이라는 만성적인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건강관리를 위 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는 하나도 없다. 아마 지역의료보험조합에서 실시 하는 정기검진이 그나마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유일한 혜택일 것이다. 그 사업도 엄밀히 말하면 내가 낸 돈으로 받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정기검 진은 농민들의 건강관리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반적인 검사만 시행하 는 실정이다. 농민들은 대부분 과도한 노동(그것도 지속적인)으로 근·골 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 흔히 요통, 견비통, 무릎관절염, 손발저림 등의 증상이 그런 것들이다. 그 밖에도 농약취급으로 인한 만성적인 농약중독, 농기계사고, 시설원예 작업에 관계되는 비닐하우스병 등도 부쩍 많아지는 추세다.

이런 다양하고 복잡한 질환들에 대해서 무엇 하나 뚜렷한 대책이 없으니 농민들의 상황이 더 열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농민들의 건강 을 위해서는 최소한 골다공증 검사, 농약중독에 대한 관리, 농기계사고 후유증에 관한 재활치료, 농부병에 대한 예방대책 등의 노력이 필요한 것 이다. 그러나 농민들의 이러한 현실을 치유할 제도적 장치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현재 모든 농민들은 질병의 치료를 스스로 책임지고 있다. 내가 위치하고 있는 이 지역도 시골 면단위 지역의 농촌인데, 각종 통증에 시달려온 농 민들이 진통제로 버텨오다가 그것도 내성이 생겨 잘 안 들으니까 이젠 한 약이라도 써 보자고 우리 한의원에 오는 경향이 있다. 그런 분들의 건강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분히 농촌의 사회적 현실 때문에 얻은 질환인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의료보험도 되지 않는 고가의 한약을 처방할 때 가슴이 아프다. 그들이 농업을 포기하면 우리는 무얼 먹고 살 수 있을까. 적어도 이들에게 국가적 차원의 배려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 각한다. <한겨레21>에서도 농촌의 농부병 실태를 본격적으로 다루어 주길 바란다.

안철호/ 전북 완주군 용진면 상운리 70-2 용진농민한의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