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격동하는 재벌/동양그룹

`데이콤 인수' 사운 걸었다

(사진/서울 중구 을지로 동양그룹 사옥. 창립 이후 성장일변도의 탄탄대로를 달려왔지만 90년 중반 이후 주춤한듯한 인상이다)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은 올 3월 그룹 임원세미나에서 특강을 통해 현 상 황을 “파도를 타느냐 쓸려가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시점”이라고 표현했 다. 현 회장은 또 “성장을 함수곡선으로 비유하면 변곡점 위치에 있다” 고도 했다. 기업 경영에서 전략적 변곡점은 상승의 정점에서 다시 재상승 을 하느냐 아니면 추락하느냐가 결정되는 운명의 시기다. 제철왕국의 꿈 을 키우다 몰락한 한보는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현 회장은 종전의 모 델만을 추구한다면 추락할 것이지만 엄청난 변화와 개혁을 한다면 재도약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외형적 성장에 매달리지 않겠다”

현 회장의 이런 상황인식은 동양그룹의 성장과정과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현 회장은 지난 89년 12월 창업주이자 장인인 고 이양구 회장의 뒤 를 이어 그룹의 대권을 물려받았다. 국내 대기업에서 사위가 경영권을 승 계한 것은 극히 드문 일. 당시 동양그룹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현 회장은 경영권 승계 뒤 계속적인 확장전략을 폈다. 80년대 중반부터 집중적으로 금융업에 진출해 금융부문 계열사를 10개로 늘림으 로써 국내 최대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위상을 갖추는 개가를 올렸다. 동 양시멘트 사장에 오른 지난 83년부터 사실상 그룹경영을 총괄하기 시작한 지 만 15년 만에 재계 30∼40위권에 있던 동양그룹을 20위권으로 끌어올 렸다. 성장 일변도의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다. 금융에 이어 그룹의 새사업으로 선정해 전력투구해 온 정보통신부문에서 이동전화 사업권 획득이 뜻대로 되지 않은 데 이어 데이콤 인수마저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90년대 중 반 이후 동양의 성장세는 질적 양적으로 다소 주춤해 있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동양으로서는 다시 허리춤을 졸라매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현 회장은 89년 취임 당시 그룹 매출을 5년 안에 2조원으로 끌어올리고, 2000년까지 10조원으로 높여 재계 10위권 안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청 사진을 제시했다. 동양은 93년 2조1천억원의 매출을 달성해 목표를 1년 앞당겨 달성했다. 지난해에는 3조7천5백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목표 는 20% 많은 4조5천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2000년 외형 10조 목표를 달성 하려면 남은 3년간 연평균 30% 이상의 고성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동양 그룹은 이제 이런 외형적 성장에 매달리지는 않는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 는 2000년대 이후 중장기 전략도 내놓지 않는 초연함을 보이고 있다. 현 회장은 요즘 들어 부쩍 “변화가 일상화돼 있는 상황에서 몇년 뒤 어떻게 되겠다고 수치상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외형 신장에 주력 하지 말고 내실경영에 힘쓰라”고 강조한다. 취임 초기 야심찬 목표를 제 시해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듯 그룹을 몰아쳐온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 다. 현 회장은 지난 6월15일 그룹 창립 40주년 기념사에서도 “현재의 기 업환경은 한마디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급격한 변화의 파고 속에 놓여 있다”면서 “미래 정보화사회에서 기업경영의 핵심요체는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과 전략적인 혁신사고의 배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 다.


제조업 비중 줄고 금융부문 절반 차지

동양은 지난 57년 선대회장의 창업 이래 시멘트와 제과를 두축으로 하는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창립 40년 만에 24개 계열사를 거 느린 재계 23위(96년 말 자산 크기 기준)의 대그룹으로 성장한 지금 제조 업의 비중은 50% 밑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금융부문이 절반 이상을 차지 하고 있다. 이 변화를 주도한 주인공이 바로 현 회장이다. 법조인 출신인 현 회장은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그룹경영에 뛰어든 뒤 80년대 초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 재무관리(국제금융)를 공부하면서 금융업의 중요성에 일찌기 눈을 떴다. 그 첫 작품이 84년 당시 업계 최하위였던 일 국증권(동양증권의 전신)의 인수다. 당시 그룹 안에서는 아직 초기단계인 증권업에 뛰어드는 데 따른 위험성을 들어 만류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 다. 그러나 현 회장은 “그룹의 사업구조 고도화와 낙후돼 있는 한국 금 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설득해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갔다. 증권사 인수는 89년 생명보험사 설립, 90년 종합금융사 인수로 이어졌다. 지난해 5월에는 중앙투자신탁을 인수했다. 이로써 동양은 은행을 제외한 전 금융부문의 회사들을 망라하게 됐다. 은행도 소유제한만 풀리면 언제 든지 뛰어들 태세다. 동양은 다음 단계로 금융부문의 개편을 구상중이다. 금융회사간, 금융사 업무간 대통합이라는 ‘빅뱅’ 추세에 맞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부문은 통폐합을 과감히 단행한다는 복안이다. 현 회장은 국제금융쪽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 회장 자신이 앞 장서 미국 뉴욕의 동양증권 현지법인 안에 국제금융본부를 세웠다.

동양이 다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정보통신 사업이다. 이동전 화 사업권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명목상 최대지분(9.31%)을 가지고 있는 종합정보통신업체 데이콤 인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동양은 제2 이동통신과 개인휴대통신 사업권 경쟁을 포기할 때 그 명분을 데이콤 인 수에 그룹의 역량을 총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내세웠을 정도이다.


초코파이, 해외사업에서 효자 구실

금융이 그룹도약의 기반이 됐다면 정보통신은 동양이 미래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전략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룹의 한 임원은 “그동안 데이콤 지분확보에 들어간 자금만 1천억원을 넘는다”고 말한다 . 데이콤은 시외·국제전화와 전용회선 임대, 컴퓨터통신서비스, 전자상 거래, 인터넷접속서비스를 영위하고 있고 대주주 자격으로 하나로통신 컨 소시엄을 구성해 시내전화 사업허가를 받은 데 이어 저궤도 위성이동통신 사업과 위성방송서비스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동양이 데이콤 인수에 성 공할 경우 이동통신 및 멀티미디어통합서비스 시스템 등 초고속 정보화시 대의 주역으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동 양과 마찬가지로 LG, 삼성, 현대 등 다른 대그룹들도 데이콤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관계사들을 통해 데이콤 주식을 30% 이상 보 유한 것으로 알려진 LG가 가장 강력한 상대다. LG는 지난해 개인휴대통신 사업권을 따내면서 데이콤 지분을 5% 이내로 줄이기로 한 약속에 따라 지 난 7월25일 계열사의 데이콤 지분 4.03%를 매각해 명목상 지분을 4.99%로 줄였다. 그러나 동양은 LG가 데이콤 지분을 자전거래를 통해 여전히 자신 들의 수중에 넣고 있다는 주장이다. 통신시장 개방 추세에 따라 정부의 품안에 있는 데이콤이 결국 새주인을 찾아야 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점 에서 동양은 경쟁업체들과 힘겨운 한판승부를 벌여야 하는 처지에 있다. 동양은 정보통신사업 강화의 연장선에서 시스템통합(SI) 등 종합정보통신 서비스회사인 동양시스템하우스와 케이블TV의 만화전문 채널인 투니버스 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현 회장은 지난 6월 그룹 창립 40주년 기념사에서 그룹의 세계화와 레저 관광산업 등 미래 성장사업에의 투자도 강조했다. 현 회장은 진작부터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되는 글로벌마켓의 대두에 주목해 왔다. 국 경없는 국제경쟁시대에 성장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적 기준이 아니라 국제적 기준에 의해 그룹 전체의 역량뿐만 아니라 부문 별 최고의 경쟁력과 각자의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고 독려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양그룹 세계경영의 첨병은 스스로 국제 수준의 경쟁력을 갖 췄다고 자신하고 있는 시멘트와 제과 부문이다. 시멘트 부문에서는 지난 95년 중국 베이징에 순동레미콘 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말 레이시아에 오는 99년 초 완공을 목표로 연산 2백80t 규모의 시멘트 합작 공장을 짓고 있다. 북한의 나진, 선봉지역에도 시멘트 유통기지(사일로) 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우고 남북한간의 경협이 활성화되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동양제과의 효자품목인 초코파이도 중국,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들 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해외사업에서 톡톡히 한몫 하고 있다. 동 양은 올 5월 중국 하북성 랑방개발구에 연산 2천만달러 규모의 초코파이 공장을 준공했다.


서울 마포에 42층 규모 호텔 건설

동양은 레저관광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99년 5월 경기도 안성에 대규모 골 프장을 완공하고 2000년까지 계열사인 동양H&R을 통해 홍콩 샹그리라호텔 과 합작으로 서울 마포에 지상 42층, 객실 7백개 규모의 호텔을 건설할 예정이다.

양적 성장의 신화가 깨지고 질적 성장이 중시되는 현 시점에서 그룹 외형 이 갖는 의미는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동양의 재계 순위는 지난해 21위에 서 23위로 두 단계 떨어졌다. 생명보험과 증권의 적자로 그룹 전체의 순 익도 30억원에 불과했다. 올해는 증권의 경영성적이 호전되면서 순익이 훨씬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 회장은 변화의 소용돌이로 인해 과거의 장점이 오늘에는 오히려 약점으로 바뀌는 패러다임의 역전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부단한 자기 혁신을 통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발빠른 변신으 로 제조업 위주의 단순 사업구조에서 금융과 정보통신, 무역, 유통, 건설 등으로 보폭을 넓혀온 동양그룹이 불혹의 나이를 맞아 앞으로 어떤 새로 운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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