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
|
(사진/매년 신학기가 시작되는 9월에 시작되는 비쥐타지. 수백년을 내려온 관습이지만 악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여론의 심판대에 올랐다.)
“우리는 기름과 포도주를 섞은 데다 올챙이를 담근 잡탕액을 한컵씩 마 셔야 했다. 대다수는 그 자리에서 토했다. 그리고는 그게 끝이었다.”(대 학 준비반의 이봉)
“남학생들은 온몸에 면도용 무스를 바른 채 눕게 했고 여학생들은 그위 에 알몸으로 누워야 했다.”(상업학교의 소피)
최근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신입생들에게 자행되는 신고식의 피 해 사례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졸업생들의 회고담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이미 수백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 ‘프랑스판 신고식’, 비쥐타지가 9월 신학기를 맞아 다시 여론의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성추행으로까지 발전한 신입생신고식
비쥐타지란 사전의 정의대로 학교의 신입생을 골탕먹이거나 학대·구박하 는 프랑스의 전통적 관습이다. 선배들은 비쥐(고등학교나 대학의 1학년 신입생을 일컫는 속어)들에게 구걸을 시키기도 하고 이것저것 기괴한 짓 들을 강요한다.
원래 비쥐타지는 선후배 의식이나 동질의식이 비교적 강한 의과대학이나 그랑제콜이라 불리는 엘리트학교 또는 규율이 엄한 기숙학교 등에서 주로 이어져 오던 전통적 관행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일반 고등학교로까지 확대되어 하나의 하위문화로 정착됐다.
그 기원은 대학이라는 것이 처음 생긴 중세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학생들 사회에만 있는 고유한 현상이며 직장이나 사회에서의 비쥐타 지는 없다. 프랑스에서는 9월 신학기가 되면 거리에서 밀가루를 뒤집어쓰 고, 찢어진 옷에 기괴한 분장을 한 고등학교 신입생들이 선배들에게 끌려 다니며 곤욕을 치르는 진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쥐타지는 일회적 으로 치러지는 한국의 신고식과는 달리 보통 일주일 정도 계속된다. 일종 의 ‘신입생 길들이기 주간’ 같은 것이다.
비쥐타지 기간중 거리의 행인들은 혹시 자신들이 밀가루 세례를 받지나 않을까 피해 다니면서도 재미있는 구경거리로 여기고 있으며 ‘지나치지 만 않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한다. 예의 <리 베라시옹> 기사에서도 피해사례를 호소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통신학교 의 델핀은 “비쥐타지 때 선배들이 남녀신입생들을 속옷차림으로 함께 잠 수하도록 시켰는데 흐뭇한 추억거리가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신입생 들은 때로는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때로는 비닐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무리 지어 거리를 휩쓸고 다니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한다. 실제 대다수 의 선량한 비쥐타지는 기괴한 복장으로 거리에서의 구걸 강요나 밀가루 세례 정도로 행인들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당사자들에게는 추억거 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문제는 정도가 지나친 경우이다. 비쥐타지라는 이름 아래 때로는 진흙탕 에 뒹굴게 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는 구타나 신체적 고문이 가해지기도 한다. 남학생 선배가 신입생 여학생을 성추행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 성 추행·구타로 인한 충격 때문에 정신적 장애를 일으키는 극단적인 경우도 보도됐다. 비쥐타지는 때로는 사법적인 고소로 확대되기까지 한다. 지나 친 비쥐타지에 대한 나쁜 인식 때문에 한때 일반 고등학교에서의 비쥐타 지는 사라지는 듯했으나 최근 몇년 전부터 다시 부활되고 있는 추세이다.
관대했던 여론마저 반대쪽으로 돌아서
그간 여론은 이 비쥐타지가 인간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쪽과 학생들 사이 의 관습이며 ‘미풍양속’이라는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지나친 비쥐타지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SOS 비쥐타지’ 등 그간 비쥐타지 피해 상담소가 생기는가 하면, 학부모단체나 인권단체의 비쥐타지 금지 요구가 매우 강경해졌다. 여론이 비쥐타지 반대쪽으로 쏠리자 교육부 차 관 세골렌 루아얄은 이들 단체의 주장을 수렴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 선 각급 학교 교장에게 공문을 띄워 비쥐타지 악용을 철저히 단속할 것을 지시했다. 또 비쥐타지가 심한 경우에는 9월 초에 통과된 미성년자 보호 및 성(性)경범죄 처벌법을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필요한 경 우에는 징역형까지도 적용할 수 있는 법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후배 등의 개념이 없이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가 최대한 존중되는 프랑 스인의 생활에서 유일하게 권위주의나 위계질서가 허용되는 비쥐타지 풍 습이 오·남용으로 인해 이젠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 있다.
파리=최연구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