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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블록을 뜯어라”


(사진/과천 아파트 단지 옆을 흐르는 양재천(왼쪽)과 여의도 샛강. 시멘트를 뜯어낸 자리엔 자연석이깔리고 갈대·부들 등이 심기고 있다.)

86년 4월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은 우리나라 하천 정비의 본보기였다. 강변 을 따라 설치된 콘크리트 호안블록은 집중호우 때마다 범람하던 한강을 잠재웠다. 저지대의 침수를 거의 완벽하게 차단했고 둔치에 수영장 등 각 종 놀이공간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은 아무런 의 심없이 한강의 경험을 뒤따랐다. 마치 유행처럼 지방의 소도시를 흐르는 샛강까지 물과 둔치 사이를 가르는 시멘트 벽을 세우고 반듯반듯하게 쭉 뻗은 모습으로 샛강의 모습은 획일화됐다.


“한강에서 잉어가 올라온다”

그러나 이 모델은 10년 만에 심각한 도전에 맞닥뜨렸다. 물과 뭍이 만나 는 지점의 생태계를 파괴해 물고기의 서식공간을 없앨 뿐 아니라 물의 자 정능력마저 약화시킨다는 비판과 함께 곳곳에서 뜯겨 나가고 있는 것이다 . 그 자리에는 하천을 자연상태로 되돌리는 ‘자연형 하천 공법’이 대신 하고 있다.

윤중제를 쌓고 콘크리트 배수로를 만든 뒤부터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던 여의도 서쪽의 샛강. 잡초만이 무성했던 서울교와 여의교의 1.2km 구간에 서는 콘크리트 철거 작업과 물길 만들기가 1년째 계속되고 있다. 주변에 는 야자섬유 그물과 자연석들이 깔리고 그 위로 갈대와 부들을 심는 일꾼 들의 손길이 바쁘다. 물의 흐름을 빠르게 하려는 골파기도 한창이다. 하 천 정비라면 반듯한 시멘트 블록만을 고집했던 과거와 견주면 전혀 색다 른 시도다. 한강관리사업소 녹지과 김현팔씨는 “물의 흐름이 정체돼 썩 어가는 이곳을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생태공간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시가 8억9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0월부터 지하철 5 호선에서 넘쳐나는 지하수와 한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늪으로 변한 샛강 에 지속적으로 흘려보내는 생태계 회복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9월 말 일반인에 공개될 이곳의 현장 직원들은 “벌써 주변 버드나무 숲에서 는 흰뺨검둥오리가 둥지를 틀었고 한강에서 잉어가 올라온다”며 생태계 복원을 자신한다.

경기도 과천시 부림동. 과천 주공아파트 9단지 옆을 흐르는 양재천 3백m 구간에는 물과 둔치를 가르는 시멘트 장벽이 없다. 올해초 시멘트를 뜯어 내고 그 자리에 돌망태와 통나무 야자섬유망을 깔고 복토를 했기 때문이 다. 그 위로 갯버들과 꽃창포도 심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진원 선임 연구원이 우리 실정에 맞는 자연형 하천정비를 위한 실험을 진행중인 것 이다. 30여m 간격으로 쇄석쌓기, 갯버들 식재 공법, V자형 여울 공법, 습 생식물 군락조성 등 9가지의 자연형 하천들이 이어진다.

이진원 연구원은 “치수에만 목적을 둔 옹벽치기식 하천 정비는 오히려 강을 죽였다”며 “둔치와 하천의 생태계가 서로 교감하며 수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식을 하루빨리 찾겠다”고 말한다. 7,8월의 집중호우를 견디며 6개월 만에 갯버들과 꽃창포, 부들 등 수생식물이 번성하고 백로까지 찾 아들자 그는 어느 정도 성과를 자신하고 있다. “앞으로 서울의 다른 하 천으로 이 실험을 계속 확대하겠다”고 말한다.


국내 성공사례 없어 고민

자치단체들도 자연형 하천을 만들려는 계획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경기 도 오산시는 국토관리청과 함께 호안블록으로 만들어진 오산천 상류 5km 구간에 대한 생태적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모두 2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블록을 제거하고 한경친화적인 생태공간을 만들려는 이 계획은 현재 실시 설계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오염으로 찌든 오산의 애물단지인 오산천을 살려보자는 시도인 것이다. 서울시는 강동구 길동을 흐르는 한강변에 자 연생태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1백12억원의 예산을 책정했고 오는 98년1월 에는 행주대교 일대에 조류생태공원 만들기에 들어간다.

“좀더 자연에 가깝게.” 이제 무차별적 하천 정비를 대신할 새로운 철학 이 서서히 자라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 는 모험이다. 오산천 자연화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국토관리청 서동호씨 는 “국내 성공사례가 없어 고민” 이라며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답답하다”고 고백한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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