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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샛강이 숨을 쉰다

(사진/정읍시가 토해낸 온갖 찌꺼기들로 사망선고를 받았던 정읍천. 그러나 이젠 여름마다 물장구치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모래무지다. 잡아라.” “꽉 잡아. 도망치잖아.”

회색 콘크리트와 검은 아스팔트로 뒤덮인 수원시. 그 황량한 도시 한복판 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샛강 수원천에서 아이들의 외침이 터진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조무래기들이 책가방을 강가에 내팽개친 채 고기잡이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살갗을 파고드는 초가을 햇볕이 아 직 따갑지만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있잖아요. 저번에는요… 얘가 되게 큰 것도 잡았어요.” 창용초등학교 3학년 혜숙이가 자랑을 늘어놓는다. 명진이와 효정이도 지지않고 끼어든다. “붕어도 있고요. 고기가 엄청 많 아요.” “우리 아빠는 고기도 풀어줬다.”


도시화가 강요한 샛강들의 운명

75만 시민이 쏟아내는 생활하수 등 각종 오·폐수로 질식했던 수원천. 그 죽음의 하천이 되살아났다. 여름내내 악취가 역겹게 코를 찌르고 강바닥 으로부터 회색빛 거품만 끓어오르던 이 샛강에 언제부터인지 붕어 모래무 지 미꾸라지 등의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발가벗은 아이들의 물 장구 소리도 다시 들렸다. 자그마치 20년 만의 일이다.

수원시 북쪽 끝에 위치한 해발 3백m의 광교산에서 발원해 광교저수지에 모여 제법 큰 물줄기를 이룬 뒤 영화동 북수동 남수동 팔달로 등 도심을 가로질러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황구지천으로 흘러드는 15.7km 길이의 수 원천은 지난 20년 동안 그야말로 죽음의 하천 바로 그것이었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물장구치는 아이들과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 그 리고 수원성의 고풍스런 흔적들과 한데 어우러진 수원천은 한폭의 풍속화 를 그려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다른 우리의 샛강이 밟아온 운명처럼 급격한 도시화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수원천 양 옆 으로 천막 가건물이 즐비한 재래시장과 채소, 생선가게 정육점들이 들어 섰고 이들이 쏟아붓는 쓰레기와 하루 7만4천t(96년 기준)에 이르는 각종 오·폐수로 수원천이 삽시간에 오염된 것이다. 비닐봉지나 빈깡통 스티로 폼은 물론 과일껍질에서 생선내장까지 도시생활의 윤택함이 만들어낸 온 갖 찌꺼기들과 함께 수원천도 썩어갔다. 수질은 나빠질대로 나빠졌다. 95 년 수원천의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은 평균 50∼1백ppm에 이르렀다. 하천수질의 최저등급인 5급수(공업용수)의 산소요구량이 10ppm이라는 것 에 견줘본다면 수원천은 더이상 하천이 아니었다. 차라리 하나의 거대한 하수구나 다름없었다.

하수구로 변한 수원천에 주민들도 더이상 기대할 게 없었다. 철저히 외면 됐고 주변은 계속 슬럼화됐다. 9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차라리 악취를 막고 도심 교통난도 덜기 위해 하천을 복개하자는 의견이 고개를 들었다. 수원시가 앞장섰고 시민들도 환영했다. 94년 수원시가 복개계획을 발표할 때 시민들은 90% 이상의 찬성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같은해 7월 하류쪽인 매교에서 지동교까지 7백90m 구간이 콘크리트 밑으로 사라졌다. 다음해인 95년 3월에는 지동교에서 매향교 구간 4백80m에 대한 복개공사가 이어졌 다.

수천년 동안 이 도시를 적시며 흘러 '수원'이라는 지명을 얻어낸 생명줄 은 그렇게 속절없이 어두컴컴한 콘크리트 밑바닥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여느 도시의 수많은 샛강들이 단 한번의 소생 노력도 없이 악취를 차단하 고 도로와 주차장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논리에 밀려 우리 곁에서 잊 혀진 것처럼.


수원천 복개, 여론을 바꾸다

그러나 시민 모두가 수원천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복개”라는 커다란 외침에 맞서 수원천을 살리자는 움직임이 움텄다. 95년 12월이었다. 수원 환경운동센터 등 지역 19개 시민·사회 단체가 생명줄을 묻어버릴 수는 없다며 ‘수원천살리기 시민운동본부’를 만들고 여론을 뒤집는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복개는 썩어가는 하천을 거대한 하수관으로 만들 겠다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며 주민들과 생활을 함께하던 옛날의 수원 천을 만들자고 설득한 것이다. 반대는 만만찮았다. 수원환경센터 염태영 사무처장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 더러운 물에 돈을 쓸 어넣어 무슨 효과가 있겠냐며 말렸다. 도로도 좁은데 주차장이나 만들자 며 오히려 우리를 설득했다.” 일부 상인들은 물론 시의회까지 가세했다. 96년 3월 시의회 일부 의원들은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주춤거리는 수원시 를 향해 복개결정을 집행할 것을 요구하며 의정활동을 거부하기도 했다. 운동본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천을 정비하여 (수원)성곽과 함께 보 전하는 게 좋다’는 세차례에 걸친 문화재관리국의 의견을 무시한 채 복 개를 강행했다며 전·현직 수원시장 3명과 건설국장 2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수원지검에 고발했다. 그리고 수원천 주변의 쓰레기를 치우 고 부유물질들을 직접 걷어내며 주민 설득을 계속해 나갔다.

마침내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수원천을 살리자는 취지에 주민들의 공 감대가 형성되면서 복개반대의 목소리가 찬성을 앞지른 것이다. 결국 96 년 5월 수원시는 복개공사 중단을 결정했다. 이와함께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수원천 살리기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71억원의 예산을 들여 수원천 물줄기를 따라 13km에 이르는 오·폐수 차집관로를 설치해 수원천 오염원의 92%를 차지하는 생활하수를 모아 종말처리장으로 보냈다. 또 최 상류인 광교저수지에 모아두었던 맑은 물은 하루 2천3백t씩 흘려보내며 하천을 씻어내렸다. 그러기를 한달여. 수원천은 회생의 기미를 보이기 시 작했다. 상류쪽 세천교 부근의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이 3.2ppm까지 떨어 졌고 비가 많은 8월에 들어서자 드디어 1급수 수준인 0.1ppm 이하를 기록 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눈부셨다.


20년만에 얼음이 얼다

(사진/광교산에서 발원해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황구지천으로 흘러드는 15.7km 길이의 수원천. 수원성의 고풍스런 흔적들과 한데 어우러져 한폭의 풍속화 같은 모습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

자신을 얻은 수원 시민들은 한발 더 내디뎠다. 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20 06년까지 10년 동안 1천1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수원천 스스로 자정 능력 을 회복할 수 있는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 리고 6개월의 공사를 거쳐 지난해 12월 마무리된 1단계 사업은 수원천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 놓고 있다.

수원천이 시내로 접어드는 초입에 해당하는 경기교에서 영연교에 이르는 1.2km 구간은 더이상 수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흐르던 회색빛 콘크리트 장 벽이 아니다. 물과 둔치를 갈라놓았던 호안의 콘크리트 벽은 철거되고 자 연석과 갯버들 부들 등 수초들로 둔치와 물길이 자연스레 연결된 S자형 수로가 만들어졌다. 또 물 흐름을 늦추는 저수보와 빠르게 흘러내리는 여 울이 잇따라 설치되고 물살이 빠른 여울에는 자갈로 바닥을 채웠다. 물이 흘러내리며 자정능력을 갖도록 한 세심한 배려이다. 그리고 주민의 접근 을 막고 수원천을 단지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만들었던 3m 깊이의 옹벽에 진입계단을 만들고 둔치에는 잔디와 수초들이 어우러진 산책로를 만들었 다.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한겨울에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썩어가고 있어 아무리 추워도 얼음이 얼지 않던 수원천이 20년 만에 처음 으로 얼음이 얼었다.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썰매를 지치는 아이들의 소란 스러움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여름, 옷을 벗어버리고 개울로 뛰어드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어른들도 즐겁기는 매한가지. “어릴 때만해도 멱감고 놀았다”며 옛추억 에 잠기는 김부순 할머니는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게 돼 기쁘다” 고 웃음짓는다. “쓸데없는 짓 그만두고 주차장이나 만들자”며 복개를 요구했던 주민들도 “공원이 생기고 집값까지 오른다”며 신이 났다. 이 들은 입을 모은다. “하루 빨리 수원천 전체가 살아나 강변 오솔길을 따 라 자전거 타고 시내 한복판 남문시장으로 장보러 가고 싶다.”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 골짜기에서 발원해 5.5km를 내리흘러 시기동 연 지동 정일동 등 2km의 도심구간을 적시고 지나가는 정읍천도 되살아나는 샛강이다. 이곳 또한 2년 전까지만 해도 기약없이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곳이었다. 정읍시 용산동 김진호씨는 “벌거숭이로 수영하며 참게를 잡던 정읍천이 고등학생 시절인 80년대 초반부터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연간 1백만명 이상이 찾는 내장산 국립공원 주변의 음식점과 숙 박시설에서 쏟아내는 오·폐수에 시름시름 앓던 정읍천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늘어난 정읍시가 토해낸 온갖 찌꺼기들로 사망선고를 받기 에 것이다.


‘개발’세력 아직도 호시탐탐

하지만 이곳에도 지난해 여름부터 발가벗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올 여름에는 아예 시에서 나서 정읍천 주변에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 미끄럼틀까지 만들었다. 족대로 고기잡는 아이들은 물론 강변에 차를 세워 둔 채 러닝셔츠 차림으로 견지낚시에 열중하는 어른들의 모습 도 이제 낯설지 않다. 강변 도로에 심은 30년생 벚꽃들이 꽃망울을 터뜨 리는 봄에는 그야말로 아늑한 전원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정읍천의 변신은 시의 도발(?)로 싹텄다. 지난 95년 시가 정읍천의 상류 인 내장저수지에서 상동취수장에 이르는 상수원보호구역에 대한 해제를 모색하면서부터다. 내장산의 각종 위락시설과 음식점 관광객이 쏟아내는 오·폐수로 내장저수지의 수질이 나빠져 상수원으로 쓰기 어렵다며 대단 위 호수공원으로 개발하자는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어차피 섬진강 물을 상수원으로 끌어 쓰고 있는 형편이니 손해볼 게 없다는 이유도 들이댔다.

이런 도발은 그동안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던 정읍경실련과 농민회 전교조 등 시민·사회단체에 정읍천을 살려보자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정읍경실 련 이재산 부장은 “정읍저수지의 오염된 물이 5.5km에 이르는 상동취수 장에 흘러내리면서 자연정화돼 그나마 버텨오던 정읍천을 완전히 죽이려 는 계획이었다”고 회고한다. 이들은 똘똘 뭉쳤다. 개발계획을 백지화하 고 정읍천 정화사업에 시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며 시민여론을 모아갔다. 결국 정읍시는 시민단체의 저항에 한발 물러섰다. 적극적인 정 화사업을 벌이고 계속적인 수질조사 등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사업의 타당 성을 재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96년 초부터 최상류인 내장산 위락단지와 정읍시를 흐르는 구간에 오·폐수 차집관이 설치됐다. 시민단체들도 적극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계절별로 정읍천의 수질을 검사하고 오·폐수관 운용 실태에 대한 주민감 시를 일상화했다. 이런 노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강을 소생시켰다.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 10ppm 이상의 5급수였던 수질이 2ppm 이하로 회복 했다. 지난 5월에는 구시장(정읍 제1시장) 앞 관통도로 부근에서 10년 만 에 다시 참게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제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선 도심을 흐르는 정읍천은 주민들의 긍지이자 자존심으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아직은 불안한 상태다. 이재산 부장은 “시에서 개발사업을 완전 히 포기하지 않았다. 취수장과 내장저수지 근처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민 원을 앞세워 여차하면 개발을 시작하려고 벼르고 있다”고 전한다. 강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개발 바람은 아직 폭풍의 씨앗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상상 초월하는 진통 끝에 살아난 정릉천

(사진/자연형 하천으로 만들어지는 양재천엔 왜가리떼가 날아들고 있다. )

주말마다 1만명의 등산객 발길이 닿는 북한산 국립공원의 정릉계곡. 버스 에서 내려 5분을 걸어 초입인 청수폭포에 다다른 등산객들은 감탄사를 연 발한다. “어머 웬일이야… 저 고기 좀 봐.” “투망을 던져야 하겠는걸. ” 표정이 흐뭇하다.

송추계곡, 망월사계곡… 실핏줄처럼 얽힌 북한산 계곡 곳곳이 자릿세를 노린 장사꾼들의 시멘트 도배질과 음식찌꺼기, 수영장과 행락객들이 쏟아 내는 쓰레기로 죽어가고 있는 현실이 이곳 정릉천에서만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

하류에서는 버들치와 송사리가 떼지어 유영하는 모습이 보이고 대성문에 서 흘러내린 영추천이나 보국문의 보국천 등 상류에 올라 돌을 들추면 가 재와 도룡뇽이 화급히 몸을 감춘다. 물론 이곳도 여느 계곡처럼 썩은 물 만 흐르던 때가 있었다. 등산객 김미화씨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수영장 의 소독약 물이 코를 찌르고 갈수기에는 천바닥에서 스며나오는 닭고기의 기름찌꺼거로 썩어가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곳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93년. 관리를 맡은 북한산 동 부관리사업소에 김영기 소장이 부임하면서부터다. 김 소장은 당시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릉천 정화사업을 벌여나갔다. 먼저 20년 동안 정릉계곡 초 입에 자리잡고 소독약 물을 내뿜어온 수영장 두곳을 모두 철거했다. 또 9 4년에는 상류지역을 점거한 채 수십년 동안 장사를 해온 무허가 상가 14 곳을 모두 철거했다.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다.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 신자살 소동을 벌이고 칼을 들고 사업소에 들이닥치기도 했다”고 사업소 관계자들은 회상한다.

그러나 철거는 강행됐다. 사업소쪽은 계곡에 접근할 수 없는 지역에 팔각 정을 짓고 이들에게 2평씩 매점공간을 마련해 주면서 설득을 계속했다. “이들이 흘려보내는 생선과 닭고기 찌꺼기 등이 계곡을 썩히는 한 정화 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는 게 이상배 관리과장의 설명이다. 철거된 지역에는 자갈을 깔고 자연석을 쌓아 올렸다. 토사유출을 막기 위 한 보도 곳곳에 설치됐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지난해 봄부터 생태계 복원의 효과가 곳곳에서 나 타났다. 날도래와 강도래 등 수서곤충들이 보이고 뒤이어 1급수에 사는 버들치와 가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인간의 작은 배려로, 죽어가던 샛강은 자신의 생명력을 회복하며 이렇게 하나둘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 곳곳을 적시는 샛강은 편리 만을 추구할 뿐 썩어가는 문명의 치부를 덮어버리려는 인간의 경솔함에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애써 살린 정릉천도 채 4km를 달리지 못하고 길 음역에 이르면 어두컴컴한 복개천으로 흘러들어 썩어간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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