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양심선언, 해직, 그리고 PCS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는 각 기관과 조직의 비리와 부 정을 고발하는 양심선언이 줄을 이었다.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보안사 이병, 이지문 육군 중위, 한준수 연기군수 등. 이 양심선언의 끄트머리에 현준희(44) 전 감사원 주사가 있다.

그는 96년 4월 경기도 남양주시 효산콘도 허가과정 특혜의혹과 관련해 “ 콘도 허가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예금추적 과 청와대 등 고위층의 압력 여부 등에 대해 감사를 벌이려다 상부지시로 감사를 중단했다”고 폭로했다.

고난은 그때부터였다.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었다. 78년 1백 대 1의 경쟁 을 뚫고 감사원에 들어가 5급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던 그는 파면과 동시 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됐다. 나중에 김현철씨 최측근인 박태중씨가 한보청문회를 통해 효산콘도 분양권 24억원어치를 가지고 있 다고 밝혔고, 언론에서도 효산 배후는 현철씨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는 지금까지 복직은커녕 힘겨운 법정투쟁 을 벌여나가고 있다. 불명예 퇴직으로 연금의 절반인 월 48만원이 고정수 입이다. 여기에 고2 딸, 중3 아들, 노모, 아내 등 다섯 식구가 매달려 있 다. 그는 최근 감사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종로구 가회동으로 전셋집 을 옮겼다. “내가 만일 한점 부끄럼이라도 있다면 옛 동료들과 매일 얼 굴을 마주하는 곳으로 이사올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는 당당해 했다. 현씨가 최근 생계를 위해 뛰어든 일은 개인휴대전화(PCS) 영업이다. 숫기 없던 백면서생 삼청동 ‘딸깍발이’가 거친 세파에 뛰어든 것이다. 다행 히 언론사나 노조에서 그를 적극 도와주겠다는 뜻을 표명해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 뛰고 있다. “그동안 세상을 반쪽밖에 몰랐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복직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는 지금도 감사원 복직을 꿈꾼다.

“당연히 돌아가야죠. 감사원은 잘못을 잘못했다고 밝히는 곳입니다. 당 연히 할 바를 했기에 눈꼽만큼의 후회도 없습니다.”

이젠 양심선언마저도 끊어진 지 오래. 현씨는 양심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자초한 자신의 선택이 양심선언이 필요없는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 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문의 017-212-6176)

권태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