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바다는 미군에 맡겨라

(사진/바다와 하늘을 미군이 독점하는 한-미간 군사분법체제는 해군의 자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한국 국방정책의 역사에서 육군 제일주의는 뿌리가 깊다. 전쟁 계획이나 예산 배정에서 육군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해군과 공군은 항상 뒷 전에 밀려왔다. 물론 이는 지상전력 강화를 통해 가상의 적인 북한의 공 격을 막아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어떤 이들 은 북한이 ‘주적’으로 남아 있는 한 육군에 치우치는 국방정책은 바뀌 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단언한다.


해군은 지상전투의 들러리?

육군에 대한 강조는,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 국방정책을 결정하는 군 수뇌부들이 주로 육군 출신들로 채워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게다가 박정 희-전두환-노태우로 연결되는 40여년 동안 국방정책의 중핵적인 결정은 이들 육군 출신들의 판단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육군 제일주의가 생긴 원인을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고 주장한다. 육군 출신들이 득세하는 것은 결과이자 현상일 뿐이며, 본 질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지적하는 근본 원인은 한-미 간의 군사 분업체제다. 즉 미국은 해군과 공군을, 한국은 육군에 치중하 도록 돼 있는 한-미간 군사분업체제가 필연적으로 이런 현상을 빚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군사분야의 헌법이랄 수 있는 ‘신작전계획(OPLAN) 5027 ’(5027이라는 숫자는 미국이 전세계를 나누는 지역별 코드로, 한반도를 뜻한다)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작계 5027’은 한-미 양국의 한반도 전쟁계획이다. 이 계획은 전쟁의 단계, 시차별 부대작전, 전력소요 등은 물론이고 한국군 예하 사단의 구 체적인 대처 방안까지 모두 담고 있는 전쟁전략의 고갱이다. 이에 따르면 , 전쟁이 일어나면 한-미는 군사분야에서 철저한 분업을 하도록 돼 있다. 즉, 육군에는 통일 이후 북한의 관리 임무까지 세세히 맡겨놨지만, 해군 이나 공군에는 미군의 보조적인 구실만 부여했다. 이는 한국을 사회주의 권 봉쇄와 대소·대북 전진기지로 인식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해군의 고위급 장교들도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한국 해군은 규모가 큰 미 해군의 퇴역함을 인수해 재취역시키는 과 정에서 발족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양해군전략’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러나 미 해군 함정의 인수가 중단되고 북한으로부터의 간첩선 침 투가 증가되자 연안방어에 중점을 둔 대륙적 해군전략으로 급선회했다. < 제인 세계함정연감>에 따르면, 한국의 해군력은 주로 2백t 미만의 고속정 (PKM)과 1천t급의 경비함(PCC)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 지상군 전략에 종속 되고 구조적으로 연안방어에 중점을 둔 대륙적 해군으로 평가된다.

대륙적 해군전략과 해양적 해군전략은 해군전략의 두 갈래 큰 줄기다. 대 륙적 해군전략은 연안방어와 해상교통로 파괴에 중점을 둔 ‘해상거부’ 를 주임무로 삼는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해군은 고속정, 전투함 및 잠수 함을 주요전투력으로 한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독일, 소련, 중국 등이 이 전략을 쓰고 있다. 이들 가운데 특히 중국은 급속히 해양적 해군전략 으로 바뀌고 있다.


한반도 근해 공역도조차 미군에 의존

이에 비해 해양적 해군전략은 독립적인 전략을 수행한다. 이 전략을 택한 국가의 해군은 ‘해상통제’(수면과 수중 및 공중에서 적 해군과 싸우는 것)와 ‘해상투사’(해군력을 이용해 적 지상전력을 공격하는 것으로 함 포사격이나 함정에서의 유도탄 투사, 상륙작전, 항공모함의 함재기를 이 용한 공격을 포함함), 또 ‘해상시위’(정치적인 목적으로 해군력을 동원 해 시위하는 것) 및 ‘전략적 억지’(탄도미사일을 실은 잠수함의 반격능 력 때문에 적국의 핵공격이 억지되는 것)의 구실을 한다. 역사적으로는 스페인, 영국, 미국, 일본 등이 해양적 해군전략을 썼다.

한 전문가는 “우리의 전쟁전략과 해군전략 아래에서 해군의 자주적인 발 전은 애초 기대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전략에 따르면, 한 국해군은 현재 초과전력을 보유한 상태다. 한국 해군의 전투능력을 엄청 나게 축소시켜 놓았다. 육군 출신 대통령이 육군 중심의 군체계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미간 종속적인 군사체계 속에서는 해군의 독립적인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한미연합사 체계에 따르면 정 보나 작전 등 핵심골간 부서는 미군이 독자적으로 맡고 있다. 정보와 전 략을 틀어쥐고 놔주지 않는 상황에서 해군의 독자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전역 해군 장교는 이와 관련해 또다른 문제제기를 한 다. 그에 따르면, 한국 해군에는 수중의 지도라고 할 수 있는 한국근해의 ‘공역도’가 없다. “일제시대 때는 일본군이 가지고 있다가 해방 이후 에 미군의 손으로 넘겨져 한국군은 수중의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잠수함이 넘어와도 한국 해군의 힘으로는 이를 찾아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미군은 또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고도의 음파탐지에 관한 기술도 이전하지 않고 있다. 대잠수함 초계기(P3 C)가 있어도 이를 운용할 노하우와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데, 한국 해군에는 없다.

한국 해군의 위상을 극도로 제한하는 한-미 군사분업체제와 함께 한국 해 군이 자체의 힘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데에는 해군 내부의 패배주의와 비 리도 한몫을 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해군의 3성 제독 전원이 강제전역을 당함으로써 대양해군을 추진하던 해군은 암초에 걸렸다. 이후 해군은 예편될 처지였던 김홍렬 소장이 졸지에 중장으로 진급해 3성제독 이 해군참모총장에 취임하는 상상을 초월한 인사조처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로 대양해군 프로그램은 좌초 상태다.


통일 후 국방력은 해군이 중심

한국 해군이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군사지휘체계의 종속성에 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통일에 대비한 해군전력의 전면 재 검토가 가장 시급하다. 삼면이 바다이고 반도라는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 고 있는 한반도에서 군사적인 면에서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주체는 바로 한국 해군이다. 특히 21세기에 해군이 집중적으로 담당해야 할 분야 는 해상에서의 주권·권익 보호와 국가의 대외정책 지원·국위선양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미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가 국제적인 갈등으로 불거지 면서 미래 자원의 보고라는 해양에 대한 국가주권의 중요성이 부쩍 강조 되고 있다.

국방 당국자들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동북아시아 해상교류의 주도권을 잡고 자주적인 해양전략을 펼쳤던 장보고의 역사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발 견해야 할 것이다.

김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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