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버림받은 ‘바다의 공군기지’

옛 소련 항공모함 민스크와 노보르시스크의 도입과정은 한국 정부가 해군 력 강화에 얼마나 무심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95년과 96년에 각각 한국으로 넘겨진 이 항모들은 미 태평양 함대의 엔터프라이즈호, 미드웨 이호 등과 맞서기 위해 첨단과학기술과 국력을 총동원해 건조한 옛 소련 해군의 자존심이었다. 항모 1대당 연간 유지비 1억5천만달러를 대지 못해 항모를 팔겠다고 선언하자 당시 전세계 33개 나라가 군침을 흘렸다. 이 사업권은 결국 한국의 영유통(회장 조덕영)이 따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나마 당시 한국에 항모들이 팔려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해군력에 대한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고 기술력도 열세인데다 항모 보유에 대한 국 가적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항모안에는 과거의 강력했던 화력과 무장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첨 단 무기 기술이 한국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러시아 정보기관이 민스크호 에 탑재됐던 각종 무기와 사격통제시스템, 전자장비의 회로기관, 관제장 치, 항법장치, 미사일·로켓·어뢰 발사대 등을 철저히 파괴시켰기 때문 이다. ‘바다에 뜬 공군기지’가 ‘떠다니는 고철’로 전락한 채 운반된 셈이다. 건조된 지 15년밖에 되지 않은 민스크호를 잘만 활용했다면 항모 건조의 핵심기술을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이다. 이들은 핵심 장비의 파괴를 막지 못한 것은 한국 정부의 외교력 부 족이라고 말한다. 당시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의 우려를 정부가 적절히 막 아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가 생중계를 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일본을 외교적으로 막지 못한 것은 결정적인 실수로 지적되고 있다. 당시 일본과 미국이 러시아 당국에 유형 무형의 압력을 넣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만신창이로 들어온 항모들은 지금 해체장을 마련하지 못해 떠돌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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