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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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해상수송로 확보를 위해서라도 항모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기초 설계비마저 삭감되면서 힘을 얻었다.)
태평양상에서 벌이는 다국적 해군 훈련인 림팩(RIMPAC)과 관련해 해군 안 팎에는 자조적인 얘기 하나가 떠돈다. 다국적 해군의 선상 작전회의가 벌 어지면, 다른 나라 해군사령관들은 헬기를 타고 작전회의 선박으로 오는 데 한국의 해군사령관은 보트를 타고 회의하러 간다는 것이다. “배를 띄 우고 참가한다는 데 의의를 둘 뿐”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을 읊조리는 한 퇴역장군의 말은 해군 내의 팽배한 패배적 분위기를 그대로 전한다. 다국 적 훈련은 자기 나라의 힘을 과시한다는 면도 있는데 우리는 허약성만 드 러내는 전시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안방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군은 이런 패배적인 분위기를 쓸어버리고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해양전 략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경함공모함의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경항공모함을 통해 연안에서만 활동하는 해군의 구실을 확대해 삼면이 바 다인 우리나라의 처지에 걸맞은 해군의 지위를 되찾자는 것이다.
군사적인 면에서 항모 보유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 분석이다. 러시아 고르쉬코프 제독은 현대 해전의 특징을 3가지로 요 약한다. 교전거리의 증가, 입체전 확대, 유도탄 확산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고성능의 수상전투함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선 전술항공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의 보유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항모를 보유하게 되면 수상전력(함대)과 수중전력(잠수함)도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국가의 생명선인 4대 해상교통로(한-중, 한-일, 남방, 북방)의 안 전확보도 꾀할 수 있다.
항모 보유의 필요성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설명된다. 해외무역 교통량의 99.7%를 해상수송에 기대고 있는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항모는 전략물자 수송선단에 대한 호송작전의 구심 노릇을 할 수 있다. 위기 대응과 국익 보호라는 차원에서도 항모는 필수적이다. 독도분쟁 등 해양 영유권 분쟁 지역에 대한 전력의 위시와 융통성있는 현장 대응에 효과적임은 물론, 해 양활동과 국가이익 보호, 해양주권 확보라는 목적에도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항공모함은 선박설계기술, 전자통신시스템, 무기체계, 항공기 술, 금속합금기술, 신소재기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그 나라 국력의 결집체로서 의미도 갖는다. 또 분단국가이며 반도국가인 우리나라로서는 통일시대를 대비한 국가전략의 근본적인 혁신과 해양화를 통한 세계적 강 국의 희망을 상징한다. 한 전문가는 “항모 보유는 통일한국의 국가목표 인 태평양시대 중심국 구실의 군사적 담보가 된다”고 설명했다.
항공모함의 종류에는 최소항모(2만t급), 소형함모(4만t급), 중형항모(6만 t급), 대형항모(7만5천t급), 최대항모(9만t급)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비용과 능력을 고려할 때 한국 해군에 가장 적합하고 현실적인 선택은 소 형항모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소형항모 유형에는 에식스(E ssex)급 미국 항모, 키예프(Kiev)급 러시아 항모, 드골급 프랑스 항모가 있다. 소형항모는 제한된 강습(强襲)을 실시할 수 있고 수직이착륙기뿐만 아니라 A-6/7 공격기도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해상통제능력을 거의 다 갖고 있다. 또 고성능 대잠수함전투기인 SH-3를 충분히 운용할 수 있고 조기경보기 E-2C의 운용으로 대잠수함 작전에도 효과적이다. 30여대의 항 공기를 실을 수 있다. 해상교통로 보호를 위한 소형항모체제는 선단을 보 호하거나 ‘대잠수렵(對潛狩獵)작전’(Hunter Killer Operation)을 실시 하는 데도 적합하다.
보통 1개 항모함대는 항공모함 1척과 호위전력으로 구성된다. 호위전력에 는 유도구축함 2척, 유도호위함 4척, 핵추진공격잠수함 2척, 짧은 활주로 에서도 뜨고 내릴 수 있는 수직이착륙기(VSTOL)와 헬기, 유류지원함 등이 포함된다. 해군은 예산상의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는 국방부의 반응을 고 려해 비행갑판을 깐 1만∼1만5천t급의 다목적 전투함을 경항모의 제원으 로 삼고 있다. 호위전력을 빼고 항모만을 건조한다면 비용은 4천5백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호위전력까지 확보하는 데는 물론 이보다 몇배의 비용 이 들 것으로 보이지만 해군은 먼저 경함모 자체의 비용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군의 한 고위간부는 “통일시대가 오면 평균 2백만 평이 넘는 한국의 공군기지 한개만 팔아도 소형함모 한척을 위한 투자비 가 나올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군기지 한개만 팔아도 건조비용 조달
경함모의 확보시기를 2010년께로 잡고 있는 해군은 앞으로 10년 동안 항 모비용을 나누어 투자하면 전체 국방비에도 부담이 없다고 주장한다. 해 군의 한 장교는 “투자비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가 해양적 해군전략 을 채택할 만큼 인식전환을 할 수 있느냐는 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 주변국과의 세력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항모보유가 필수적이 라는 주장도 있다. 일본은 이미 50년 전에 항공모함을 만들어 미국과 싸 운 경험과 기술을 갖고 있고 중국은 2005년까지 두척의 항모를 구축할 예 정이다. 한국 해군은, 그러나 ‘항공모함’이라는 단어가 주변국의 신경 을 건드릴 수 있다는 이유로 ‘다목적전투함’(MPCX)이라는 모호한 표현 을 쓰며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실정이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