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바다전쟁! 이순신 후예는 슬프다

(사진/독도를 순찰중인 해군함정.)

“아시아 각국이 바다전쟁을 벌이는 대양에는 엄청난 폭풍과 파도가 몰아 칩니다. 여기에서 끄덕없이 견딜 수 있는 군함은 3천5백t급 이상입니다. 그러나 한국군의 주력 함정은 1천~1천5백t급입니다. 지금 우리 해군의 전 력으로는 바다전쟁에 참여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바다전쟁 은 고사하고 태풍주의보만 내려도 영해방위마저 포기해야 할 처지니까요. ”


'조각배' 수준의 한국 해군력

최근 98년 국방예산에서 1백50억원의 ‘경항공모함’ 기초설계비가 전액 삭감된 뒤 한 퇴역 군 관계자가 한 말이다. 기초설계비가 삭감되면서 해 군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오던 1만2천~1만5천t급 경항모 건설계획은 물거품 이 됐다. 또 가까운 시일 안에 재개될 가능성도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설정과 댜오위다오(釣魚島)·난사군 도(南沙群島)에 대한 분쟁 등 동아시아의 ‘바다전쟁’ 파고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대양해군’ 문제는 그대로 묻어버릴 수 없는 사안이라는 지적 이 커지고 있다. 또 ‘대양해군’ 문제는 통일 뒤 우리 군의 위상과도 관 련된 것이어서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도 높 다.

'대양해군론'이란 현재 대북 방어용 ‘연안해군’ 수준인 우리 해군력을 원양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해군력으로 키우자는 것이다. 군에서 는 현재 각국의 해군력을 4단계로 분류한다. 세계·대양·지역·연안해군 이 그것이다. 이중 ‘연안해군’이란 자국 연안을 주작전 해역으로 하는 해군을 말하며, ‘지역해군’은 작전지역을 인접국 근해까지로 넓힌 개념 이다. 이에 비해 ‘대양해군’은 지역해를 벗어나 대양에서 작전할 수 있 는 능력을 구비한 경우이며, 전 세계의 대양에 항모 등을 파견한 경우는 ‘세계해군’으로 분류된다. 이 분류에 따를 경우 미국·러시아는 세계해 군으로, 중국·일본은 대양해군으로 불릴 수 있다.

해군 관계자들은 연안해군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현 해군력은 국력에 비 해 터무니없이 약한 상태라고 주장한다. 군함 숫자로 볼 때 일본·중국의 5분의 1, t수에서는 일본의 9분의 1, 중국의 5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 한다. 특히 대양작전이 가능한 순양함·구축함의 경우, 중국이 19척, 일 본이 11척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우리 해군은 한 척도 없다.

한때 우리 해군도 ‘한국형 구축함’을 보유한 적이 있다. 몇 년 전까지 만 해도 우리 해군은 1천5백t급의 배를 ‘한국형 구축함’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군함 분류를 어긴 것이었다. 일반적으 로 구축함은 8천~9천t, 호위함은 3천t급이다. 한국군은 호위함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배를 구축함이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해군은 이런 해군력으로는 앞으로 급증할 바다전쟁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미 동아시아에선 보다 넓은 바다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전쟁 직전 상 태로까지 위기를 더해가고 있다. 중국군은 지난 5월말 동해·남해·북해 등 해군 3대함대를 총동원한 상륙훈련을 잇달아 실시했다. 전문가들은 이 를 댜오위다오 및 난사군도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진단한다. 일본도 지난 5월6일 댜오위다오(일본명 센가쿠열도)에 현직 국회의원 니 시무라 신고 등 4명이 상륙을 강행했고, 이에 5월26일에는 대만·홍콩 연 합시위대 2백여명이 이 섬에 대한 상륙을 시도한 바 있다. 현재 댜오위다 오는 중국-대만-일본이, 난사군도는 중국과 필리핀-브루나이-말레이시아- 대만-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다. 이 섬들은 때로 모래톱 혹은 바위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수백해리의 영해와 함께 수송 로 및 해저자원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군력은 영해 분쟁의 잣대

이들 동아시아의 분쟁 섬들을 자국령으로 만들기 위한 각국의 노력은 매 우 다양하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각국은 이들 섬에 ‘우리 섬’이라 는 표지를 세우고, 과학연구소를 건립했다. 각국은 또 난사군도 등을 자 국 영토로 통합시키는 법령을 만들고 관광객 및 여론종사자들의 견학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들은 또 제3국 석유회사들에 석유채광권을 임의로 불 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각국의 이런 조처는 결국 자국의 해군력에 의해 뒷받침된다. 난사 군도만 해도 브루나이를 제외한 인근 5개국이 군대를 파견 주둔시키고 있 는 상황이다. 이들 중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는 국제 해양관할권 조약에 기초해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에 반해 중국과 베트남의 주장은 과거 ‘역 사적 사실’에만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강력한 해군력이 있다 .

해군력이 바다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사례는 이밖에도 많 다. 중국은 지난 74년 당시 베트남령이던, 난사군도 북쪽에 위치한 시사 군도(西沙群島) 일부를 무력점령한 뒤 현재까지 이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또 지난 95년 2월 필리핀령 미쉐프환초를 점령한 데 이어, 올 4월 에도 필리핀령 카타섬과 파나타섬을 강점했다.

이렇게 동아시아가 바다전쟁 회오리에 휘말리게 된 데는 지난 94년 유엔 해양법 발효의 영향이 컸다. 2백해리까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설정할 수 있게 한 유엔 해양법은 지난 40여년간 지켜지던 연안중심 원칙을 깨버 렸다. 이는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이 한일간 어업분쟁에 어떤 결과 를 낳았는지를 보면 알기 쉽다. 일본은 배타적 경제수역과 유엔 해양법이 라는 무기로 한일 어업협정의 재개정을 요구하며 독도 영유권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동아시아의 영토분쟁도 이런 한일 분쟁 과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이라고 진단한다.

문제는 이들 바다전쟁이 앞으로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 다. 전세계는 무한한 자원이 묻혀 있는 바다로 눈을 돌린 지 이미 오래다 . 또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 뒤 국가간 물류이동이 늘어남에 따라 해 상수송로 확보의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특히 난사군도는 우리의 주 해 상수송로인 페르시아만-말레카해협-대만근해로 연결되는 남방항로와 무관 하지 않다.

해군의 대양해군 건설 움직임은 바로 “이런 바다전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한다. 한일간에 독도문제가 불거진 지난 96년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은 김 대통령에게 대양해군 건설의 필 요성을 ‘직보’했다. 무역물품의 99.7%(96년 기준)를 해상수송에 의존하 고 있는 우리나라가 원양에서 작전할 수 있는 해군력이 없는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도 보고됐다. 안 전 제독의 제안을 받은 김 대통령은 경항공모함 건설을 위한 기초설계연구비 1백50억원을 예산에 반영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김 대통령의 마음을 되돌려 내년 예 산에서 이 기초설계연구비를 전액 삭감했다.


‘주적’ 북한에나 신경써라?

국방부의 주장은 간단했다. 4천억원이나 들어가는 경항모를 갖겠다는 해 군의 주장은 한마디로 ‘주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처사라는 것이다 . 이와 관련해 김동진 국방장관은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 해 군 항공모함의 지원을 받고 있다”며 “따라서 현 상황에서는 북한의 위 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항공모함을 보유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고 ‘대양해군론’을 일축했다. 이밖에도 육군과 국방부 관계자들에게서는 “국방예산이 위축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실질적인 위협세력인 북한이 아 닌 ‘불확실한 적’을 위해 귀중한 자산을 할당할 여력이 없다”란 얘기 도 흘러나온다. 이들은 또 “한국의 대양해군론은 중국·일본과의 군비경 쟁을 불러올 것”이라며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논의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최악의 사태를 낳게 될 것”이라고 대양해군론 의 ‘전략적 오류’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군 관계자들은 대양해군론이 “현재가 아닌 미래 조국의 번영을 위한 개념”이라고 맞선다. 이들은 우선 군함의 건조가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사업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4천억원의 건조비도 이 기간 에 걸쳐 분할 지출할 때 우리 국방비 규모에 비해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맞선다.

이들은 무엇보다 현 상황에 비춰볼 때 10년 뒤면 ‘통일을 상정할 수도 있는 시기’라고 주장한다. 아니 꼭 10년이 아니더라도 이제 ‘남북통일 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데는 국방 전문가들 사이에 큰 이견 이 없다. 현재 군의 편제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모두 육군 위주다. 이는 남북 북단이라는 특수상황과 쿠데타 정권의 장기집권에 따른 ‘정권 안보 용’ 수요가 맞물려서 빚은 결과라는 게 다수 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군사 전문가들은 연방제든 독일방식이든 통일한국의 경우 현재처 럼 많은 육군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진단한다. 현재의 바다전쟁에서 보 듯, 통일한국의 경우 오히려 적은 ‘외부로부터’, 즉 ‘바다로부터’ 올 것이라는 전망인 것이다.

대양해군을 꿈꾸는 해군의 고민은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칠 수 있다. 그때부터 ‘대양해군’을 육성하려 한다면 그 뒤 10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한국의 경쟁 국들은 결코 한국 해군이 대양작전력을 기를 10년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의 바다전쟁은 꼭 군함끼리 충돌하는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육 군과는 달리 해군은 평시에도 상선 보호 및 수송로의 안전 확보 등의 구 실을 한다는 게 해군쪽 주장이다.


무력 앞세울 경우 독도 무엇으로 지키나

각국의 해군 중시 경향도 이런 구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안보의 개념 역시 협의의 군사안보 위주에서 경제, 환경오염, 난민문제, 테러리즘, 마 약 등 비군사적 분야를 포함한 ‘포괄적 안보’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포괄적 안보상황’에서 해군의 분쟁억지 기능은 종속 개념일 수 있다(없다?).

이제까지의 동아시아 바다전쟁을 보면 앞으로 일본이 무력으로 독도를 강 점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과연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우리 해군은 우 리의 땅 독도를 지킬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휴전선을 지킬 수 있을까 ”에만 쏠려 있는 우리의 관심을 “독도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도 쏟아야 할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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