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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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명공학의 대표적인 비판자로 활동하는 제레미 리프킨.)
1977년초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에서 열린 한 유전공학회의에 갑자기 일 단의 시위대가 몰려 들어와 ‘우리는 복제를 거부한다!’는 구호를 외쳐 대기 시작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주도한 이 시위는 생명 공학에 대한 가장 대표적 비판자로 혹은 ‘반과학기술 운동가’로 오늘날 널리 알려진 그가 대중의 이목을 본격적으로 끌게 된 첫 사건이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 대중과학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는 지난 8월호 인물난에 서 이례적으로 리프킨을 다루면서, 이 사건과 올해 초 복제양 돌리의 성 공 발표가 우연히도 꼭 20년만의 일임을 지적하고 있다.
시카고 남구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1945년에 태어난 리프킨이 본래 직업적 운동가로서의 운명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플라스 틱 백의 제조업자였고 어머니는 맹인을 위한 책 만들기 자선활동을 이끌 었다. 그러나 그가 펜실베니아대학교의 와튼금융대학에 다니던 60년대말 미국을 휩쓴 베트남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은 그의 인생 행로를 바꿔놓았다 . 그는 유명한 68년 펜타곤(미 국방부) 시위행진을 조직했고, 69년에는 베트남에서의 미국 전쟁범죄를 폭로하는 데 목적을 둔 ‘시민위원회’를 창설했다. 71년에는 정부의 미국 독립 2백주년 기념계획에 대항하여 ‘ 민중2백주년위원회’라는 반문화운동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70년대 후반부터 리프킨의 관심은 갓 태어난 생명공학산업에 돌려졌다. 그는 유전자를 조작해 새로운 생명체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은 인간이 신 놀음 (playing God)을 하는 것이고 결국 나치가 추구했던 우생학의 위 험에 빠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생명공학기술의 특허를 반대하고 생물무 기 개발의 금지를 주장하며 유전자변형 유기체의 환경 방출에 대하여 법 정 소송을 지속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유전공학을 현대의 새로운 연금술 알제니 (algeny)로 묘사하면서 이 새로운 생명창조 기술이 가져올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엔트로피>라는 저서에서 경고했다. 또 최근에는 정보기술 이 가져올 대량실업의 미래를 <노동의 종말>이라는 저서에서 예고하여 우 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리프킨에 대한 과학계와 기업의 반응은 물론 분노와 증오 일색이다. 미국 우유산업협회는 그를 식품테러리스트, 미생물학의 노벨상 수상자인 볼티 모어는 그를 ‘생물학적 근본주의자’라고 비난했고, <타임>지는 그에 대 해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하는 인물 이란 표제를 달 정도였다. 그에 대한 반대자들은 그가 잘못된 정보 혹은 의도적인 정보 왜곡에 기초해서 논쟁 을 극단화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간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생명공 학 규제를 담당하는 일부 공무원들은 그가 환경조작의 위험성 등에 대해 사람들이 보다 깊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인정 하기도 한다. 리프킨 자신은 그에게 붙여진 러다이트라는 딱지를 거부하 며, 제약이나 예방의학 등의 분야에 생명공학을 응용하는 것에 반대한 일 이 없음을 강조한다.
리프킨은 현재 경제동향재단(Foundation of Economic Trends)과 온실위기 재단(Greenhouse Crisis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단체의 대표를 맡으면 서 꾸준히 기술문명의 위험을 진단하고 널리 경고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 다. 그의 반대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은 그가 비과학자인 시민들을 과학기 술과 관련된 사회적 쟁점들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선동하여 풀뿌리 시민운 동을 조직해내는 데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과 열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의 목적 자체가 반(反)과학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를 시민에 게 각성시키고 대중적 토론을 통해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데 있다면, 아예 그런 각성이나 토론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리프킨과 같은 인물이 없다는 사실을 차라리 아쉬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김환석/국민대 교수·사회학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