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97프랑크푸르트 모터쇼…21세기 향한 소형차의 질주

지난 9월11일부터 열흘 동안 41개국에서 무려 1천1백개 업체가 참가한 독 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21세기를 향한 독일을 비롯한 유럽 메이커들의 대변신과 하이테크놀로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한마당이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폴크스바겐 등 독일의 3대 메이커들은 각각 별도의 전시장을 마련해 분위기를 압도했고, 프레스데이 첫날에는 헬무트 콜 독일 총리가 직접 전시장에 들러 자동차 강국의 무게를 더욱 실어주었다.

최대한 줄인 벤츠의 대변신

(사진/이번 모터쇼의 최대 관심 모델인 벤츠의 경차 스마트. )

올해 모터쇼는 2년 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BMW를 제외한 벤츠 와 폴크스바겐사는 모두 93년 엄청난 적자를 기록한 뒤 95년 모터쇼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올해는 승세의 고삐를 바짝 조이는 분위기가 엿 보였다. 독일은 지난 90년 서유럽에서만 3백26만2천대의 승용차를 판매했 는데, 96년에는 이보다 6%가 늘어난 3백46만6천대를 팔았다.

이에 비해 포드와 GM은 90년에 3백10만7천대에서 96년 3백8만4천대로 떨 어졌고, PSA 그룹(푸조, 시트로엥)과 르노는 같은 기간에 무려 20만대 가 까이 퇴조를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피아트 그룹이 있는 이탈리아나 혼다, 도요타, 닛산, 미쓰비시가 포진해 있는 일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 다.

독일 자동차 산업의 대표 주자 메르세데스 벤츠사는 올해 아주 의미있고 가슴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주인공이 아주 작은 미물로 변하게 되었다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처럼 벤츠사의 변신은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넘어 아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줄이기이다. 그 주인공은 도시형 경차 스마트(Smart). 벤츠와 스위스의 SMH사가 공동 개발한 이 모델은 98년 초 시판 예정인 경차다. 길이 2.5미터에 2인승인 이 스마트 쿠페는 배기량 600cc에 무게는 고작 680kg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속 60km까지 가속하는데 6.5초밖에 걸리지 않고 최고 시속 130k m로 자동차의 리엘리노사우라(키가 2미터인 작은 공룡)다. 벤츠사는 스마 트 모델을 마치 팔레트에 물감 짜 놓듯이 대형 유리관 속에 집어넣어 눈 길을 끌고 있었다.

스마트에 비해 다소 몸집이 큰 A클래스에서도 과거 벤츠의 느낌을 찾아보 기는 어렵다. 길이 3.57미터, 무게 1천kg의 A클래스는 가을부터 시판되는 데, 20가지의 혁신적인 기술과 리터당 20km 이상을 달릴 수 있는 경제성 이 자랑이다. 이 모델은 최대 강점으로 안전도롤 꼽고 있어 앞으로의 자 동차 경향, 즉 작지만 안전한 차라는 화두를 담고 있다.

폴크스바겐 옵션 가격 등 크게 내려

(사진/포드의 쿠페형 컨셉트카 MC2.) )

유럽 최고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폴크스바겐사는 4세대 골프로 전시장 을 장식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신형 골프의 의미는 남다르다. 골프는 아우디 A3, 스코다 옥타비아, 세아트 톨레도와 차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사는 신형 골프의 조립 시간을 무려 30%나 줄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립 공정의 효율을 극대화해 전체적인 품질 수준까지 높이게 되었다. 플랫폼을 같이 쓰게 되니 이번에 는 가격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기본형 가격을 3백60마르크(약 20만원 ) 내렸고, 게다가 추가 옵션 가격의 인하폭은 놀랄 만하다.

골프를 A클래스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던 벤츠사의 전략은 조금 차질을 빚 을 가능성도 있다. 가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뿐더러 신형 골프는 A클래 스보다 무려 50cm나 길고 사이드 에어백에 전동식 시트와 파워 스티어링 까지 기본으로 무장하고 있다. 원래 벤츠사는 A클래스를 시판하면서 골프 소비자들을 30% 가량 끌어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아우디는 기존 A4의 하이 퍼포먼스 버전인 S4를 선보였다. 세단과 왜건형 등 두 종류가 있는 S4는 올 11월 시판 예정인데, 6단 수동변속기에 스포 츠 드라이빙을 위한 서스펜션, 대형 범퍼와 제논 헤드램프 등을 장착하고 있고 아울러 차체 강성을 대폭 높이고 있다. 이 모델은 BMW M3와 한판 승 부가 예상되고 있다.

포르셰 911이 수냉식 엔진으로 바뀐 것은 이번 모터쇼의 뉴스였다.911은 배기량 3.4리터, 수평대향 엔진에서 구형 모델보다 15마력이 향상된 3백 마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형 포르셰는 리엔지니어링된 부분이 많고, 복스 터와 40% 가량의 부품을 공유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신형 포르셰 수냉식 엔진으로 바꿔

(사진/BMW의 고성능 스포츠카 M쿠페. )

BMW는 야외 천막형 전시장으로 조형미를 한껏 자랑했다. BMW는 3백21마력 의 고성능 스포츠카인 M쿠페를 내놓아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았다. 이 모 델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본드카 Z3 로드스터에 고성능 엔진을 얹은 것으로 레저용 자전거와 골프 클럽 세트가 들어갈 정 도의 넓은 트렁크 공간이 특징이다.

프리랜더는 4WD 마니아들에게는 새로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BMW 계열사인 로버는 신형 SUV(Sports Utility Vehicle) 프리랜더를 통해 기 존 랜드로버의 강력한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면서 루프를 부드럽게 처리해 언론으로부터 ‘도시의 카우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프리랜더는 혼다 CRV와 도요타 RAV-4와 경쟁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이며, 유럽에서 내년 초부터 시판 예정이다.

98년 가을부터 시판될 미니밴 스타일의 오펠 자피라는 아스트라 베이스 모델로, 4도어에 일곱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공간활용이 뛰어나다. 자 피라와 함께 전시된 차세대 오펠 아스트라는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링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의 모델보다 체구가 커진 게 특징이다.

말레이시아의 프로톤사는 이번에 카브리올레 컨셉트카까지 선보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프로톤 부스에는 418 LRS 쿠페가 부스 중앙을 지키고 있었 는데, 현재 독일에서의 판매는 아직 미미하지만 차츰 증가 추세에 있어 그들의 기술 축적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모터쇼의 꽃은 컨셉트카다. 이번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돋보였던 컨셉 트카는 푸조 806 루나보. 마치 픽업과 카브리올레를 뒤섞어놓은 것같은 스타일링 때문에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포드의 쿠페형 컨셉트카 MC2는 5 개의 이동식 글라스 패널의 독특한 스타일이 특징이며 양산차 몬데오를 기본으로 개발한 모델이다. 미쓰비시는 직접분사 엔진을 얹은 컨셉트카 H SR-VI를 선보였는데, 이 모델은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동시에 즐길 수 있 는 미쓰비시 SUV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티코 후속 모델 관람객 관심 모아

한편 국내 메이커들도 독일 공략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현대자 동차는 경차 아토스를 부스 중앙에 배치하고 작지만 강력한 엔진을 강조 하려는 듯 미식축구 이벤트를 벌여 신선함을 더하고 있었다. 기아자동차 는 국내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눌린 듯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둘러 세피아 Ⅱ의 베일을 벗겨버리고 말았고, 쌍용자동차도 체어맨을 등장시켜 분위기 를 쇄신시키려고 했으나 여의치 못했다. 다만 현재 동유럽을 중심으로 활 발한 판매신장을 보이고 있는 대우는 티코 후속 모델 등을 내놓고 관람객 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권오준/ 월간 CARTEST 편집장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