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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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드워드 2세 때 런던의 거리에서 치러진 축구는 마치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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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을 발로 차는 놀이는 오랜 옛날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치러져 왔다. 기원전 3천년께 중국에는 가죽 주머니에 머리카락을 넣은 볼을 차는 놀이 가 있었고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도 축구와 비슷한 경기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온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근대축구는 영국에서 비 롯됐다.
중세인 12세기쯤 영국을 휩쓸기 시작한 풋볼(football)의 기원이라고 전 해지는 이야기는 무시무시하다. 8세기에 스칸디나비아에서 영국으로 쳐들 어온 침략군을 템스강의 킹스턴에서 물리쳤을 때 적장의 머리를 발로 차 며 ‘승리의 놀이’를 한 것이 축구의 기원이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 지나 전설에 지나지 않고 만약 적장의 목을 발로 찬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바로 축구의 기원은 아니고 원래 축구 같은 놀이가 이미 존재했었 기 때문에 굴러다니던 목을 차서 놀았을 것이라는 풀이가 맞는 것 같다. 이 무시무시한 전설이 그럴싸하게 여겨질만치 중세 영국의 축구는 거칠어 ‘몹 풋볼’(mob football=폭도의 축구)이라 불렸다.
시가전 양상에 사망자도 나와
‘동네축구’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낮은 수준의 축구를 뜻하지만, 영 국의 옛날 축구는 도시의 두 구역이나 혹은 시골의 두 마을이 총동원되어 치르는 거칠고 거친 대항경기였다. 그때의 축구에는 명문화된 경기규칙이 란 것이 없었다. 경기장도 제한이 없어 시골의 경우 밭이건 목장의 풀밭 이건 들판이건 민가의 마당이건 어느 곳을 통과해 볼을 옮겨도 아무런 제 약을 받지 않았다. 참가하는 인원수도 제한이 없었다. 또 볼을 옮기는 방 법도 역시 제한이 없어 볼을 안고 뛰어도 좋고 차거나 던져도 좋았다.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칼만 휘두르지 않으면 무슨 수단을 써도 괜찮았 다. 서로 잡고 뒹구는 육탄전이 벌어져 부상자는 물론 심지어 죽는 사람 까지 나오기도 했다. 경기시간도 제한이 없어 상대 마을의 성문 혹은 골 로 정해진 나무 밑에 볼을 옮겨 놓아 어느 쪽이건 1점만 올리면 그것으로 경기는 끝이었다. 영국을 여행한 프랑스 사람이 마치 시가전 같은 이 축 구를 보고 “이것이 놀이라면 영국사람들의 싸움이란 얼마나 격렬할까” 라고 목을 움츠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민들의 불만을 배출하기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난 이 축구를 통치자 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축구에 열중한 나머지 국민들이 가업을 소홀히 한다든가, 치안을 어지럽힌다든가 국방에 도움이 되는 활쏘기 훈련을 게 을리한다든가 아무튼 갖가지 구실로 축구금지령은 여러 차례 내려졌다. 그 가운데 1314년 에드워드 2세, 1447년 헨리 4세가 내렸던 축구금지령은 유명하다.
그러나 통치자가 축구금지령을 자주 내렸던 참된 까닭은 축구를 즐기기 위해 모인 군중들이 자칫 정치적 불만을 터뜨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긴 고금동서를 통틀어 통치자, 특히 정통성을 지니지 못 하거나 안정되지 못한 정권의 통치자는 어떤 목적에서건 많은 군중이 한 자리에 모여 흥분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도 군사정권시절 연고전 등 대학생들의 스포츠행사 때마다 많은 경찰병력 이 동원됐던 것은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돼지의 오줌통을 부풀려 발로 차는 거친 축구는 여러 차례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대중오락으로 근세까지 살아 남았다. 거 친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축구는 교양있는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아 자 연소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828년 토머스 아놀드 박사가 영국에서도 가장 이름난 퍼블릭스쿨인 럭비교의 교장으로 취임함으로써 축구는 새로 운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아놀드 교장은 학생들이 음주 도박 등의 악습 에 물들지 않도록 그들의 에너지를 건전한 놀이로 돌리기 위해 축구를 비 롯한 스포츠를 장려했다.
축구 등 스포츠를 통해 학생들에게 스포츠맨십을 심어 나가는 아놀드 교 장의 교육은 당시 매우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럭비교의 뒤를 따라 이튼, 차터하우스, 윈체스터 등의 명문교들도 아놀드 교장의 교육법을 본 받아 축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경기룰은 학교마다 달라 통일되지 않고 있었다.
‘사커’는 통일룰 제정한 ‘협회’가 기원
다른 팀과 경기를 갖기 위해서는 통일된 경기룰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높 아지면서 1863년 런던과 주변의 클럽 대표들이 모여 축구협회(Football A ssociation)를 결성하고 통일룰을 마련했다. 이 통일룰을 적용하는 축구 를 Association Football이라 불렀으며 이 Association(협회)에서 사커(S occer: 협회사람)라는 말이 태어났고 사커가 축구를 뜻하게 됐다.
통일룰의 제정은 축구가 그때까지의 거친 게임으로부터 거듭나 일정한 약 속 아래 공명정대하게 겨루는 근대스포츠로서의 새출발을 가능하게 만들 었다. 또한 룰을 갖춘 축구는 사람들의 건강과 모럴에 이바지하는 스포츠 로 받아들여지면서 온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가게 됐다.
고두현/ 스포츠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