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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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는 오는 10월7부터 이틀간 졸업예정 학생들과 기업들을 연결해주는 취업박람회를 연다. 물론 한명이라도 더 일자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다. 서 울대 당국이 취업박람회를 주선하기는 서울대 개교 51년 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지난 8월 말 안기부의 대졸 신입사원 원서접수 때는 지원서가 모 자라 소동을 빚기도 했다. 3백장의 안기부 입사지원서가 순식간에 동난 것이다. 학교쪽이 서둘러 2백장을 추가로 받아 왔지만 이도 곧 다 나가버 렸다. 서울대는 10월초 한번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10월24일 한차례 더 취업박람회를 열 계획이다. 서울대 취업정보실의 김태수 주임은 “서울대 의 취업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면서 “올해의 경우 기업들이 보내는 지원서도 예년보다 줄어 취업난이 더 심해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서울 대에 취업정보실이 생긴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다.
단순 경쟁률만 4대 1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취업난은 올 들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올 하반기에 4년제 대학 졸업생만 17만명이 쏟아져 나오게 될 취업시장은 본격적으로 장이 열리기 전부터 이미 꽁꽁 얼어붙었다. 취업전쟁이라는 표현이 부족 해 이제 ‘취업대란’ ‘취업공황’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무엇 보다 오랜 경기침체 속에서 경영난으로 생존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앞다퉈 감량경영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인력재배치, 명예퇴직, 조기퇴 직 등으로 감원조처를 단행한 데 이어 2단계로 채용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다. 취업전문기관들은 벌써부터 80년대 중반에 겪었던 취업공황의 재현 이 불가피하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생애 첫 직장에서 새로운 삶을 설계해 보겠다는 사회 예비 초년생들의 꿈과 희망이 첫발부터 실업 이라는 차디찬 현실 속에서 깨져 나갈 판이다.
취업전문 월간지인 리쿠르트는 하반기 채용시장이 흡수할 수 있는 대졸 인력은 많아야 8만여명 선인데 비해 구직 희망자는 신규 대졸자와 취업 재수생, 전직 희망자들을 포함해 32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단 순 경쟁률만 4대1선이다.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30대 그룹 등 대기 업들의 공채계획을 살펴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금방 드러난다. 30대 그룹 의 올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채규모(계획이 미정이거나 계열사별로 뽑 는 곳은 제외)는 모두 1만4천8백여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하반기의 1만5 천여명에 비해 절대량 자체가 줄었다. 지난 95년의 1만8천여명 과 비교하면 17%나 줄었다. 30대 그룹 중 지난해 하반기보다 채용규모를 늘리겠다고 밝힌 곳은 현대, 선경 등 8개에 불과하다. 반면 채용규모를 지난해 수준에서 묶거나 축소한 그룹은 18개에 이른다. 이미 부도를 맞았 거나 부도위기에 몰려 감원을 단행하고 있은 기아, 진로 등은 아예 신규 사원을 한명도 안뽑는다.
금융권 사정 가장 심각
그나마 대기업들이 발표한 수치에는 거품이 잔뜩 끼여 있다. 대외 이미지 를 고려해 실제 뽑는 인원보다 부풀린 혐의가 짙은 것이다. 지난해에도 상당수 그룹이 발표수치보다 적은 인원을 뽑았다.경기침체에 따른 기업들 의 어려움이 지난해보다 더욱 심한 것을 감안할 때 올 하반기 실제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20% 정도 줄어들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마저 나오고 있 다. 이미 올 상반기 30대 그룹의 신규채용 규모는 7천7백명으로 지난해의 9천9백명에 비해 24% 감소했다.
대기업들의 잇단 부도와 부도유예협약 적용으로 부실채권이 쌓이면서 심 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는 금융권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주요 시중은 행과 국책은행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보다 대졸 신규사원을 늘려 뽑는 곳 은 국민은행이 유일하다. 제일, 한일, 서울, 외환은행 등 4곳은 아예 한명도 뽑지 않을 계획이다. 공기업도 취업문이 좁기는 마찬가지다. 경영합리화를 위한 감량경영 바람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내년도 예산 증 가율을 5.8%로 낮춘 정부가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도록 독려할 것이 불보 듯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1천44명(전문대졸 7백50명 포함)을 채용 한 한전은 올에는 23% 줄어든 8백명(전문대졸 5백명)만 뽑기로 했다. 지 난해 3백명을 채용했던 한국중공업도 1백60명 내외를 뽑을 방침이다. 도 로공사와 주택공사, 수자원공사는 아직 규모와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 고 포철, 토지공사, 석유개발공사, 수출보험공사는 아예 한명도 뽑지 않 는다.
이에 따라 취업전문가들은 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춰 대기업에만 매달리 지 말고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리라고 충고하지만 중소기업의 사정도 여의 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7월 중 기업들이 전국 52개 직업안정기관에 요청한 인력은 올 들어 최저 수준인 1만3천7백85명에 그쳤다. 반면 일자 리를 구하기 위해 직업안정기관을 찾은 사람은 올 들어 최고치인 1만4천5 백87명에 달해 구인배율(구인자 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비율로 수치가 낮 을수록 취업난이 심하다)이 0.95배를 기록했다. 구인배율이 1배 이하로 떨어지기는 92년 12월(0.59배) 이후 처음이다.
지원서도 구하기 힘들다
당연히 불은 대학가에 떨어졌다. 요즘 각 대학 취업정보실은 졸업예정자 들과 기업, 취업전문기관 관계자들로부터 쏟아지는 문의전화로 정신을 차 릴 수 없다. 취업정보실 앞 게시판에는 대기업부터 이름도 알 수없는 중 소기업에 이르기까지 기업체들의 구인공고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를 바라 보는 학생들의 눈길에는 힘이 없다. 서강대 취업정보실의 임휘성(32)씨는 요즘 심정을 “한마디로 죽을 맛”이라고 표현한다.
대학들의 강권에 가까운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기업들의 설명회는 수백명 이 들어가는 대형강의실에서 열리지만 몰려드는 학생들로 자리가 부족해 강의실 밖 복도와 계단에까지 장사진을 이루기 일쑤다. 기업들이 설명회 에서 나눠주는 입사지원서를 받거나 채용면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다. 그 나마 입사지원서 한장 받기도 쉽지 않다. 아예 기업설명회 때 입사지원서 를 한장도 안가지고 오는 기업도 있다. 얼마전 삼성그룹 한 계열사가 서 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대학 경영학과에 입사지원서를 보 내왔다. 그러나 정원이 3백명인 이 과에 보내 온 지원서는 단 5장. 학생 들은 단지 지원서만을 얻기 위해 4년 동안 얼굴을 맞대온 친구들과 60대1 의 경쟁을 벌여야 했다. S대학 이아무개(26·경영학4)씨는 “9월 중순 선 경그룹 설명회에 갔다가 입사지원서를 받는 데만 꼬박 3시간을 기다렸다 ”고 털어 놓았다. 그래도 이씨처럼 상대적으로 취업이 잘되는 학과 출신 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한 대학의 취업담당 직원은 “상대적으로 취업 이 어려운 대학과 학과는 특별관리대상으로 선정해 놓고 있다”고 말한다 .
서울대, 연·고대 등 이른바 명문대들을 제외한 서울의 중하위권 대학과 지방대 학생들에게는 입사원서 얻기가 하늘에서 별따기 만큼 어렵다. 최 근 부산의 D대학 경영학과에서는 지방은행 계열 선물회사의 신입사원 채 용에 과수석생 한명만이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합격했고 나머지는 지원서 자체를 구하지 못했다. 1∼2년 전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출신학교나 전 공, 성적 등을 잣대로 학생들을 사전에 걸러내지 않고 공평하게 지원자격 을 주는 제도가 도입됐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대학이나 학생들은 거 의 없다.
공공연한 사전채용에 지방대생들 ‘좌절감’
대기업들이 공공연하게 벌이는 사전채용은 중하위권 대학과 지방대생들의 취업난을 더욱 가중시킨다. 주요 그룹들은 9월 말~10월 중에 지원서를 접수받아 오는 11월30일 동시에 시험을 치른다는 공채일정을 발표했지만 이미 9월 초부터 명문대학 졸업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사전채용에 들어갔다. 우수인력을 조기에 확보한다는 이유에서다. 대기업들은 이런 사전채용을 위해 각 명문대학에 그 대학출신 직원들을 보내 취업면담을 실시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그룹 전체로 3백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뽑기로 한 K그룹은 지난 9월초 명문대학들을 중심으로 취업면담을 실시했다. 취업면담은 학교 앞 카페나 호프집, 커피숍에서 열려 이른바 `카페상담'으로 통하는데 서울대에서는 1백50명이, 연대에서는 그 두배인 4백명이 몰려왔다. 저학년때부터 장학금을 대줘 연고를 맺은 뒤 졸업 후에 반의무적으로 입사하도록 하는 산학장학생 제도도 한 방편으로 이용된다.
물론 산학장학생 수혜대상은 소수 명문대학으로 국한된다. 사전채용에서 소외되는 학생들의 경우 자칫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들러리 인생'이라는 쓰라린 패배감과 기성사회에 대한 배신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한 대학의 취업담당 직원은 "사전채용으로 미리 정해지는 인원 수가 기업별로 적게는 전체ㅔ 공채인원의 50%, 많게는 80%에 이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