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인터뷰/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한국·몽골과장 유리 바닌 교수

“한반도 평화문제 논의의 장으로는 4자회담보다는 유엔이 더 낫다고 생 각합니다.” 최근 영남대학교가 주최한 통일심포지엄에 참여하기 위해 한 국을 찾은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한국·몽골과장 유리 바닌 교수는 한반도 평화구축 문제에 이렇게 조언했다. 최근의 4자회담 2차예회담이 결렬되는 등 본회담 성사 자체가 불투명한 현상은 바로 ‘4자’라는 틀의 한계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는 지난 40여년 동안 남북한을 연구 해오면서 남한을 3차례, 북한을 6차례 방문했다. 그는 3번째인 이번 남한 방문에서 “남한의 번영과 평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면서도 “한반도 통 일에서 북한적 요소를 모두 악으로 규정해 배제하려는 듯한 분위기는 바 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개혁개방 후의 러시아·북한관계’란 주제로 발표했는데 내용을 요약 하면.

=페레스트로이카 말기 이후 북한과 소련 관계는 매우 복잡한 변화를 겪었 다. 특히 90년 소련 붕괴 뒤 러시아는 북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상실했다 . 거기에는 여러 변수가 있다. 우선 러시아의 대외정책이 바뀌었고 남한 이라는 변수가 새로 등장했다. 지난 92년 러시아 외무부가 작성한 대외정 책 기본 개념은 국경선을 따라 친선관계를 유지하며, 반공주의 노선을 유 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남한만을 이상적인 파트너로 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북한과의 모든 정치적 접촉 이 중단됐고, 경제적 관계도 축소됐다. 나는 몇편의 논문을 통해 중국과 같이 남북한 등거리외교를 펼 것을 주장해왔다.

-등거리외교가 남북한에도 이익이 될 수 있나.

=러시아를 배제하고 극동에서 평화상태를 유지하기란 어렵다는 점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남북한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 소련이 북한에 대해 가졌던 영향력을 잃고 한반도 세력균 형의 한 축이 무너지게 됐다. 한반도의 불안정성은 이런 데서도 기인한다 고 생각한다.

-4자회담이 한반도 평화구축에 효율적이라고 보는지.

=4자회담으로 견고한 평화가 이루어진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4자회담 구조 자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남한을 도운 나라는 16개 유엔국이고 북한쪽에서는 소련·중국이 그 구실을 했다. 따 라서 한반도 상태 개선 논의는 유엔이 주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반도 문제가 단순한 지역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큰 국제문제기 때 문이기도 하다. 이는 또 효율성과도 관련된다. 지금까지 남북한간에는 3 자니, 6자니, 8자니 하는 여러 제안이 있었지만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개별적인 제안이나 논의보다는 유엔의 좀더 많은 나라들이 평화를 위한 압력을 가할 때 논의는 더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남한 언론에서는 김정일 비서의 승계가 언제 일어날 것인지 관심이 높다 .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고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회주의 민주주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정일 비서는 30년간에 걸쳐 제2인자 위치에 있었다. 2인자였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위치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3년상 끝났을 때 한 북한 인사는 ‘현재 중요한 것은 식량 난·경제난 등 나라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군 최고 사령관이 나 당서기 등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 했다.

-최근 북한이 개방의 발걸음을 더욱 빨리 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도 남한이 가졌던 초기 발전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강력한 국 가가 그것이다. 북한도 모든 경제가 국가의 손에 있으며 따라서 개방정책 에서도 국가란 요소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실제로 나 진·선봉자유지대나 거기에서 시행되는 20개 법률을 볼 때 북한의 변화엔 놀라운 점이 있다. 나진·선봉뿐만이 아니라 북한의 기본경제 기조도 수 출주도로 변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걸림돌이 남북한간 긴장상태다. 만일 남북한 군사대립관계가 없었다면 북한의 개방 경향은 더욱 강화됐을 것이 다.

-주체사상이 개방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있다.

=내가 볼 때 북한 주체사상의 뿌리는 구한말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 같 다. 당시 김옥균 등 많은 사상가들이 주체를 논의했다. 또 남한 초대 문 교장관인 안호상씨는 김일성 주석보다 먼저 주체라는 말을 썼다. 지난 58 년 김일성 주석이 처음 주체라는 말을 썼을 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을 하지 않았다. 주체라는 말이 조선민족에게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깊 이 인식돼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남북한의 장점을 어떻게 보고 있나.

=북한을 방문했을 때 탁아소 제도나 무상교육제도 등은 잘 정비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 노동자들도 정기건강진단은 물론 휴식에 대한 권리 등 도 잘 갖춰져 있었다. 반면 남한은 무엇보다도 부유한 나라라는 게 장점 이다. 경제발전이 사회발전에도 큰 영향을 줬고, 여러 가지 면에서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았다. 내가 남북한에서 받은 인상은 모두 민족적 전 통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요소들 중 장점을 서로 존중한다면 남 북한 모두 큰 발전이 있을 것이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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