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영공방어 비상걸렸다

(사진/삼성항공의 KF-16 조립 모습. 1,2차 사고기는 삼성항공이 조립생산했다.)

9월19일 오전 9시30분께 이광학 공군참모총장이 예고없이 국방부 기자실 을 방문했다. 대당 3백20억원에 달하는 우리 공군의 주력기인 KF-16전투 기가 40여일 만에 잇따라 추락한 데 대한 대국민 사과를 표명하기 위해서 였다.

공군은 지난 8월6일 경기도 여주상공에서 추락한 데 이어 지난 9월18일 또다시 충남 서산 상공에서 야산기슭으로 곧두박질침으로써 불과 40여일 만에 6백40억원을 하늘로 날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손실은 오히려 부차적 문제라는 데 이번 추락사고의 심각성이 있다. 적기가 아닌 자국기 문제 때문에 한반도 영공방어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두대 모두 마지막 교신은 “엔진이…”

우선 두번의 추락사고는 닮은꼴이라는 점에서 KF-16전투기의 구조적 결함 가능성에 대한 지적은 자연스럽다. 1차 추락사고 당시 조종사는 “엔진이 flame out(작동중지)됐다”고 마지막 교신내용을 남기고 비상탈출했으며 2차 추락사고 조종사도 탈출직전 똑같은 내용을 소속 기지인 서산기지에 타전했다. 일단 엔진이상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다.

공군사고조사위원회는 지난 9월12일 첫 추락사고의 원인을 엔진내부의 연 료공급 계통 결함 때문이라고 밝혔다. 엔진에 장착된 △주연료 통제장치 와 압축장치의 날개꼴(블레이드) 연결관 △엔진통제장치로 압력을 형성시 켜주는 펌프의 점검용 마개 등 두가지 부품에 이상이 생겨 사고기의 엔진 작동이 중지됐다는 것이다.

조사위는 당시 사고대책과 관련해 사고직후 비행을 전면 중단시켰던 KF-1 6 전투기의 연료공급 계통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해 문제가 없는 전투기 에 대해서는 11일부터 비행을 재개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나 2차 사고기는 공군당국의 특별검사를 통과했다. 이 전투기는 서산 상공에서 엔진작동이 중단돼 조종사가 두차례나 재시동을 시도했지만 추락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 사고로 한국형전투기사업(KFP)의 신뢰성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 다. 당장 공군의 주력기인 KF-16 50여대가 땅에 묶였다. 사고원인이 규명 될 때까지 비상작전을 제외한 각종 훈련비행은 무기한 금지된 것이다.

만약 2차사고 원인이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엔진내부의 연료공급 계통으로 판명될 경우 어떤 식으로든 한국형전투기사업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 무엇보다 공군조종사들이 이 전투기의 안정성에 불안을 느끼게 되고 이 는 곧바로 전투력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차세대전투기사업으로 더 알려진 한국형전투기사업은 미국의 F-16을 우리 공군의 주력기 모델로 삼 아 99년까지 KF-16 120대를 실전배치한다는 것이다. 사업비용만 무려 52 억달러에 달한다. 지난 94년부터 엔진성능이 개량된 F-16 12대가 KF-16이 란 이름으로 도입된 이후 삼성항공이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기술지원을 받 아 국내에서 조립생산한 KF-16 36대가 공군에 인도됐다. 삼성항공은 99년 까지 72대를 면허생산할 계획이다. 1,2차 사고기는 삼성항공이 조립생산 한 32대 중 두대이다.

공군은 F-18을 원했다

이 전투기는 기종선택에서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은 지난 91년 한국형전투기사업의 모델 기종을 F-18로 하자는 공군의 요 청에도 F-16으로 결정하는 데 깊숙이 간여했다. 기종결정 과정에서 F-18 을 강력히 주장했던 정용후 전 공군참모총장은 ‘괘씸죄’에 걸려 90년 9 월 국군통합병원에 입원조처된 뒤 이임식도 치르지 못한 채 병원에서 강 제전역당했다. 정씨는 나중에 인사 비리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정씨는 당시 공군 장교들의 여론을 바탕으로 F-18을 강력하게 주장해 89년 12월 정부가 일단 F-18을 한국형전투기의 모델로 채택하게 했다. 이런 선택에 는 F-16이 단발엔진인 데 비해 F-18이 쌍발엔진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 다. 안정성 때문이다. KF-16의 모델인 F-16은 진작부터 말썽많은 전투기 로 지목돼왔다. 지난 76년 실전배치 이후 21년 동안 모두 2백31건의 각종 추락사고를 냈다. 특히 이 가운데 엔진결함으로 인한 사고는 95년 9건, 9 6년 8건 등 모두 99건에 이르고 있다.

군당국은 그러나 KF-16전투기의 잇단 추락사고에도 한국형전투기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광학 공군총장 은 이와 관련해 “사고조사 결과 문제점은 보완해야겠지만, 한국형전투기 사업의 기본골격은 현행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조종사들에게 F-16의 불안정성을 감수하고 가겠다는 것으로 받아들 여지고 있다. 추락사고 원인을 분명히 밝혀내야 방지대책도 세울 수 있는 데 그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사위는 지금껏 엔진의 구조 적 결함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차 사고조사에서도 엔진부품 공급사인 미국의 프랫 앤 휘트니사의 엔진설계나 부품에 결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엔진을 조립한 삼성항공 에 과실이 있는지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조사위는 그저 엔진공급 계통 이상의 직접적인 증거품을 사고현장에서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 고만 말하고 있다.

군당국은 이와 관련해 두가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일단 1차사고 때와 마찬가지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만큼 ‘연료통제장치로 압력을 형성시켜주는 펌프의 점검용마개’ 등 엔진 내 부에 장착된 두가지 부품을 수거해 1차사고 원인과 비교하는 것이 하나다 . 또하나는 1천6백여개에 달하는 다른 엔진부품에서 이상이 생길 가능성 을 조사하는 것이다.

군 고위관계자도 1차사고 당시 특별점검에 참여한 엔진부품 공급사인 프 랫 앤 휘트니사의 기술진이 연료공급계통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정한 사실 에 주목해 엔진의 다른 부품에서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사고조사 결과 연료공급계통의 결함으로 판명될 경우 이 회사 기 술진들이 엔진의 구조적 결함을 감추기 위해 점검결과를 조작했거나, 점 검을 잘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대당 3백20억원에 달하는 사고전투기의 배상문제까지 걸려 있어 군당국이 양쪽 관계회사들로부터 사고원인에 대해 ‘승복’을 받아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부품·조립·검사 얽혀 사고 원인규명 어려워

삼성항공쪽은 사고조사 결과 삼성항공의 조립공정상 하자로 판명될 경우 당장 F-16의 생산을 중단해야할 처지다. 나아가 한국형전투기사업이 만료 되는 99년 이후 현재 미군의 주력기인 F-15를 강력히 희망하는 공군의 희 망과 달리 F-16의 추가생산을 내심 원하고 있는 삼성항공의 ‘야무진’ 계획 자체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삼성항공쪽은 하자보증 기간인 1년이 지났기 때문에 계약에 의한 책임은 소멸된 상태라고 발뺌할 준비만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의 책임으로 판명나든 전투기를 인도하기 전까지 시험비행 은 물론 각종 품질관리 검사를 거치도록 돼 있는 군당국의 책임은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김도형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