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왜 '소수'의 영화는 안되는가

(사진/영화제 무산을 알리는 준비위. 성적소수집단의 문화적 권리가 무시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1회 서울 퀴어영화제가 무산됐다. 성적 소수집단인 게이와 레즈비언 등 의 삶과 언어를 영화로 표현한다는 취지로 10개월여에 걸쳐 준비된 이 영 화제는 당초 개막일이었던 9월19일, 서대문구청의 공연불허 처분과 행사 장인 연세대 동문회관의 단전으로 결국 좌절됐다. 영화제준비위는 이날 아침 최종 불허통고를 받았으며 불법강행을 우려한 동문회관이 전원을 차 단, 오후 3시·5시 상영예정 프로그램들을 취소시키고 오후 7시에는 예정 됐던 개막식 대신 상황설명 기자회견을 가졌다.


구청,“서류완비하면 접수 받겠다”

집회나 공연이 외부요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퀴어영화제 무산은 몇가지 점에서 다른 선례들 과 구별된다. 첫째, 관할당국이 실정법에 따라 '적법하게' 영화제를 무산 시켰다는 점이다. 영화제 준비위는 심의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상영예정작 50여편 중 네편에 대해서만 심의를 신청하는 절차상의 부실로 관할당국에게 저지의 빌미를 제공했다. 개막당일 공연불허 공문을 보낸 서대문 구청쪽은 “공연신고를 일단 접수받기 위해서도 필요한 서류들이 있다. 퀴어영화제는 공륜의 심의필증을 갖추지 않았다. 서류가 완비되지 않았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앞으로라도 필증을 갖춰 공연을 준비한다면 신고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전원(電源 )차단을 단행, 결국 불법 강행의 길마저 막아버린 연세대학교 동문회관쪽 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8월에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사용요청이 들어 왔기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신고 안 된 공연일 줄은 몰랐다. 행사당일 아 침 서대문구청과 문체부에서 전화가 여러 통 와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적 법하지 않은 행사를 위해 장소를 빌려줄 순 없는 일이며, 나가래도 나가 지 않고 공연강행 기미를 보여 전원을 차단해버렸다”는 것이다. 둘째로 들 수 있는 차이점은 일반대중의 공감 정도다. 정당하게 신고된 집회나 공연도 무산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뭔가가 무산됐다 하면 일단 정부 당국의 불법성을 전제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연대의 공감이 생겨나 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서울 퀴어영화제는 경우가 좀 다르다. 예를 들 어 인권영화제가 무산위기를 맞는다면 '인권을 보호하자는 데 그걸 막다 니' 하며 막연하게나마 의분을 느꼈던 사람들도 퀴어영화제에 대해서는 좀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성애란 여전히 대부 분의 ‘이성애자’들에게 ‘이상하고 징그러운 짓’이며 심지어는 ‘말세 의 징후’인 것이다. 그리고 ‘학습’에 의해 성적 소수집단의 존재를 알 고 있는 사람들도 감정적으로는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공연저지의 적법성과 일반적인 국민정서에도 불구하고 영화제 무 산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성적 소수집단의 존재가 결코 ‘범죄’가 아니며 또 영화제 형평성의 문제를 거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디포럼이 나 서울인권영화제 역시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기는 마찬가지지만 결국 불 법 상영은 강행될 수 있었다.


앞으로 행사장 옮겨 강행 준비

서울 퀴어영화제가 심의신청을 한 몇편의 영화가 전문가등을 위한 제한상 영 판정(연소자 관람불가일 뿐 아니라 성인 중에서도 일부 전문가들만 볼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으며 그나마 불법상영마저 저지됐다는 점(연대 동 문회관은 인디포럼의 불법상영은 저지하지 않았다)은 서울퀴어영화제의 적법성 이전에 더 큰 문제가 깔려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바로 반 (反)국민정서라는 문제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가 아닐진대, '존재'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누가 누구를 사랑하느냐 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까지 문제삼고 정죄할 수 있는 권리가 과연 누구에 게 있겠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퀴어영화제 준비위쪽은 록카페 락월드나 창무소극장 등을 대안적인 행사 장으로 검토해보면서 추후 영화제의 강행을 준비중이다. 영화제 준비위 집행위원인 김혜준씨는 “실로 답답한 일이지만 언제나 방법은 있게 마련 이다. 가능한 빨리 영화제를 꾸려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은하 기자/ 한겨레 씨네2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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