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쫓고 쫓기는 ‘2위싸움’

(사진/이회창 대표는 이인제 전 지사를 탈당 전 만나 설득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두 사람은 지금 2위 자리를 놓고 숙명적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뒤집기냐 굳히기냐. 보는 이의 손에 땀이 잡히는 게임은 1위를 다투는 결 승전이 아니라 아이러니컬하게도 2위를 가르는 ‘준결승전’이다. 즉, 이 회창 신한국당 대표와 이인제 전 경기지사간의 2위 다툼이 정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DJ ‘고정표’ 못 벗어났나

이 게임은 워낙 박빙의 차이로 진행되고 있어 일단 스릴이 넘친다. 한가 위 이후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 이 전 지사가 신한국당 이 대표를 적 게는 3%에서 많게는 7% 정도 앞서고 있지만, 가변성이 매우 큰 데다가 갈 수록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다.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동아일보> 조사에 서는 4.4%로 나타난 표차가 <조선일보> 조사는 3.4%, <경향신문>은 1.6% 로 줄어들었다. <한겨레> 조사에서는 3.7% 차이로 나타났다. 이는 오차한 계 범위 안이다.

'2위 게임'은 일단 여권의 집안싸움으로 비춰진다. 이 대표나 이 전 지사 가 상당 부분이 '반DJ' 성향의 표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7월 말 신한국당 경선 직후 때의 여론조사와 최근 조사를 대략적으 로만 비교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즉, 7월 21일 이 대표가 신한국당 후 보로 확정된 뒤 <중앙일보>가 실시한 조사에서 이 대표는 50.3%의 압도적 인 지지를 보이고 있는 반면에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28.2%, 자민련 김 종필 총재는 11.2%로 나타났다. 여기서 눈에 띄는 대목은 김대중 총재의 지지율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번 대선전의 전체 판도를 관전하는 주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첫째 김대중 총재가 현재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자력에 의한 1위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회창 대표의 지도력이나 아들의 병역 문제 따위로 인한 여권표의 분산과 이탈이 김 총재에게 일종의 ‘어부지 리’를 안겨준 측면이 없지 않은 것이다. 김 총재가 아직도 지난 92년 대 선때 받았던 득표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 하다.

이는 두번째 관전 포인트로 직결된다. 즉, 앞으로 '비DJ 표'의 쏠림 현상 이 나타날 것이냐가 주요한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사실 유권자의 사표방 지 심리를 감안할 경우 '비DJ 유권자'의 응집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한다. 물론 이 대표나 이 전 지사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의 정서 때문에 과 반수 이상이 한쪽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상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열이 분명해질 경우 일정수의 유권자는 사표를 피하는 쪽으로 돌아서온 게 그 동안 투표성향이었다. 이 경우 현재의 대선 판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는 점 때문에 2위 다툼은 민감한 관심사다.

2위 싸움에서 현재 뒤쫓는 쪽은 신한국당 이 대표. 여당 후보의 지지도가 3위로 처진 것은 이 대표가 처음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전례가 없는 후 보교체론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따라서 2위 탈환은 여당으로서는 정권재 창출 가능성을 잴 수 있는 가늠자가 될 뿐만 아니라 이 대표로서는 정치 적 생명이 달린 문제이다. 10월 초순에서 늦어도 중순까지 2위에 올라서 지 못할 경우 이 대표는 다시 한번 교체론자의 심각한 도전을 받게될 가 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권재창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여권의 보수세 력이 과연 그때에도 이 대표를 ‘모시고’ 끝까지 가려고 할지는 불확실 한 것이다.

이회창, 9월30일을 노린다

신한국당 이 대표쪽은 10월 초까지는 이 전 지사를 추월할 수 있으며, 그 렇게 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2위로 올라서야 현재의 다자간 대결 구도를 김대중-이회창의 양자 대결 구도로 만들어 막판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윤원중 비서실장은 “2위가 돼 DJ와의 맞대결 구도가 되면 나머지 후보들은 군소후보로 전락하고 그동안 마음을 못잡아 흩어진 여권표들이 결국 우리 쪽으로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9월20일 정치개혁특위의 쟁점 타결을 위한 ‘여야 3당대표회담’을 전격 제의한 데에는 이 전 지사와 조순 민주당 총재 등을 군소후보로 따돌리기 위한 전술적인 계산이 깔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대표쪽은 또 이 대표의 지지율은 그동안 최저점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은 반면 이 전 지사쪽은 지금이 최고의 상태라며 추월을 자신하고 있다. 이들은 역전의 계기를 9월30일 전당대회로 잡고 있다. 이 대표가 당 총재직을 이양받아 여권의 중심으로 확실한 위상을 굳히게 되 면 여권 내부에서 후보교체론 등 더이상 ‘딴소리’가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대표를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될 것이라는 판 단이다.

이 대표쪽은 지지율 상승을 위해 우선 보수표 끌어들이기에 초점을 맞추 고 있다. 이 전 지사를 따라간 표들이 대부분 개혁적인 성향의 표로 그들 을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리는 반면에 보수표는 부동표로 남아 있 기 때문에 이들을 끌어들이기가 쉽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 정강정책에서 ‘역사바로세우기’ 문구를 삭제하자는 등의 구상은 모두 이러한 차원에 서 나온 고육책으로 보인다. 대통령중심제 문구를 없애면서 내각제로의 전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것도 보수세력 특히 자민련을 겨냥한 보수표 뭉치기의 일환이다.

이 전 지사쪽은 앞서면서도 쫓기는 입장이어서 다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미세하기는 하지만 한가위 이후 이 대표와의 지지도 차이가 줄어 들고 있어 이 전 지사쪽의 움직임은 더욱 부산하다. 2위를 확고하게 계속 유지해야 정치적 세가 불어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2위 굳히기에 총력 을 기울이고 있다. 이 전 지사쪽은 10월 말까지만 2위를 유지하면 신한국 당은 내부에서 붕괴될 가능성이 크며, 결국 민주계 대부분이 자신들 쪽으 로 건너올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 전 지사쪽은 이를 위해 9월19일 원외위원장 15명의 동반탈당 선언을 계기로 우선 신당창당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단 둥지를 먼저 틀 어야 뜬새들이 날아든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10월 중순까지는 신당의 모습을 갖춘다는 게 이들의 내부 계획. 신한국당 내의 동조 의원을 포함 해 최소한 7, 8명의 현역의원의 참여를 장담하고 있다. 이 전 지사의 한 측근은 이와 관련해 “김운환 의원과 김학원 원유철 의원 등 원내 3인방 이 신한국당 안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탈당 여부를 두고 머뭇거리는 것 이 아니라 동조자를 규합하기 위한 것”이라며 “때가 되면 민주계의 상 당수가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제-조순 합칠 수 있을까

이와 함께 이 전 지사쪽이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민주당 조 순 총재쪽과의 연대나 합당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연대가 형 성될 경우 득표력(<한겨레> 9월20일 조사: 김대중 총재 32.3%, 이인제 연 합후보 30.6%)이 가장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다가 정치적 색깔 이나 명분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조순 총재와의 연대만 형성되면 신한국당 이 대표쪽이 추진하는 보수대연합에 비해 개혁성을 더 욱 부각시킬 수 있고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 조직이나 자금 측면에서도 이 전 지사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양쪽 모두 계획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부 걸림돌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 대표쪽은 우선 보수대연합과 관련해 개혁세력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 다. 9월22일 당내 개혁적인 초선 의원들이 모여 이 대표의 정체성에 의문 을 표시하면서 보수대연합구도와 내각제 개헌론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은 그 일례에 불과하다. 이와 함께 보수진영 안에서도 마찰과 갈등이 줄어들고 있지 않다. 후임 당 대표직을 놓고 김윤환 고문과 이한동 고문 진영이 줄다리기를 벌이는 것은 보수진영 내부의 복잡한 속사정을 반영해 준다.

이 전 지사쪽도 나름대로의 난기류에 쌓여 있다. 탈당시기를 엿본다는 이 전 지사쪽의 설명과는 달리 동조 현역의원들의 탈당은 당분간 쉽게 이뤄 질 것 같지 않다. 서청원 의원 등 민주계 비주류쪽도 당분간 관망 자세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민주당이나 통추쪽과의 합당이나 연대 또한 만 만치가 않다. 조순 민주당 총재는 이 전 지사쪽과의 연대에 대해 “신당 의 모습을 보고 난 뒤에야 얘기할 수 있지 지금은 전혀 아니다”고 못박 았다. 민주당 관계자들도 이 전 지사쪽만 키워주는 연대를 지금 거론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2위 싸움은 이처럼 내부 변수가 많아 결국 어느 쪽이 정치력을 발휘하면 서 정치적 명분을 획득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하겠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