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
|
(사진/70년대 이후 매카시즘의 바람을 건너뛴 선거는 없었다. 지난 8월 오익제사건 때 안기부 출석요구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국민회의 당직자들.)
“선거에서 색깔론과 용공음해가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한 선거를 통한 진정한 민주주의의 달성은 불가능하다.”
아태평화재단(사무총장 임동원)이 지난 9월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 최한 ‘공정한 선거와 정치발전’이란 주제의 세미나 결론이다. 이날 세 미나는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역대 선거 때마다 논란이 돼온 매카시즘 문제를 ‘선거와 매카시즘’이란 측면에서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정 치권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나라 선거에서의 매카시즘 악용사례와 유래, 선거와 매카시즘의 관계 등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 역대 선거는 민 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그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로 바로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매카시즘을 꼽았다. 역대 집권세력들은 선거 때만 되면 남북한간의 긴장을 확대해 보 수층의 안정희구 심리를 자극하거나 색깔론을 조장해 야당을 포함한 정치 적 반대세력을 분열·약화시키는 매카시즘을 악용한 재집권을 통해 영구 적 집권연장을 꾀해왔다는 것이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황태연 동국대 교수는 ‘북풍’과 용공음해라는 매카 시즘이 우리나라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배경으로 체제이념적 남북 대결 상황에 기인하는 대북 공포 및 히스테리화된 반공주의를 들었다. 그 는 여당과 국가 정보부서가 국민의 대북 경계심을 적절히 이용해 선거기 간중 공안사건을 터트리거나 공안사건이 일어난 상황에서 야당 후보를 좌 경용공 혐의로 음해하면 북풍과 좌경용공 조작의 효과는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증폭되는 경향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북풍과 용공음해의 상호 증폭 관계는 분단 한국에서 여야정권교체를 가로막아 온 결정적 메커니즘 으로 진단했다.
황 교수는 북풍과 용공음해는 여당의 고정 지지세력에게는 전통적 투표행 위를 강화하고, 친여성향의 주변부 지지자와 중립적인 부동표, 친야성향 의 주변부 지지자에게는 북한과 야당후보, 정권교체 등에 대한 불안감 및 공포심을 야기하거나 반공의식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의 강경세력과 남한의 극우세력이 선거기간중 ‘적대적 공조’ 를 위해 남북긴장 관계를 조성하려는 의도를 막기 위해서는 야당이 먼저 북한의 대남 강경책동과 남한 선거개입을 질타하는 ‘선제성 대북 비판’ 을 강하게 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나아가 강력한 국가비전을 제시 함으로써 여권의 반복적 용공음해 기도를 단순한 음해공작으로 왜소화시 키는 작업도 병행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풍과 용공음해가 지역주의 와 연결되는 ‘색깔론+지역주의’의 결합은 우리나라 선거에서 가장 폭발 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김종철 한겨레 논설위원은 정치권에서의 색깔론은 이승만이 정적이나 반 대자들을 빨갱이나 용공분자로 몰아 제거한 데서부터 출발했다고 지적했 다. 해방후 남한 단독선거를 주장한 이승만과 한민당이 단독선거를 반대 한 김구 선생과 한독당을 물리치고 권력을 잡으면서 색깔론은 반대세력, 특히 야당을 탄압하는 집권세력의 유용한 무기가 돼왔다는 것이다.
이승만 시대부터 시작된 색깔론 망령은 박정희 시대를 통해 그 방법과 책 략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전두환·노태우 시대를 거치면서 현 김영삼 정권 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역대 집권세력들의 대표적 색깔론 악 용 사례로 이승만 시대의 진보당 조봉암사건과 박정희 시대의 인혁당사건 과 서승·서준식씨 형제 간첩사건, 전두환 시대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노태우 시대의 이선실 간첩사건, 김영삼 시대의 95년 지자제 선거 당시의 민주당 조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사상공세와 96년 4월 총선 전의 간첩 김동식사건 등을 들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신한국당이 국회에서 날치 기로 안기부법을 개악함으로써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간첩사건과 색깔 론이 다시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김삼웅 아태평화재단 기조실장은 토론에서 색깔론의 생산유통과정을 두가 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청와대와 여당, 정보기관 등 권력의 핵심부에서 시나리오를 만들어 국내 언론을 통해 확산시키는 정통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핵심에 사람이 외국의 3류 언론에 흘려 보도되도록 한 뒤 이것을 역수입해 국내언론에 보도되도록 하는 우회적 수법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용공음해와 색깔론은 결국 권력핵심의 정치적 의도 에 언론이 가세함으로써 그 위력을 발휘해왔다고 진단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색깔론은 중세의 마녀사냥과 1950 년대 미국에서의 매카시즘 광기와 다를 바 없는 민주주의 제1공적으로 규 정했다. 매카시즘적 색깔론이 사라질 때만이 공정한 선거가 보장되고 민 주주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성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02일 제 1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