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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추적이 부른 죽음

(사진/"언론이 다이애나를 결국 죽이고 말았다." 다이애나는 선정적인 언론의 집중표적이었다.)

"언젠가는 언론이 다이애나를 죽일 거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손에 피를 묻히면서까지 그를 죽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고 직 후 다이애나의 남동생 찰스 스펜서(33) 백작은 이번 사고의 책임을 언론 에 물었다. 왕실의 일원이 된 이래 끊임없이 다이애나를 괴롭힌 언론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사실 왕실과 언론 사이의 불협화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상 최 초로 언론에 대해 인상을 찡그린 이는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1964 년 파파라치 사진사 레이 벨사리오에 의해 마거릿 공주와 호숫가에서 산 책하고 있는 모습을 찍힌 여왕은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유감을 표시했다 . 그 뒤 언론은 찰스 왕세자의 결혼을 시작으로 다이애나에게 초점을 맞 추면서 왕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1980년 11월 <선데이 미러>는 결혼 전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가 왕실 전 용 기차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냈다고 보도해 다이애나 공격의 포문을 열 었다. 왕실은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었다. 1981년에 찰스와 다이애나 의 전화 통화 내용이 도청됐다. 찰스 왕세자가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할 때 다이애나와 나눈 전화내용을 사이먼 리건이라는 기자가 공개한 것이다 . 고등법원은 이 테이프 공개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언론의 추적은 끊이 지 않았다. 1982년 <선>과 <스타>가 임신 6개월의 다이애나를 몰래 찍었 다. 바하마 해변에서 찍은 이 사진으로 두 신문사는 언론중재위로부터 경 고를 받았다.

왕실도 점잖게만 대응하지는 않았다. 1983년 2월에는 여왕이 직접 <선>을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선>이 전직 왕실 창고관리인 키에란 케니의 증언 을 사서 신문에 그대로 옮긴 것이다. <선>은 4천파운드의 배상금을 지불 했는데 여왕은 이 기금을 자선단체에 넘겼다. 1987년 12월 여왕의 전통적 인 행사인 크리스마스 연설내용이 당시 왕실 출입기자였던 마이클 콜에 의해 미리 새나갔다. 이 사건으로 콜 기자는 를 떠나야 했다. 1992년 6월 앤드루 모튼의 <다이애나, 그녀의 진실>이 발간되면서 왕세자 부부의 결혼에 대한 이상징후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언론중재위는 이를 언론출판 윤리규정에 어긋나는 행위로 간주해 경고 조처했다. 1992년 8월 다이애나와의 연인 사이였던 제임스 길비 사이의 전화내용이 도청 공개됐 다. 같은 해 11월 한국을 공식방문한 찰스 부부의 냉랭한 모습이 카메라 에 담겼다. 1993년 11월 타블로이드판에 노출이 심한 운동복 차림의 다이 애나 모습이 실렸다. 다이애나는 신문사와 체육관을 고소해 승소했다. 19 94년 6월 찰스가 TV인터뷰 도중 자신의 부정을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궁지에 처했다. 1995년에는 다이애나가 의 <파노라마>라는 프로그램 에 출연해 혼외정사를 인정해 왕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1996년 1월 다이애나는 사진사 마틴 스테닝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법원에 호소해 승소했다.

1997년 여름 다이애나의 여름휴가 중 이번 사고로 함께 숨진 도이 알파예 드와의 키스장면이 공개됐다. 그러니 몇몇 사진사들은 자동차 사고 직후 의식불명의 다이애나를 찍은 사진을 몇몇 언론사와 흥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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