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

속담 사냥꾼 송재선

俗談諧諷有天理. 속담에 해학과 풍자가 깃든 하늘의 이치가 있다. 송재선 (84)의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지 싶다. 어느 교수가 써준 글나부랭이일 뿐 그런 경지를 깨친 것은 아니라고 쑥스러워 하지만 그의 삶이 완연하게 비 친다. 8·15 해방 무렵부터 모으기 시작한 속담이 5만5천여개에 이르니 그걸 층계삼아 한걸음씩 딛고 올라서면 혹 하늘의 이치에 닿지 않겠는가. 그랬더니 어린 아이처럼 얼굴이 빨개진다. “속담이야 그럴지 모르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해서….”


분단에 휘말린 불행했던 18년

본디 재밌는 말을 즐기는 싱거운 위인이었다. 속담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처음 속담을 들려준 사람의 입담이 너무 구수했단다. 보 통학교 2학년 때 조선어 시간이었다. 책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따위의 속담 몇개가 실렸다. 한학자 출신의 선생님은 신이 났는지 고사성 어를 곁들여가며 속담 보따리를 풀었다. 댕기머리 학동이 천자문 읊듯 속 담을 줄줄 꿰는데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저렇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조선말도 있었나. 그때부터 일부러 말 끝마다 속담을 붙였 다. “친구들이 덤빌라치면 이렇게 엄포를 놨지. 나한테 까불지마.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8·15 해방은 그의 속담 취미에 불을 지폈다. 일제의 압박에서 막 벗어난 터라 민족의식이 폭발적으로 고양되던 시기였다. 그때 뜬금없이 속담을 발굴하는 것은 민족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벽돌 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그날로 속담을 모으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물론이 고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속담 하나 달라고 추근댔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의 말 하나하나가 그대로 속담이었다. 많을 때는 하루에 수십 개씩 속담을 모았다. 책방을 돌며 속담을 넝마줍기도 했다. 일제 말기에 폐간된 한글학회 기관지 <한글>은 가장 탐나는 물건이었다. 책 끄트머리 에 심심풀이식으로 속담이 서너개씩 소개됐기 때문이다. 일제가 종이를 배급하던 시기에 나온 책이라 지면은 20여쪽에 불과했고, 지면 사정에 따 라 속담이 안 나오기도 했지만 그게 어딘가.

그러나 그 뿌듯했던 취미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6·25 전쟁이 그의 삶 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해방 직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던 그에게 전쟁은 위기일발의 연속이었다. 사업은 둘째치고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었다. 맨몸으로 황급히 삼팔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59 년 북한의 지령을 받고 다시 삼팔선을 넘었지만 이번엔 감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전교도소에서 18년을 복역하고 나왔을 땐 예순세살의 늙은이가 돼 있었다. 그 사이 세상도 변했다. 말이 곧 속담이던 세대는 거의 사라 지고 대신 영어라는 낯선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세대가 사회를 점령하고 있었다.

다행히 젊어서 배운 벽돌굽는 기술로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공장을 운 영하며 터득한 기술이라 오라는 곳이 많았다. 벽돌공장을 설계해주거나 기술을 전수하면서 궁색한 생활을 벗어났다. 그러자 다시 속담 취미가 되 살아났다. 속담은 이제 그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입 속에서만 맴돌고 있었으므로 조바심이 났다. 일이 없는 날이면 노인정으로, 양로원으로, 탑골공원으로 달려갔다. 대학 도서관도 이 잡듯이 뒤졌다. 속담 글자가 든 도서 목록을 들고 전국을 돌았다. 나중엔 그게 힘에 부쳐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하기도 했다. ‘속담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은 게 그 무렵 이다.

(사진/만나는 사람마다 "속담 하나만 달라"고 추근댄다는 그는 전국을 돌며 속담을 모았고 나중엔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하기도 했다. )

그가 속담을 사냥하는 수법이 재밌다. 일단 탑골공원 가운데 등나무 아래 벤치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곳을 차지한 노인들은 젊어서 힘깨나 썼는지 호기가 여전해 말 붙이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공원 주변 벤 치에 앉은 이들은 사정이 다른다. 철지난 꾀죄죄한 양복을 입고 얼굴엔 궁기가 다닥다닥 붙은 그들은 말상대를 고마워한다. 그들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말문을 트고 점심을 대접한다. 점심이라야 우유에 빵이 전부지만 그쯤되면 서로 허물이 없어진다. 그때 넌지시 용건을 털어놓으면 주변에 물어서라도 속담 몇개씩을 건져온다. 전남 장성에서 올라왔다는 한 노인 은 그에게 자그마치 5백여개의 속담을 적은 종이를 건네주기도 했다.

지난 83년 그동안 모은 2만5천7백개의 속담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우리 말 속담 큰사전>. 속담을 모으기 시작한 지 자그마치 40년만의 열매였다. 이제껏 수록 속담이 1만5천개를 넘지 못했던 다른 속담사전에 비하면 정 말 큰 책이었다. 더욱이 거기에는 육두문자로 이뤄진 상말 속담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읽고 배울까봐 일부러 뺐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 꾸 허리를 찌르더란다. 상말 속담도 한번 책으로 내보지. 당신 죽으면 사 라지지 않겠어. 할 수 없이 93년 그래도 너무 노골적인 것만 빼고 <상말 속담 사전>을 내놨다. 그게 제법 인기를 끌어 5천부가 나갔다. 그때 용기 를 얻어 속담시리즈를 계속 내놓고 있다. <농어속담 사전>(94년) <여성속 담 사전>(95년) <동물속담 사전>(97년) 그리고 최근 펴낸 <주색잡기속담 사전>까지.


속담이 가장 많은 우리나라

그가 지금까지 모은 속담은 5만5천개가 넘는다. 남한 속담이 3만여개, 북 한 속담이 2만5천개쯤 된다. 남한 것이야 평생을 바친 것이지만 북한 것 은 더 모으기 힘들었다. 처음엔 북한의 군지(郡誌)를 들춰가며 찾아냈다. 그게 벽에 부딪히자 이번엔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조총련계에서 나온 책 을 사람을 시켜 사거나 복사했다. 중국의 연변을 통해 중국말로 된 북한 속담책도 사들였다. 훗날 우리 국어연구원에서 펴낸 북한 속담 1만5천개 를 합하니 2만5천개에 이르렀다. 그때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속담이 가장 많은 나라가 아닌가 하고 스스로도 놀랐단다.

그는 속담에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고 믿는다. 옛날엔 농사 교과서였다 고 자랑도 한다. 달력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속담으로 농사법을 전했다는 것이다. ‘찔레꽃 피면 모 심는다’고 했고 ‘늦모는 겨드랑이에 밤송이 를 넣고 심는다’고 했는데 그게 다 농사꾼을 가르치는 법이었단다. 찔레 꽃이 피면 모를 심고, 밤송이 가시가 딱딱해지기 전까지 모심기를 마치라 는 뜻이라는 것이다. 모 심는 시기를 자연에 빗대 가르친 셈이다.

아무래도 죽음을 떨쳐버릴 수 없는 나이라 요즘 마음이 바쁘다. 여든살 전까지는 5개년 계획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2년씩으로 기간을 줄였다. ‘ 늙은이 근력 좋은 것과 겨울 날씨 좋은 것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미래를 점치기 힘들어서다. 죽기 전에 지금까지 모은 속담을 집대성한 아주 큰 사전을 펴낼 생각이다. ‘내일 얘기하면 귀신이 웃는다’는데 그 꿈이 터 무니없이 끝날까 두렵다.

사진 이정용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