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논단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채만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5천 명이나 되 었더라”는 ‘5병2어의 기적’ 이야기가 있다. 기적의 권능을 증언(?)하 려는 것이겠지만, 우리는 다른 문제의식을 끌어낼 수 있다. 천하없어도 누구나 먹어야 산다는 것이다. 좀 더 일반화하여, 인간의 생존에는 물질 적 생활자료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냉혹한 ‘시장의 법칙’ 아래서

인간은 그 생존에 절대로 필요한 물질적 생활자료를 어디서 어떻게 얻는 가? 말할 나위 없이, ‘자연과 원료’(노동대상)에 노동을 가해서 그것들 을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형태·물질로 변화시킴(생 산)으로써 얻는다. 이때 인간의 노동은 고도로 발달해 있어서 크고 작은, 혹은 소박하고 복잡한 ‘도구와 기계’(노동수단)에 의해 매개되고, 이들 노동대상과 노동수단은 통틀어 생산수단이라고 불린다.

모든 사람에게 생산수단과의 결합 혹은 일정한 관계는 노동의, 따라서 생 존의 절대적 조건이다. 생산수단과의 관계를 단절당하면, 그리고 그 단절 을 벌충할 만한 사회적 도움을 받지 못하면, 인간은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원래 이들 생산수단은 인간과 결합되어 있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랬 다. 착취와 피착취, 지배와 피지배 없이 공동체를 꾸려 왔던 수십만 년간 의 ‘원시공산사회’에서는 물론이요, 수천 년 전에 등장한 착취·계급 사회로서의 노예제나 봉건제 사회에서도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산 수단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근래 2·3백년 사이에 일대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무산자가 되고, 생산수단은 지주, 자본가 등 소수의 소유로 집중되었고, 더욱 집중되고 있다. 당연히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저항과 투쟁, 굶주림 속에서 죽어 갔고 또 그렇게 죽어 가고 있는데, 다행(?)인 것은 그나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 본에 의해 고용됨으로써 임금노동자로서 생산수단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역사는 이 과정을 ‘털구멍마다 선혈이 뚝뚝 듣는’ 자본의 본원 적 축적과정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농민층의 분해’라고도 한다. 이후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과 생산수단을 맺는 끈은 결코 튼튼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아주 대량으로 잘려 나가고 있다.

먹고 먹히는 자본간의 경쟁은 많은 자본가를 파산으로 몰고 갈 뿐만 아니 라, 그에 비할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으로 몰아간다. 팽창하는 자 본주의적 생산력과 좁은 범위로 제한되는 노동자 대중의 소비간의 모순은 주기적인 위기로 폭발하면서 노동자들을 실업으로 몰아간다. 생산과 소비 간의 모순이 부르는 위기는 오늘날 자본의 과잉축적에 의해 만성적으로 되어 있고, 그에 따라 실업도 구조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 산력의 발전, ‘합리화’는 노동절약적 혹은 노동대체적 기술과 설비의 도입으로 나타나, 산 노동으로서의 노동자는 죽은 노동으로서의 기계에 의해 대체된다. 자본은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이윤을 높이기 위해 거 대한 실업자군, 산업예비군을 보유하고 주기적으로 증대시킨다.

이렇게 생산수단과의 관계를 단절당하는 실업자 군상은 특히 자본과잉· 기술혁명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서 사실상 폐 기처분 당하는 자들인데, 그나마의 모멸적인 구휼, '사회보장'조차 파괴 돼 가고 있는 게 세계적 추세이다. 노동자들이 더 많이 생산하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수록 이러한 과정과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더욱 대량의 노 동자들이 실업으로 몰리면서 생존을 거부당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적 축적의 법칙이요 시장의 법칙이다.


‘대량학살’이 준비되고 있다

한국의 자본주의도 성숙해서, ‘신노사관계 구상’은 대량해고제를 법제 화하더니, 재벌들은 암암리에 저지르고 있는 대량해고를 서둘러 합법화· 확대할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자본은 부실기업 노조에 ‘임금 및 인원 감축동의서’ 곧 피살동의서를 강요하고, 제일은행의 금융노동자들 이 첫 희생이 되어 전체 행원의 21%가 넘는 1,800여 명의 감원에 노조가 동의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최고 수익의 최대 국영기업인 포항제철은 삼 미특수강을 인수하면서 대대적으로 위장정리해고를 저지르고, 철도청도 금년에만도 1,300여 명을 해고할 방침이다. 기아그룹은 8,000명 이상을 ‘감원’하겠다는 ‘자구계획서’를 내놓고 있다.

경쟁과 효율의 이름으로, 즉 시장의 이름으로 ‘정리해고’라는 대량의 학살이 저질러지고, 준비되고 또 다짐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 은 아직 긴 과정의 초입에 들어갔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태 앞에서, ‘고용’과 마찬가지로 ‘실업’ 또한 역사 일반의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된 역사적 현상일 뿐임을 대중적으로 명확히 하지 않는 한, 갈수록 대량화 할 실업, 인간폐기를 극 복할 길은 결코 보이지 않을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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