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영화

마이티 아프로디테

희극의 연금술사 우디 앨런이 그리스 비극을 코미디로 뒤집어 보인다. 그 리스의 아크로폴리스(실제로는 이탈리아에서 촬영된)와 뉴욕을 오가며 남 녀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는 중년부부의 입양문제로 시작된다. 아이를 원 하지만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부부는 사내아이를 입양한다. 남편 레니는 아이의 생모에 호기심을 느낀다. 이것은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 <오이 디푸스 왕>을 교묘하게 희극으로 변용한 것이다. 레니는 아이의 생모 린 다를 찾아 열정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창녀인 그의 인생을 바꾸려고 한다 . 미용사 직업도 권해주고, 남자도 소개시켜 준다. 하지만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한편 아내 아만다는 자신이 일하는 화랑 사장과 정분이 싹트고 부부는 점 점 벌어진다. 그들은 헤어져 각각 다른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던 중 문득 과오를 깨닫고 화해한다. 그리고 레니와 린다는 우연히 쇼핑센터에서 다 시 만난다. 서로의 아이를 품에 안고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뮤지컬이 펼쳐지는 가운데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이 비쳐진다.

전체적으로 단순한 이야기지만 첫장면에서 시작된 그리스 비극의 장중함 이 점점 뮤지컬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인생의 행복 감에 젖어들게 된다. 영화는 이를 위해 그리스 비극 배우들을 뉴욕 길 한 복판에 펼쳐놓는가 하면, 레니와 아만다를 비극 무대에 올려 놓는다. 이 는 두 배경 속에 인물들이 자유롭게 오가도록 함으로써 인생에 있어 비극 과 희극은 한데 어울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군다나 재즈음악과 화 면의 어우러짐은 마치 인생의 본질이 재즈인 것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화면 속에서 논쟁하게 만들고, 영화 속 아이러니의 구조를 뒷받침한다. 이전 우디 앨런 영화들이 비교적 허무나 고독을 결말로 삼고 있었던 반면 최근 작품들 속에서 그는 행복을 말하고 싶어한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하 다. 하지만 우디 앨런표의 행복한 결말은 성찰 속에서 이끌어진 것이다. <시학>을 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만약에 우디 앨런 영 화를 보았다면 비극에 관한 연구가 대부분인 <시학>을 모두 희극에 관한 에세이로 채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극을 희극으로 바꾼 그의 연금술은 영화뿐 아닌 인생에 관한 연금술인 것이다. 영화를 통해 진실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 오래된 것이지만 영원한 꿈 아니겠는가. 영화는 마술과도 같다는 말이 세삼스레 다가오는 작품이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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