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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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선거 관련 여론조사가 대중의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유력한 수단 인가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회의적이다. 후보 선호도에 대해 과학적인 조 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대중은 조사자의 목적달성을 위해 응답하는 수동 적인 존재에 머물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모으기 위 해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응답자를 요구하기보다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대중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대중이 선거과정에서 의제설정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 행태도 후보 중심에서 의제 중심으로 옮겨가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김정기 교수가 발표한 ‘97대선 시민관심사 여 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이 정책과 이슈에 대한 보도의 양을 더 늘 려야 한다는 의견이 62.7%,줄여야 한다는 의견은 7.3%에 지나지 않았다.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 등 선거판세에 대한 보도의 양에 대해서는 응답자 의 44.3%가 더 증가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줄여야 한다는 응답자도 16%나 되었다. 현재 이뤄지는 선거판세 중심의 여론조사는 이런 유권자의 관심 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언론사는 여론조사를 통해 유 권자가 선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 다.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비판적 시민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새로운 보도 형태로 평가받는 게 시민저널리즘(Civic Journalism)이다.
한국언론연구원 전 연구위원 이종수씨는 “시민저널리즘은 언론이 시민과 더불어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이슈를 생산하는 적극적 보도행위 ”라며 언론과 시민이 공공생활에 참여해 공론을 형성하는 가운데 비판적 시민사회의 복권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의 언론보도 는 후보에 초점을 맞춰 시민이 선거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길이 막혀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선거보도의 초점을 시민에게 맞추는 시민 저널리즘이 21세기형 선거보도 형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언론사는 시 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시민포럼과 정책회의 등의 제도를 마련해 시 민저널리즘을 실현하고 자사의 정체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시민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만만치 않다. 언론사가 지나치게 사회문제에 개입에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 등을 상실하는 가운데 정치적 선동주의나 새로운 마케팅 전략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옹호론자들은 시민저널리즘이 언론사와 독자가 공동체 문제의 공동 해결자로 등장해 서 로의 괴리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시민의 의제설정이 무모한 주장을 담고 있거나 객관성을 상실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진다면 정치 저변의 유권자를 분석하는 유용한 틀임은 분명하다.
여론조사에서도 시민저널리즘의 논리를 일정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언 론사의 필요에 따라 벌이는 후보의 선호도 조사를 벗어나 마케팅에서 사 용하는 추적조사 방법을 가미시키는 등 ‘유권자 보도’를 시행하는 것이 다. 잠자는 시민의 정치의식을 깨우는 게 바로 언론의 책임 아닌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