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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의 끝없는 추락

(사진/스무살의 나이에 세기의 결혼식을 치르며 화려하게 등장한 다이애나.)

“비오는 일요일 오후, 상심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불멸성을 간절히 희구 하고 있었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8월31일 영국인들은 수전 어츠의 <허 공에 서린 분노>의 한 구절을 읊조리며 인간의 유한성과 불멸성을 반추해 야만 했다.

파리 센강변의 자동차 사고로 숨진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는 비극적인 죽 음을 통해 불멸성을 획득했고,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의 가슴속에 영 원한 공주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사랑과 자유를 그토록 갈구했던 이 여인에 대한 추모의 홍수는 감정억제에 익숙한 영국인 스스로도 놀랄 정 도였다. 일주일 내내 버킹검궁은 끝없는 꽃다발 행렬로 뒤덮이고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축구경기가 취소되었으며 조문록에 서명하기 위한 군중의 행렬은 불어나기만 했다. 장례식이 거행된 지난 토요일, 런던시가지는 나 이와 성과 피부색을 뛰어넘는 애도의 바다로 변했고, 전국적으로 철시한 상가도 많았다. 시민들이 2분 동안의 묵념에 자발적으로 응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모습에서 영국민의 다이애나에 대한 사랑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왕정 재기 여부 놓고 논쟁 불붙었다

서른여섯의 나이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의 때 이른 죽음은, 그러나 대중의 상실감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 나라를 강타하 고 있다. 그의 사망으로 인해 영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군주제의 진로에 예측못할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흔히 역사가들은 20세기 들어 영국을 뒤흔든 두명의 여인으로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다이애나비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처는 정치의 판을 새로 짜다시피한 여인이고, 다이애나는 왕실에 최초로 인간적인 모습을 부여한 여인이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거의 같은 시기에 세속적 지위와 영향력이 절정에 올랐다. 다이애나의 영향력은, 그러나 그것이 대 체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대처의 권력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대처의 정치노선은 다른 정치가가 추종할 수도 있지만 다이애나의 개성과 역할은 다른 사람이 대신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살아 생전 다이애나가 도전하고 싸웠던 대상인 왕실이 그의 참신함과 인 간다움 때문에 오히려 상당한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역 설이다. 영국 왕실이 이미 이혼해서 떠나갔던 다이애나를 확실한 왕족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있는 징후도 의미심장하다. 파리의 피티 살피에트르 병원에서 운구되어온 다이애나의 시신이 영국국기인 유니온 잭이 아닌 왕 실의 공식기인 로열 스탠더드에 싸여 있던 것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다 이애나가 사라진 오늘, 영국 왕실의 장래에 암운이 드리워진 것은 분명하 며 따라서 다이애나를 잃은 윈저가가 재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국민적인 토론이 가열되고 있다.


“왕실은 국민과 가슴으로 통하지 않아”

왕정의 미래가 암울해졌다는 비관론의 선두에 선 사람은 런던정경대학(LS E) 역사학과의 데이비드 스타키 교수다. 그는 왕실의 덕목으로 꼽히는 과 묵, 냉정, 침착, 초연함 등이 과거와는 달리 더이상 장점이 아니라고 진 단한다. 국민대중과 가슴으로 통하지 않는 왕실은 이미 희극(戱劇)으로 전락한 지 오래며 그나마 한가닥 신선한 바람 구실을 하던 다이애나의 존 재가 사라지면서 비극(悲劇)으로 변할 가능성조차 생겼다는 것이다. 찰스 왕세자가 국민들 눈에 실패한 인생으로 비치는 것도 문제를 악화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다이애나와 이혼함으로써 그녀의 죽음에 간접적 책 임을 면치 못하게 된 데다 그간 국민의 신임을 되찾기 위해 종교간 대화, 인종화합, 소외계층 껴앉기 등 온갖 시도를 다 해봤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다이애나는 왕실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앞장섰고, 또 그 노력이 실제로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벽에 부딪히게 되었고 현재 왕실에는 현대화 작업을 이어나갈 인물이 없다는 게 스타키 교수의 지적이다. 서민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대중지 <선>이 “왕실이 국민의 슬픔에 적절하게 동참하지 못했다” 고 통렬한 공격을 가한 것만 봐도 왕실의 대응력 부재 주장이 상당한 근 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반대로 왕실이 결국 오늘의 곤경을 헤치고 재기하리라는 낙관론도 만만찮다. 헌정전문가인 로드 블레이크가 이 진영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 는 왕실의 인기는 기복이 있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빅토리아 여왕은 1837년 등극 당시 조금도 인기가 없었지만 앨버트 경과의 결혼생 활 중 인기를 회복했다가 1870년대에는 ‘윈저궁의 과부’로 손가락질을 당하는 처지에 빠졌고 사망시에는 다시 존경과 인기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 따라서 현재의 왕실도 꾸준히 성실하게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회생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다이애나는 왕가의 전통적 기풍과는 전혀 다르게 현대적인 방식으 로 두 아들을 키워왔다. 그래서 맏아들 윌리엄 왕자의 행보에 따라 21세 기 영국 왕실의 명운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왕 자가 어머니의 자유로운 교육방침에 따라 서민 속으로 다가가는 군주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왕자에 21세기 기대… 보수정치에 신물

다이애나의 죽음은 왕실뿐만 아니라 국내·국제정치에도 미묘한 반향을 몰고 왔다. 대인지뢰 철폐운동을 국제적으로 주도해온 장본인의 죽음으로 이 문제가 더욱 큰 여론의 주목을 끈 점도 있다. 그 영향 때문인지 한반 도의 지뢰사용 논쟁이 이곳에서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또 9월11일로 예정된 스코틀랜드 자치에 관한 주민투표 캠페인에도 당장 차질이 생겼다 . 노동당 정부가 당의 공식정책으로 지원하는 자치권 찬성 캠프쪽은 아쉬 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선거유세가 다이애나의 장례후로 연기되 어 중요한 캠페인 기간을 송두리째 날린 것이다.

장기적으로 봐도 다이애나의 죽음이 현대 영국의 사회적 지형도를 명확히 하는 데 큰 구실을 할 전망이다. 옥스퍼드대 정치학과 존 그레이 교수는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표출된 현대 영국인의 참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리버 럴하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보수적’ 또는 ‘전통적’이라고만 단순 화시켰던 국민성의 내부에 실제로는 자유롭고 평등 지향적인 혁신의 열망 이 들끓고 있음이 입증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 보수당이 다이애나의 죽음을 맞아 보여준 미적지근한 태도는 보수당의 미래에 좋지 않은 징조 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보수당의 윌리엄 헤이그 당수가 추도사 에서 다이애나가 정열적으로 추진했던 대인지뢰 철폐 캠페인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이다. 이 사례는 지난 5월 총선의 참패에 이어 보수당이 국민의 정서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재확인해준다는 것 이다. 그레이 교수는 “‘토리’ 보수당은 더이상 국민정당이 아니며 교 조적인 골수 우파의 입장과 이익만을 반영하는 주변정당으로 전락했다” 고 혹평한다.

이에 덧붙여 페미니스트 진영이 다이애나의 운명을 애도하고 나선 것도 흥미롭다. 극작가 줄리 버질에 따르면, 다이애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걸 맞게 복합적인 이미지의 소유자였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은 파격적인 여성의 이미지였다. 다이애나는 상류층 출신인데다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 원래는 ‘의식화된’ 페미니스트가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기구한 인생역 정을 겪으면서 서서히 세상의 다른 한쪽을 볼 수 있는 시선과 자세를 갖 추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의 이혼과 불행했던 성장기를 거쳐 유치원 교사 생활, 동화와 같은 사랑과 결혼, 파경, 편모로서의 자녀양육, 다시 사랑 을 찾기 위한 열망 등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감수성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에이즈 환자, 고아, 지뢰 희생자, 노숙자, 매맞는 여성 등을 위한 자선활동은 이같은 맥락에서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페미니스 트 문필가인 로스 카워드는 “다이애나의 이런 변신으로 말미암아 평범한 여성들도 다이애나를 자기들과 꼭같은 자매로 여기게 됐다”고 말한다. 전통적 사회구조의 질곡과 근대성 사이에서 방황하고 투쟁하는 모습이 대 처시대의 보수화 경향과 대비되면서 진보적 여성으로 부각된 측면이 있다 는 분석이다.


죽은 다이애나가 역사를 바꾼다

다이애나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데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미디어의 사생활 침해를 둘러싼 논쟁도 장기화할 전망이다. 논쟁은 ‘대중의 알 권리가 중 요하다’는 주장과 ‘인간의 사생활이 우선한다’는 주장이 대립하면서 팽팽한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대중매체법>을 쓴 제프리 로버트슨은 “ 이 논쟁의 핵심은 공인의 사생활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에 있다”고 말 했다. 타인의 사생활 침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정치인의 치부를 파헤치 는 데 앞장서온 <가디언>은 “저질언론은 멀지 않아 저질국민을 양산한다 ”는 풀리처의 경구를 사설로 앞세우면서 “자유의 중요성과 자유의 부작 용을 균형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아무튼 다이애나의 죽 음은, 영국이 21세기로 진입하는 변화의 길목에서 겪은 비극의 극점으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런던=권은정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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