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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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최후의 마에스트로’ 게오르그 솔티(84)가 9월5일 프랑스 남부 앙티브의 휴양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솔티는 바르토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토스카니니 등 20세기 초 음악의 거장들과 호흡을 같이해온 유명 지휘자 세대의 대미를 장식한 인물이다. 그는 여러 국가에서 활약했으나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명성을 회복하고 오랫동안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했다.
1912년 10월21일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살 때부 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12세 무렵 첫 연주회를 가졌다. 13세 때 프 란츠 리스트 아카데미에 입학해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한 그는 1937년 잘 츠부르크 축제에서 토스카니니의 조수로 일한 뒤, 이듬해 부다페스트에서 공연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독일은 헝가리와 이웃한 오스트리아를 합병했고, 이듬해 폴 란드 침공으로 2차대전이 터지자 솔티는 스위스로 피신했다.
전쟁이 끝나자 솔티는 독일의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하우스에 잠시 머문 뒤, 61년 영국으로 건너가 전후 내리막길을 걷던 오페라하우스 ‘코 벤트 가든’에서 10년 동안 예술감독으로 일하며 코벤트 가든의 명성을 되살렸다. 65년에는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를 세계 최초로 음 반에 담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음악애호가들 사이에 명반 중의 명 반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음악 발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72년 작위 를 받은 뒤 영국에 귀화했다.
솔티는 지난 92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뒤를 이어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 지휘봉을 넘겨받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여 든 가까운 고령에 다시 피아노를 시작해, 피아노 독주가로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2대와 3대를 위한 협주곡>을 취입하기도 했다. 스테레오 기술을 이용한 음반취입에 개척자적 구실을 해온 그의 음반들은 전세계적으로 3 천6백만장이 팔리는 대성공을 기록했다.
임민 기자/ 한겨레 국제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