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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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만한 코에 짙은 눈썹, 사각으로 각진 얼굴, 솥뚜껑만한 손과 발, 키 186cm에 몸무게 103kg. 이 정도면 ‘헐크’의 신상명세서로 손상이 없다. 첫인상을 말하니 그도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지난 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에 레슬링 국가대표(헤비급) 선수로 출전했다는 이력이 금방 수긍이 간다 .
서울 중부경찰서 보안과 이용환 경장(44). 외모로만 보면 책과는 도통 인 연이 없어 보인다. 그런 그가 <거리의 판사>라는 법률책을 펴냈다. 하지 만 서가나 서점에 막대기처럼 꽂혀 있는 그런 딱딱한 법률사전은 아니다. 가상의 민원인과 대화를 나누며 어려운 법률용어들을 설명하는 식으로 돼 있다. “돈갖고 줄행랑을 쳤다 이거구만요.” “3천만원만 달래가지고 간 거여” 따위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도 눈에 띈다.
폭행, 사기, 경매처럼 보통사람이라면 일상생활에서 한번쯤 부딪힐 만한 흔한 사건들이 책의 소재다. 술 한잔 마시고 어쩌다 시비가 붙어 경찰서 에 불려가면 낯선 풍경, 처음 대하는 각종 서류, 복잡한 절차로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경찰서에서 사용하는 진술조서, 피의자 신문조서, 합의서, 신원보증서 따위를 그대로 싣고, 사건의 처리절차도 세심하게 설 명했다.
책에는 옛 운동 동료, 어릴 적 친구, 친척 등이 민원인으로 등장한다. 그 에게 한번씩 ‘상담’을 받은 사람들이다. 단지 ‘경찰’이라는 이유 하 나만으로 도움을 청한 것이다. 주위에 아는 경찰관이라도 없는 민원인들 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단다.
지난 82년 레슬링을 그만두고 ‘먹고 살기 위해’ 경찰에 몸담았다. 하지 만 경찰에 근무하면서 단국대 교육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86년에는 1년 동안 대만 어학연수를 갔다올 정도로 학구파다. 몇년 전에는 <일본을 알 자> <중국우화>라는 중국어책을 번역해 출판할 정도로 중국어 실력도 수 준급이다. <거리의 판사>를 준비하던 지난 1년 동안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문 밖에 한번 못 나가볼 정도’로 정신없이 지냈단다. 그런데도 그는 벌써 새로운 글쓰기를 구상하고 있다. 큼직한 체구에 숨어 있던 문학 소 년의 꿈이 발동하고 있는 것일까?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