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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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일은 할 만큼 했으니 여생이라도 맘편 히 쉬면서 그동안 못다한 영감 노릇도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60대 중반의 김아무개 교장은 퇴직과 동시에 아내로부터 이혼요구를 받았 다. 김씨는 고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40여년간을 교직을 천명으 로 알고 살아왔다.
아내는 남편의 박봉에도 알뜰히 살림을 꾸리고 자식들도 번듯이 키워 주 변의 칭찬을 받아왔다. 이재에도 수완이 있던 아내는 학교 근처에 있는 두 부부의 전셋집 외에 현재 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와 서울에 집 한채 등 을 장만했다. 집 두채와 전세계약은 모두 아내 명의로 해놓았다.
집과 퇴직금 다 빼앗기고…
독서 외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는 김씨는 하루의 대부분을 집안에서 소일 했다. 처음에는 내색을 않던 아내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을 귀찮게 여기는 눈치가 역력해졌다. ‘나가서 바람이나 쐬라’던 말이 나중에는 ‘왜 귀 찮게 구느냐’로 이어졌다. 대접도 옛날의 남편 대접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내가 별다른 말도 없이 딸네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버렸다. 김씨는 딸네 집에 찾아가 아내에게 이유를 따졌다.
아내는 “그동안 집에 그 잘난 선생 월급 갖다주는 것 이외에 한 것이 뭐 냐, 당신이 점잖은 교장선생님 노릇하는 동안 나는 일생을 종노릇 하며 보냈다. 애들 키운 것도 나요, 재산도 내가 허리띠 졸라매 가며 마련한 것이다”라고 몰아붙였다. “그동안 아뭇소리 않고 고생만 한 아내에게는 남편 노릇 제대로 하지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렇게 늘그막에 재산을 뺏고 이혼을 요구하는 게 도리는 아닌 것같다”라며 씁쓸해했다. 전셋집에 홀로 남은 김씨는 손수 끼니를 해먹고 있다. 집 두채가 모두 부 인 명의로 돼 있고 퇴직금 1억8천만원도 대부분 아내가 가져간 상태이다. 퇴직금에서 조금 떼어놓은 돈도 거의 다 썼다. “나름대로 남부끄럽지 않 게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집안 하나 제대로 꾸리지 못한 것을 보면 그동안 의 인생 자체가 실패였다는 기분이 듭니다.”
‘젖은 낙엽족’. 평생동안 오로지 직장일에 몰두하다보니 가정에 소홀했 던 탓에 퇴직 뒤에는 아내에게만 매달리게 돼 졸지에 천덕꾸러기가 된 중 노년의 남성상을 일컫는 말이다. 퇴직 후 아내에게만 전적으로 기대는 남 편들이 마치 쓸어내기 힘든 젖은 낙엽 같다고 해서 나온 일본 유행어다. 김 교장은 결국 가차없는 빗질에 떠밀려 내버려진 낙엽 신세가 됐다.
지난해 중소기업에서 부장을 끝으로 명퇴한 오아무개(50)씨는 퇴직금을 수령하기도 전에 회사가 부도났다. 고2, 중3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교육비 며 생활비를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 황이었다.
“취직을 하려고 발이 부르트도록 취업소개소 등을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막노동이라고 하려고 건축현장을 기웃거려봤지만 그것도 보통일이 아니더군요. 사흘 버티다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하루종일 누워 있었더니 아내가 ‘그렇게 빈둥거리기만 할 거냐. 노력을 하지 않으니 취직을 못하는 거 아니냐’며 바가지를 긁더군 요.”
애들 밥? 당신이 줘라
이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싸움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아침 식사준비를 하지 않는 아내에게 ‘애들 밥이나 주라’고 하자 아내가 대뜸 ‘애들 걱 정 많이 하는 당신이 해주라’라고 쏘아붙였다. 분이 치밀어오른 오씨가 거실에 있는 화분을 박살내자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기더니 집 을 나가버렸다. 결국 집을 나간 아내는 친정으로 갔다가 몇달 뒤 이혼하 자며 전화를 했다.
“한참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아 성격도 침울해졌습니다 . 취직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는데 우리 나이에 취직하기가 어디 쉽습 니까?” 오씨는 명예퇴직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애들 커가는 재미에 그럭 저럭 살아왔다며 어려운 일이 닥칠수록 서로 위하고 감싸주는 게 부부 아 니냐며 부인에 대한 배신감을 털어놨다.
정년퇴직이나 명퇴 등이 중·장년기 이혼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중 ·노년기의 이혼은 은퇴로 인한 경제적 능력의 상실보다는 바람직한 부부 상 정립의 실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남에 사는 권아무개(51)씨는 지난 2월 25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했다. 건축회사에서 현장책임자로 있다보니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 가 많았다. 현장일이 끝난 뒤에는 간혹 유흥업소 종업원들과 어울려 외박 을 하기도 했다. 며칠만에 집에 들어온 그에게 아내가 따지는 일이 잦아 졌다. 가끔씩 권씨의 손찌검도 뒤따랐다. 그는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 다보면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무작정 따지 고 드니 미안한 마음은 저만치 사라지고 화부터 났다”고 말했다. 그래도 애들 키우느라 그럭저럭 참고 살던 아내가 큰아들의 대학 진학 뒤부터 달 라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다니고 모임에도 나가면서 귀가가 늦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오는지 술냄새가 나기도 했다. 권씨는 이런 아 내에게 심한 구타를 했고 살림을 부수며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자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애들을 봐서라도 참고 살자고 애원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제 는 맞고 사는 것이 지겹다. 더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버티는 데 도 리가 없었습니다. 해달라는 대로 이혼도장을 찍었죠.” 권씨는 한참 공부 해야 할 딸에게 밥 짓는 일을 시킬 수 없어 서울 고모네 집에 머물도록 전학을 시켰다.
“다시 새 출발 하고 싶다”
이처럼 바깥일에 파묻혀 살다 마지막 안식처마저 잃은 남편들 대부분의 생활과 심리는 불안정하기 쉽다. 권씨는 “썰렁한 집에 들어가기도 뭐하 고 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 날이면 다음날 아침엔 라면 국물로 속을 푼다. 최근에는 간과 위장이 나빠져 고생하고 있다. 과 부는 쌀이 서말이요, 홀아비는 이가 서말이라더니 그 말을 실감했다”며 “아내가 다시 돌아와 준다면 다시 한번 새 출발을 하고 싶은 마음”이라 고 털어놨다.
지난 95년 이혼을 한 한아무개(48)씨는 “직장에서도 이혼하고 혼자 산다 고 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슨 흠이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 는 것 같아 괜히 위축된다”면서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자식얘기, 마누라얘기를 하다가도 내 눈치를 봐서인지 화제를 돌리는 경우를 몇번 당하니 직장동료들과의 술자리나 동창회에 나가는 것도 고역”이라고 말 했다.
그러나 이혼당한 남자들도 할말은 있다. 지난해 이혼한 채 혼자 살고 있 는 강아무개(52)씨는 “이혼한 아내는 내가 일밖에 모르고 멋도 없는 따 분한 남편이라고 말할 겁니다. 그렇지만 사회는 치열한 경쟁사회입니다. 명퇴당하면 ‘얼마나 못났기에’ 하고, 안 잘리려고 일을 열심히 하면 일 밖에 모르고 가정에는 소홀히 한다고 말합니다. 처자식 먹여살리자고 이 를 악물고 일했지 나 혼자 출세하려고 일했겠습니까.” 강씨는 “요즘 ‘ 좋은 아버지’ 되기 운동도 있다는데 밖에서는 능력있는 일꾼,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남편들에게 더욱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라면서 “여자들은 그래도 모여서 수다라도 떨 수 있지만 남자들은 하소연할 데도 없다”고 말한다.
밖에서는 낙오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쳐야 하고, 가정에서는 ‘좋은 아버지 , 멋진 남편’이 돼야 한다는 압박감은 남성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 오늘의 아버지와 남편들은 이런 ‘슈퍼 남성’과 ‘젖은 낙엽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창은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