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남편이 바뀌어야 한다

(사진/노령이혼은 남녀평등으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다. 가정법률상담소의 상담 모습.)

날로 늘고 있는 중년기이후 이혼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령화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부부상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혼에 대한 시각변화’도 한 원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부소장은 늘어나는 중년이후 이혼을 사회적 변화의 맥락에서 진단한다. 전통적 규범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길들여 져 젊은 시절을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던 사람들이 70년대 산업사회로 넘 어오면서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성은 사 회변화에 남성보다 민감하다. 억눌린 자 억압받는 자는 원래 사회변화에 훨씬 더 예민한 법이다. 반면 남성들은 구태의연하고 현상유지적이다. 이 제 여성들은 남성으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고 경제적, 정신적으 로도 자립할 만한 여건을 갖추게 됐다.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곽 부소장은 이런 이유로 “노령 이혼은 이런 남녀평등으로 이행하는 단 계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남자와 여자 모두 잘못했으며 서로 양보하고 참고 살아야 한다는 양비론적인 시각은 안 된 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전화’ 정송 대표는 중노년기의 이혼, 특히 은퇴 이혼에 대해 “가족구조가 경제적 관계를 바탕으로 잘못된 자기이기주의로 얽혀 있는 것이 은퇴 이혼을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대표는 “가족구조가 구성원들의 정서적인 연대가 아닌 경제적 관계로 이어지면서 경제능력의 상실과 함께 가족관계가 끊어진다”면서 “특히 아버지들이 시대변화를 못 좇아가고 있으며 부부나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가족문화가 없는 것 도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한경혜 교수(가족학)는 과거 대가족제도 아래서는 부부간 갈등을 억제하려는 기제가 현대사회 들어 핵가족이 확산되면서 사라졌고, 점차 이혼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한 교수는 그러나 명퇴, 은퇴에 중년기 이혼을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 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중년기 이후의 이혼은 평균수명이 늘어 나면서 노년기의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 은퇴로 인한 경 제적 능력의 상실을 중년이후 이혼의 증가와 바로 연결시키는 데 대해서 는 유보적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중년이후 이혼에 대해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측면에 바탕을 둔 다 양한 접근방식에도 전문가들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바람직한 부부상의 정립을 처방으로 내놓고 있다.


노년설계, 꼭 부부가 함께 해야

김광일 한양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은퇴한 중노년 남성의 경우 “인생의 허무감으로 인한 우울증과 미래에 대해 불안감, 그리고 아내를 비롯해 자 식이나 주변가족들에 대한 의심 등 은퇴증후군을 보이기 쉽다”고 지적했 다. 김 교수는 이어 “이런 은퇴증후군을 이겨내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려 면 젊어서부터 은퇴 뒤 생활을 설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은퇴 뒤 준비는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노년의 생을 보람있게 보낼 수 있는 생활 의 설계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가 함께 이를 설계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 4월 내한한 일본 남성학의 권위자 이토 기미오 오사카 대 교수의 진단은 음미해볼 만하다. 그는 중노년기의 이혼과 고개숙인 남 성 현상을 ‘남성중심의 사회가 빚은 산물’이라고 단언한다. “일본남자 들은 여성을 무시하며 잘난 체하지만 이면을 보면 여자들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의존하는 면이 많다. 자신의 속옷이나 양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 르고 아내가 없으면 식사 한끼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토 교수는 “남성들이 어깨에 힘을 빼고 생활면에서나 정신적으로 자립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남자다움’이라는 신화에서 해방돼 그동안 ‘빼앗긴’ 육아 및 자녀교육의 권리와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창은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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