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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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무개(53)씨는 요즘 이혼녀가 되고자 한다. 지난 4월 남편과 시어머니 와 자식들을 떠나 시골 구석으로 거처를 옮겼다. 30년 가까이 부부의 연 을 이어온 남편은 이제 남이나 다름없다. 이혼과 함께 재산의 절반을 요 구한 터라 옛정 운운할 처지도 아니다. 부부 사이란 게 돌아서면 아무 것 도 아니란 걸 요즘처럼 실감한 적이 없다. 그 나이에 무슨 이혼이냐며 호 들갑을 떨던 친구들이 했던 말이 새삼스럽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그런 험한 꼴을 보려고 그래.” 그때 김씨는 이렇게 속으로 다짐했다. ‘ 내일 목숨이 다하더라도 이제 내 인생을 살겠어.’
중년이혼, 80%는 아내가 제기
김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권사 지점장 사모님이었다. 지금은 시골 구 멍가게 주인으로 바뀌었지만 그땐 남들로부터 제법 대접을 받고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허울뿐이었다. 김씨에게 남편(54)은 끊임없이 외도를 일삼 는 바람둥이일 뿐이었다. 남편의 바람기는 결혼 4년째 되는 해부터 발동 이 걸렸고, 김씨는 반평생을 속을 끓이며 살았다. 부부 사이의 정은 이미 오래 전에 바닥을 드러냈다. 당장 이혼하고 싶었지만 어린 자식들이 걸리 고, 먹고 살 방편이 없는 게 한이었다. 김씨는 9회말 뒤집기를 노리는 야 구의 승부사처럼 속으로 비수를 갈았다.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날 이 런 삶을 청산하리라.’
올해 막내의 대학진학은 반격의 신호탄이었다. 김씨는 곧바로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재산분할도 요구했다. 마침 남편이 명예퇴직을 당해 퇴직금까지 분할을 요구했다. 집과 퇴직금의 절반을 받으면 시골에 꾸린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새 인생을 시작할 작정이었다. 그건 남편에 대한 복수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5년 전부터 구들장 신세를 면치 못하는 시어머니를 수발 해온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없던 남편이었다. 몸은 불편하지만 강기 만은 여전한 시어머니한테서 머리가 희끗해지도록 호된 시집살이를 벗어 나지 못하는데도 남편은 밖으로만 돌았다. 명예퇴직한 뒤에는 아예 딴살 림을 차린 듯했다. 김씨는 “이제 남편이 혼나야 할 차례”라고 말한다.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해온 부부가 헤어지는 이른바 ‘중년 이혼’이 늘 고 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부부들이 노후에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의 이혼이야 그러려니 하는 세태지만 노년 으로 접어드는 사람들의 이혼은 일단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평소 겉으론 흠없는 가정이었고, 부부 사이도 원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혼의 대부분이 아내의 요구로 이뤄진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결혼 이후 일생을 같이 해온 이들 중년 부부의 갈라짐은 곧잘 냉정한 재산분할 다툼 으로 이어진다. 거기에서 망설임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란 찾아보기 힘들 다.
‘중년 이혼’의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이 올해 초 발표한 ‘ 95년 인구동태’에 따르면 결혼한 지 20년 이상된 40, 50대 부부의 이혼 이 부쩍 늘었다. 지난 86년 전체 이혼의 4.5%이던 것이 95년엔 9.1%로 2 배 이상 뛰었다. 특히 이런 이혼의 80%는 아내가 제기하는 것으로 나타났 다. 지금까지는 자식 걱정, 독립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참고 살았지만 늦 게나마 새 인생을 찾으려는 아내가 많아진 것이다.
“남편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
박아무개(55)씨는 얼마 전 남편 몰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며칠 전부 터 오늘 내일 하며 미루던 외출이었다. 이번에 집을 나서면 영원히 돌아 오지 못할 것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택시를 타고 무작정 법원 근처까지 가는 동안 수시로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이젠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면 오늘 쉰 다섯 인생에서 가장 고대했던 순간이 펼쳐질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달랬 다. 사무실에 들어선 박씨는 오히려 침착했다. “남편과 이혼하고 싶습니 다.”
한번 말문이 트이니 그동안 가슴에 담아뒀던 말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 결혼생활 30년 동안 2남1녀를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식모처럼 살았 습니다. 남편은 저를 하인 부리듯 했습니다. 바깥일에 대해 물으면 ‘당 신은 몰라도 돼’라며 눈총을 주기 일쑤였죠. 이렇게 사는 인생이 불쌍하 다는 느낌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도 받았어요. 자식들에게 나 쁜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그동안 참고 살았지만 이젠 새 인생을 찾고 싶 어요.” 박씨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남편의 재산분할 을 요구하는 대목에선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사진/이혼을 위해 과감히 법원을 찾는 40,50대 여성들이 10년새 두배 이상 늘었다. )
박씨는 몇번이나 “이제 남편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남 편(58)은 지난 5월 정부투자기관 국장으로 있다 명예퇴직하는 순간까지도 일언반구 상의가 없었다. 박씨가 남편의 명예퇴직을 안 것은 일주일이나 지난 뒤였다. 그것도 남편의 친구로부터 언질을 받았을 뿐이다. 30년을 같이 사는 동안 일찌감치 남편에게 정을 끊은 박씨였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모였다. “아들 둘은 이미 장성해 분가했고, 막내딸도 결혼날짜를 받아놓은 터라 거리낄 게 없어요. 남편이야 갑자기 이혼요구를 받으면 깜 짝 놀라겠지만 그동안 내가 아내로 어머니로 희생한 것을 생각하면 조금 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남은 건 내몫을 더 많이 받아내고 싶은 생각뿐이 에요. 4층짜리 건물과 남편의 퇴직금 분할을 요구할 겁니다.”
이런 ‘중년 이혼’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사정이 아니다. 일본은 이 미 오래 전부터 이른바 ‘황혼 이혼’ ‘은퇴 이혼’ 현상으로 몸살을 앓 고 있다. 남편의 퇴직과 동시에 재산분할을 요구하며 홀로서기를 시도하 는 아내들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95년 일본의 전체 이혼건수는 1 9만9천32건으로 인구 1천명당 이혼율이 1.60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결혼생활 20년 이상된 부부의 이혼이 3만1천8백79건으로 전체 이혼의 16%를 넘어섰다.
일본, 황혼이혼·은퇴이혼에 사후이혼까지
일본의 경우 이들 중년 부부의 이혼 형태도 다양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죽어서 남편의 무덤 옆에 묻히길 거부하는 아내가 10%를 넘어섰다. 이른 바 ‘사후 이혼’이다.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서 남편이 정년을 맞아 가정 으로 돌아올 무렵 이혼과 함께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은퇴 이혼’도 많 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끝내 이혼하지는 않지만 부부 아닌 부부생활을 이어가는 ‘가정 내 이혼’도 만만찮다. 지난 4월 일본 성인남녀 3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 남성의 66 %는 “노후를 아내와 함께 지내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남편과 노 후를 지내고 싶다”고 응답한 여성은 31%에 불과했다.
최근 40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한 송아무개(60)씨는 요즘처럼 홀가분한 때가 없다. 그에게 결혼생활은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직업군인이었던 남 편(60)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때렸다.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그저 꼴 보기 싫다는 게 전부였다. 발길질에 차여 유산을 했을 때도 남편은 병원 에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자식들 결혼에 흠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일념 으로 송씨는 그런 세월을 견뎠다. 이미 마음은 남편을 떠나 있었고 이혼 은 시간문제였다. 마침내 올해 초 막내딸을 시집보내고 송씨는 이혼소송 을 제기했다. “머리가 희끗한 나이에 더이상 남편의 구타를 감내할 까닭 이 사라졌다. 하루라도 내 삶을 찾고 싶다”는 게 그의 이혼사유다.
송씨는 그동안 나름대로 이혼에 대한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남편 몰래 자그마한 가게도 알아보고, 시장조사도 했다. 45평짜리 아파트와 시골의 부동산을 분할하면 혼자서도 넉넉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혼요구를 받은 남편은 처음엔 협박도 하고 나중엔 애원도 했지만 송씨의 결심을 꺾 지 못했다. 막내딸 결혼식이 끝난 다음날 송씨는 주저없이 집을 나왔다. 다행히 자식들이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해 한결 힘이 난다. 송씨는 “잃어버린 인생을 되찾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적어 아쉬울 뿐”이라고 말한다.
친정에서도 쫓겨났던 상처
이아무개(56)씨는 올해로 결혼생활 35년째를 맞고 있다. 명문대학을 졸업 한 남편(62)은 공무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갔고 얼마 전 정년 퇴직을 했다. 아들과 딸은 이미 결혼했고, 부부만이 떨어져 산다. 그런데 그게 이씨에겐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괴롭다. 남편이 직장에 다닐 때는 퇴근한 뒤에만 비위를 맞추면 됐으나 지금은 일이 곱절로 늘었다. 반찬 투정에 집안 정돈이 안 됐다는 꼬투리에 남편의 바가지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다 밥상이 넘어가고 손찌검이 날아들었다. 사실 남편의 폭행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씨는 결혼 6개월만에 남편으로부터 뺨을 맞았다. 당장 이혼하고 싶었으나 친정에서 “죽어도 그 집에서 죽어라”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친정에서도 내쫓김을 당했다. 이씨의 생활은 아내라기보다 하인에 가까웠다. 남편이 “물”하면 물 떠 다주고 “신문”하면 신문을 갖다줘야 했다. 남편은 가계부까지 일일이 검사하며 구타의 구실을 찾았다. 조금이라도 말대꾸를 하면 즉시 호통과 주먹이 날아들었다. 남자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기엔 사는 게 지 옥같았다. 그런 삶을 행여 남이 알세라 숨기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보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어쩌다 부부동반 회식자리에서 자상함을 가장하 는 남편을 보면 기가 막혔다. 자식들이 자라 이런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빌었다. 그때가 되면 남편을 미련없이 버릴 작정이었다.
(사진/`아버지의 전화' 상담모습. 아내의 반란에 눈물로 하소연하는 전화가 줄을 잇는다. )
그러다 얼마 전 마음 속에 담아뒀던 이혼의 비수를 꺼내들었다. 남편이 끊으라고 한 신문이 2달째 계속 들어오자 마침 찾아온 신문배달원 앞에서 면박을 주는 거였다. “바보 병신처럼 그것 하나 못하느냐”고 남편은 호 통을 쳤다. 자식뻘 되는 젊은이 앞에서 창피를 당하자 박씨도 참을 수 없 었다. “나를 종으로 아느냐.” 몇십년 동안 꾹꾹 참아온 항변이었다. 남 편은 거기에 폭력으로 맞섰다. 등산용 지팡이를 휘두르며 횡포를 부렸다. 결국 박씨는 병원에 실려갔고 3주 진단이 떨어졌다. 박씨는 병상에서 변 호사를 구했다.
이씨가 남편을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분위 기가 짓누르는 집안에서 태어난 남편은 평생을 대접만 받고 살았다. 한때 “나 없으면 이 남자는 어떻게 살까” 걱정돼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동정 비슷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떨쳤다. 아내가 결코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남편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다. 집과 퇴직금의 절반을 당당히 요구할 생각이다. 이씨는 “쥐꼬리만한 월 급으로 이만큼 모았으니 그럴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자부한다.
‘중년 이혼’을 통한 아내의 반란은 대개 남편의 위기와 겹친다. 명예퇴 직이나 정년퇴직으로 일자리에서 쫓겨난 남편에게 아내의 이혼선언은 느 닷없이 뒤통수를 때리는 식이다.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참고 참았던 반격 이라 거기에는 일생의 무게가 실려 있다. 그 공방에서 남편에 대한 복수 심이 더해진다. 아내는 불만스런 결혼생활로 잃어버린 인생을 되찾고자 필사의 힘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어쩌면 당신의 아내도 그런 반란을 준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유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