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격동하는 재벌/코오롱 그룹

(사진/코오롱그룹은 지난 7월 30대그룹 중 처음으로 그룹 본사를 서울에서 과천으로 옮겼다. 97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한 코오롱 타워.)

최근 코오롱그룹은 올해 한가위 선물로 전 임직원(1만5천명)에게 시가 40 만원 상당의 신세기통신 017 이동전화를 한대씩 나눠줬다. 가입비와 보증 보험료 등 부대비용도 물론 회사가 전액 부담했다. 코오롱그룹은 또 올해 하반기에 지난해보다 1백명이 많은 3백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하기로 확정 했다. 대부분의 대기업이 신입사원 채용규모를 동결하거나 줄이려는 움직 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오히려 50%를 늘린 것이다. 마치 “불 황은 남의 일”이라는 듯한 움직임이다.


90년대 초 생산자동화로 돌파구

“우리는 이미 몇년 전에 커다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때부터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했지요. 올해는 그 성과가 나타나는 첫해입니다. 달성여 부는 아직 미지수지만 올해 경상이익 목표치를 예년 평균의 5배에 이르는 1천5백억원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룹 기획조정실 이활용 홍보팀장의 말 이다.

실제로 자동차, 반도체의 호조로 경제가 호황을 구가하고 있던 3∼4년 전 섬유업계는 일찌감치 어려움에 봉착했다. 코오롱그룹의 주력기업 가운데 하나인 (주)코오롱도 예외는 아니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4∼5개 업체가 독점체제를 유지하면서 큰소리를 쳐가며 원사를 팔던 ‘좋은 시절’이 계 속됐지만, 80년대 들어 진입장벽이 사라지고 기업들이 잇따라 원사생산에 뛰어들면서 출혈경쟁이 시작됐던 까닭이다. 게다가 노동집약적인 산업인 만큼 80년대 후반부터 고율의 임금인상이 계속되자 90년대에 들어서 채산 성이 크게 악화됐다.

(주)코오롱은 먼저 생산자동화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구미공장의 자동화 를 추진하면서 95년 문을 연 김천공장에는 최첨단 자동화설비를 도입했다 . 그 과정에서 대량해고나 명예퇴직없이 전체 인력의 30%를 줄였다. 비록 구미공장은 아직도 2천5백여명의 생산직 사원을 고용하고 있지만, 김천공 장에는 생산직이 현재 40여명에 불과할 정도다. 또 오는 10월이면 김천공 장에 무인자동화시설을 갖춘 하루생산 70만t 규모의 나일론 원사공장이 준공돼 가동에 들어가게 된다. (주)코오롱은 이와 함께 필름, 산업용 화 학제품, 정수기 생산 등으로 생산품목을 다양화함으로써 원사의 매출비중 을 전체의 30%대로 낮췄다.

지난 94년부터 2년 연속 1백억원대의 적자를 내 증권시장에서 2부종목으 로 떨어질 위기에까지 처했던 (주)코오롱은 이같은 변화에 힘입어 지난해 부터 다시 흑자(1백20억원)로 돌아섰다. 올해 상반기에는 지난해 같은 기 간에 비해 61%가 늘어난 1백15억여원의 경상이익을 냈다. 남들보다 먼저 찾아온 위기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던 셈이다.

이같은 시련은 그룹의 경영방침을 획기적으로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수익이 동반되지 않는 성장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규 모의 경쟁, 양의 경쟁에서 벗어나 수익의 경쟁, 질의 경쟁으로 전환할 때 다.” 이웅열 회장은 지난해 1월 취임과 동시에 ‘ONLY & ONE’이라는 이 름의 신경영방침을 천명했다. 한마디로 “하나의 제품을 만들더라도 최고 의 경쟁력을 갖는 제품을 만들자. 매출액으로 1등을 하기보다는 경상이익 에서 최고가 되자”는 것이다.


“빚으로 덩치 키우기는 안 한다”

(사진/구미공장을 둘러보는 이웅열 코오롱 회장. 취임과 동시에 "하나의 제품을 만들더라도 최고의 경쟁력을 갖게 하자"는`ONLY & ONE' 경영방침을 천명했다. )

지난 95년 직접 (주)코오롱 사장에 취임해 경영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던 이 회장은 질경영을 강조하기 위해 ‘사원 1인당 매출액’이라는 새로운 지표를 도입했다. ‘투명한 경영’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회장은 취임 뒤 계열사 사장들에게 사원들이 보는 앞에서 “허수, 허위보 고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했다. 속으로는 적자를 내면서도 겉 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장부만 꾸미는 것은 기업의 장기적 발 전을 위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의 경영방침은 코오롱그룹의 내적 변화를 계속 재촉하고 있다. 스 포츠의류에서 이미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코오롱은 일반골프채 보다 20야드 가량 비거리가 큰 골프채, 월 2만대 판매량을 자랑하는 13만 원대의 하이펠정수기 등의 히트상품으로 시장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 주)코오롱과 함께 그룹의 또하나의 주력인 코오롱상사도 9월 들어 현재의 사업본부제를 전략사업 단위별 사업부제로 전면 개편해 종전의 7본부제를 10개 사업부 3실체제로 전환해, 유통사업 등 신사업을 강화하고 저부가가 치사업 및 한계사업의 재정비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화학섬유(코오롱), 무역(코오롱상사), 건설(코오롱건설)을 주력으로 모두 24개 계열사를 거느린 코오롱그룹은 자산규모로는 재계순위 20위지만 재 무구조가 튼튼하다는 게 큰 강점이다. 최근 신산업경영원이 발표한 ‘30 대기업그룹 재무분석’에서 선경과 LG에 이어 3위의 평점을 받은 것이 이 를 증명한다. 코오롱은 자기자본 9천1백23억원에 부채율이 300% 정도다. 그룹의 한 임원은 “빚을 내서라도 덩치를 키웠더라면, 그동안 얼마든지 재계순위를 높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코오롱은 규모는 작지만 알짜기업을 여러개 갖고 있다. 접착제, 잉크, 테이프 등에 사용되고 있는 석유수지를 국내 독점생산하고 있는 코 오롱유화는 지난 3년간 매출액이 연평균 25%씩 계속 성장해왔다. 올해도 65억원 정도의 경상이익을 낼 전망이다. 코오롱유화는 기저귀 등에 쓰이 는 고흡수성 수지의 국내수요가 급성장하고 있어서 4백억원을 투자해 2천 년까지 생산능력을 현재의 6배로 늘릴 계획이다.

유통·금융·정보분양 집중육성

코오롱상사가 일본화낙과 합작으로 설립한 한국화낙(지분 42.45%)도 성공 적인 투자케이스로 꼽힌다. 산업용로봇과 CNC공작기계 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자본금 40억원에 매출액이 1천억원선이지만, 매출경상이익률이 20 %를 넘는다. 상장될 경우 주가가 30만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 도다. 골칫거리라면 문화예술전문 케이블 TV를 방송하고 있는 A&C코오롱 이 매년 70억∼80억원씩 적자를 내는 것이다.

코오롱그룹은 앞으로 유통과 금융부문, 그리고 정보통신산업을 그룹의 주 력으로 집중육성할 방침이다. 우선 유통부문은 슈퍼마켓과 할인점을 혼합 한 형태인 ‘다마트’와 편의점 ‘로손’이 두 축을 이룬다. 94년 문을 연 다마트는 주택가를 파고드는 전략으로 2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고, 올해는 연말까지 7억원의 경상이익을 낼 전망이다. 다마트는 앞으로 2천년까지 5천억원을 더 투자해 매출액을 1조원까지 끌어올릴 계 획이다. 지난 95년 코오롱유통이 태인유통으로부터 인수한 로손도 지난 6 월 처음으로 1천만원의 경상이익을 냄으로써 흑자로 돌아섰다. 현재 전국 에 24개 직영점을 포함해 2백70개의 점포를 갖고 있으며, 지난해 1천1백 억원 매출을 올렸다.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에서는 금융부문은 기업집단이라면 어디든 그룹의 안 정적 성장을 위해 꼭 필요로 하는 부문이다. 코오롱그룹은 금융부문의 경 우 코오롱할부금융, 코오롱메트생명 등을 갖고 있으며, 보람은행에 공동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물론 후발 생보사인 코오롱메트생명은 비록 다른 후발생보사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지만 지급능력 부족을 개선하지 않아 재 정경제원으로부터 대표이사 경고조치를 받는 등 경영실적이 양호하지는 않다. 그룹관계자는 “어음할인, 신용카드업, 특수금융업에의 신규진출을 겨냥하고 있으며, 베트남에 리스회사를 설립한 뒤 이를 주변국가로 확대 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코오롱그룹이 무엇보다 역점을 두는 사업은 정보통신사업이다. 90년 설립 한 코오롱정보통신은 지난해 2천8백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전년대비 87% 의 성장을 했으며, 올해 매출목표는 28% 늘어난 3천6백억원으로 잡고 있 다. 특히 포철보다 1% 적은 지분을 가진 2대주주로 신세기통신 경영에 참 여하고 있는 코오롱그룹은 포철이 경영권을 포기할 경우 지분을 인수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철과의 관계’ 두고두고 짐으로…

송대평 기조실 사장은 “정보통신산업은 컴퓨터, 통신, 기타 틈새시장으 로 나눌 수 있다. 신세기통신이 순수 통신서비스를 주로 한다면, 코오롱 정보통신은 컴퓨터쪽이고, 앞으로 통신판매와 영상캐릭터산업 분야로 기 반을 넓혀야 멀티미디어정보사업군으로 도약할 수 있다. 앞으로 10년 이 상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움직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와 대학동문인 이 회장이 현철씨의 측근인 박태중씨 계좌에 2억원을 입금한 사실로 인해 지난 5월 검찰에 불려가 조 사를 받은 것은 두고두고 코오롱그룹에 짐으로 남을 전망이다. 코오롱은 이와 관련해 “이 자금은 세계적인 재즈레스토랑인 ‘블루노트코리아’를 국내에 들여오는 과정에서 합작투자금으로 건네진 것”이라고 주장했고 검찰도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코오롱은 이로 인해 “이동통신 사 업자 선정과정에서 현철씨의 도움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코 오롱이 제2의 도약을 위해서는 반드시 딛고 서야할 과제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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