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원권리 찾기
|
|
(사진/"돈 4천원이 문제가 아니죠." 손양철씨는 소비자 권리가 모두에게 보장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
5월의 마지막 날은 마침 토요일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창원에서 새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손양철(30·회사원)씨도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틈타 거리로 나섰다. 화창한 햇살의 유혹을 좇아 거리에 나선 손 씨에게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또다른 유혹이었다. 직장생활과 함께 늘 무난한 옷차림으로 지내야만 했던 손씨는 ‘나도 한번쯤 화사한 옷차 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변함없는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에서 한번쯤 해방되고 싶다는 데까지 발전했다. 언제부 턴가 버릇처럼 무난한 옷차림만을 고집해오던 손씨였지만 이렇게 좋은 날 에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처럼 튀는 옷을 입고 거리의 분위기에 젖어보 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발걸음을 상가로 옮겼다. 진열대에는 벌써 여름이 와있었다. 메이폴 창원 대리점의 문을 열었다. 옅은 살색 바탕에 붉은색 줄무늬가 길게 쳐진 반 팔 옷이 손씨의 눈길을 잡았다. 현금으로 계산을 마치고 경쾌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손씨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구입한 옷의 색상이 손씨와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조차도 옷이 안 어울린고 성화였다. 별 수 없이 새옷을 입고 일요 일 한나절 거리를 활보해보겠다는 손씨의 계획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 손씨는 행여 구겨질까 조심스레 보관해뒀던 옷을 싸들고 다시 옷 가게로 향했다. 옷을 교환해야 하겠다고 말하자 주인은 흔쾌히 그러라며 옷을 고르도록 해줬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새로 고른 옷은 어제 산 옷보다 4천여원이 싼 옷이었지만 주인은 그 차액을 현금으로 되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현금보관증을 써줄 테니 보관하고 있다가 다음에 옷을 구입 할 때 4천원만큼 할인받으라는 거였다.
언제 또 옷을 구입할지도 모르고 또 구입하게 될 옷이 꼭 메이폴이 될 수 도 없는데…. 손씨는 그럴 수 없노라고 말했다. 결과는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었다. 주변 상점의 상인이 나서서 사태를 중재했지만 주인은 완강했 다. 더이상 다투지 않으려면 현금보관증을 받고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불과 4천원. 정말 작은 돈이었다. ‘처음 옷을 구입할 때 주의를 더 기울 였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라는 후회가 들자 ‘차라리 잊어버릴까’ 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받아둔 현금보관증은 그 가게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현금보관증 때문에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별 수 없 이 그 가게 옷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도 생길 것이다’라는 데까지 생 각이 미치자 참을 수 없었다.
소비자보호원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약관상 현금환불은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소비자가 무조건 불리한 규정이 아닌가. 약관을 확 인해보고 싶었다. (주)나산 소비자불만처리센터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답변은 별도 약관은 없고 상표에 붙어 있는 ‘소비자피해보상규정’에 준 해 보상을 한다는 것이었다. 현금환불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나 소비자가 원할 때에는 환불하도록 교육하고 있다는 모호한 답변이었다. 다시 소비자보호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때서야 담당자는 중재를 해보겠 다는 거였다. 처음부터 돈을 돌려받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 리 옷 한벌이지만 명확한 거래약관조차 없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또 목소리를 높이니까 그제서야 중재해보겠노라는 소비자보호원의 태도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목소리가 큰 소비자는 그나마 보호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소비자들 은 그대로 권리를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손씨가 경험한 현실이었 다. 모든 소비자들을 평등하게 보호할 수 있는 보편적인 규정과 제도가 아쉬었다. 평범한 시민의 힘이 지금까지의 관행과 맞선다면? 손씨는 공정 거래위원회에 고발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작은 파문들이 계속될 때 언 젠가 거대한 파도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창원=윤승일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