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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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세계가 너무 초라했다
표지이야기 ‘젊음의 언어, 록의 세계’는 신선한 표지였지만 기대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록 음악의 전반적인 상황을 다루지 못하고 시야를 지나 치게 좁혀 다루다 보니 록의 한 흐름을 포착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또한 록 음악을 주류와 대안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테두리에 가둔 것도 그다 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록 음악을 그런 도식적인 구분으 로 해석하려는 사람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저항과 자유라는 구분은 무 의미하다. 신진 로커들이 신촌지역에서 많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 대중과 만나는 로커이들이 많음에 도 그들에 대한 내용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록이 혁명적 소음이라는 규정도 찬성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록을 어떤 형식에 가두는 것에 절 대 반대한다. 그냥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 아닌가.
권일지/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범물에덴타운 201-208
안기부의 전근대적인 생존전략
특집 ‘안기부 앞세워 대선 돌파한다’를 읽으며 문민시대를 맞아 변화를 꾀한다고 여기던 안기부의 위상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안기부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정치지형을 흔들어 댈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마음 아프 다. 날치기 파동으로 수사권을 강화한 결과가 고작 이 모양이라니…. 아 직도 우리 사회에서 안기부는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검은 장막’이다. 여당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가운데 정치적 중립은 요원한 일이다. ‘정 치사찰’이 생존전략으로 치부되는 가운데 안기부의 위상이 바로 설 리 없다. 첨단 정보화사회로 가는 마당에 전근대적인 색깔론으로 다양성을 짓밟으려 한다면 더욱 국민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보기관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안기부원이라면 오금이 절 여 오는 현실이 극복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수/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136-21
‘빨간 칠의 마술사’ 밝혀야 한다
일곱색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무지 개에는 빨간색이 없는가 보다. ‘빨간’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여지없이 박살나기 때문이다. 정형근 의원은 빨간 칠의 마술사이다. 안기부에서 오 랫동안 활동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그가 정치권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오직 빨간 칠 때문인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그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색깔 론’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가운데 ‘빨간 칠 전문가’들과 그들의 작품 을 세세하게 설명했더라면 좀더 이해를 도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론조 사에서 빨간 칠이 더이상 정치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생각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누구를 매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유지훈/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2가 벽산아파트 103-1204
한총련 고사작전 그만두라
진단 ‘한총련 사면초가’는 붕괴직전의 학생운동조직에 대한 시의적절한 기사였다. 그동안의 한총련 폭력시위는 여론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 다. 이에 힘입은 공안당국은 물이 오를 대로 올라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해 고사작전을 벌였다. 일부 언론도 이에 편승해 한총련 박살내기의 협조자가 되었다. 그 내용은 자료집으로 만들어져 각 동사무소에 가면 쉽 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학생운동을 진지한 시각으로 바 라보는 기사를 접하니 반가운 일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학생운동은 그동 안 민주화에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이 사실이다. 언론의 한총련에 대한 진 지한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수많은 국민을 살해한 자들에 대한 사면논의 가 진행되는 가운데 무엇이 국민에게 이로운 일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총련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면 한 다.
최종민/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7리 204-3
정부 주도로 유골 발굴하라
삶 ‘한·일 대학생이 함께 부른 진혼곡’을 읽고 가슴이 찡했다. 일제 침략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집도 예외 는 아니다. 아버지께서 일본 홋카이도에 강제노동으로 끌려갔다 오셨다. 홋카이도에 떠도는 원혼이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아직도 많은 유골이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대학생들의 공동조사가 아니 라 양국이 정부차원의 합동발굴단을 꾸려 과거의 상처를 함께 안았으면 한다. 과거사를 규명하지 않고 양국의 앙금이 없어질 리 없다. 대학생들 의 작은 시작이 큰 흐름을 형성하길 소망한다. 대학생들의 친선이 역사를 새롭게 밝히는 등불이 되었으면 한다.
김현수/ 서울시 관악구 신림8동 567-20
어른들이 정신차려야 한다
세상보기 ‘회초리 누가 맞아야 하나’에 실린 사진은 충격과 분노 그 자 체였다. 세상에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온 사회가 성인군자처럼 청소년들의 폭력·비행을 질타하고 그 책임을 만화 나 일부매체에 돌리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라. 어른들은 일 부 청소년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찍힌 비디오테이프의 제목 ‘빨간 마 후라’를 교과서로 삼은 것이다. 아무리 잇속에 눈이 어두워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사진을 본 청소년들이 어른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상상하 기도 싫다. 청소년들을 나무라기 전에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아 야 할 때다. 근엄한 사회의 뒷면에 숨어 있는 욕망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김용운/ 부산시 북구 덕천3동 426-37 10/3
광주비엔날레 심층보도 아쉽다
문화면에 실린 광주비엔날레 관련기사를 읽다가 지나간 일은 무의미하게 치부해 버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언 급이 한마디에 그쳤기 때문이다. 물론 한단계 높은 곳을 지향하기에 원년 행사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2년에 한번씩 치르는 행사인 만큼 당 시를 모르는 독자를 위해 지난 행사에 대한 대략적인 언급이 있었다면 훨 씬 이해가 쉬웠을 것이다. 또한 ‘1회 때보다 심오하면서도 도전적인 메 시지를 숨기고 있다’는 데 어느 면에서 더 심오하고 어떤 작품 속에 도 전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다. 최근 들어 미술에 대한 지면이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는데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하는 작품들을 지상전 시 형식으로 많이 소개하고 구체적으로 분석했더라면 기사가 좀더 생생하 게 다가왔을 것이다.
조유순/ 대전시 유성구 송정1동 390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