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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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나이, 더 좋은 일이 뭐 없을까?
그는 근처 노인정에 가보았다. 동네 할머니들은 죽치고 앉아 날마다 화투 를 치는 것 같았다. 그는 말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변함없이 집과 교회 두곳만을 선택하며 살기로 했다.
김인순(71) 할머니.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에 혼자 사는 그는 평생을 그 렇게 지내왔다. 집과 교회, 교회와 집.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신앙을 키웠 고 전도사를 남편으로 만났다. 집에서 성경을 읽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 하며, 교회의 노인대학에서 공부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과다. 그래도 외골 신앙인은 아니란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관심도 크기 때문이다 . 9시 TV뉴스를 꼭 봐야 한다는 건 신념에 가깝다. 조간신문도 항상 훑는 다. 그리고 <한겨레21>…. 거실 그의 책상엔 <한겨레21> 최신호 10여권이 언제나 단촐하게 놓여 있다.
남편의 영향이 컸다. 5년 전 타계한 고 이두수 목사가 그다. 남편은 목사 였지만 투사이기도 했다. 유신시절부터 6공화국까지 남편은 기독교계에서 잘 알려진 인권운동가였다. “만날 띠 두르고 나갔지요. 목회활동만 하면 편할 텐데….” 85년 장안평 태평교회에서 정년퇴임한 이두수 목사는 그 뒤에도 사회활동을 그치지 않았다. 유명했던 ‘목요기도회’에 주도적으 로 참여했고, 툭하면 최루탄 가루를 뒤집어쓰고 들어왔다.
김인순 할머니는 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남편이 1백만원어치 주식 을 사던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7년 뒤. 95년 가을, 아들의 권유 로 정기구독하기 시작한 <한겨레21>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새롭 게 눈을 떴다”는 게 그의 표현이다. “이렇게 적나라하고 당당하게 파헤 치는 잡지가 있는가, 이렇게 소외계층을 따뜻이 감싸는 매체가 있나 감격 했지요.” 처음 3개월간은 “한 쪽,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읽을 ” 정도로 책에 심취했다고 한다.
<한겨레21>을 권유한 아들 내외는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살고 있다. 날 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그 아들이 유일한 자 식이다. 좀 뜻밖이다. “남편은 아이를 갖지 말자고 했지요. 수많은 아이 들이 입양 나가는 판에, 우리가 데려다 키워야 하지 않겠냐는 거예요.” 그러나 “내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할머니도 버텼다. 결국 아들 하나만 볼 수 있었다.
<한겨레21>을 꼬집어 달라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이 말을 거듭했 다. “수고하는 기자들 정말 고마워요. 용기있게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 주세요.” 어지러운 세상에 깨달음을 주는 기사. 돌아가신 남편은 생전에 그것을 가장 목말라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경태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