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
|
(사진/만석동 어린이들은 가난한 생활에도 풍요로운 마음을 가졌다. 가을 발표회를 앞두고 노래연습을 하고 있다.)
사방이 온통 잿빛이다. 우중충한 빛깔의 공장들도, 공장 굴뚝에서 뿜어나 오는 연기도 잿빛이다. 잿빛 연기가 투명한 초가을 하늘을 뿌옇게 먹칠한 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채색. 그 공장들 틈새를 비집고 인천 만석동 6번 지와 9번지 주택가가 분지처럼 들어앉아 있다.
대우중공업과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채꼴처럼 형성된 동네. 만석 동은 멀리 개화기 때부터 한국 근대사의 주류에서 밀려난 빈민지역의 상 징으로 존재한다. 개화기 때는 외국인 조계에서 쫓겨난 제물포 일대의 사 람들이 모여 한을 곱씹었다. 한국전쟁 와중에는 뱃길을 따라 황해도와 평 안도 피난민들이 몰려왔고, 60년대 후반부터는 각지의 이농민들이 공장의 일거리를 찾아 이곳 만석동으로 흘러들었다.
빈민가 아이들의 따뜻한 보금자리
동네 길 건너편에는 공단으로 통하는 화물 운반용 철길이 나 있고, 동네 어귀에는 놀이터만한 넓직한 공터가 있다. 이 동네 아이들의 보금자리 ‘ 기찻길옆 공부방’이 위치한 곳도 공터의 가장자리다. 허름한 2층짜리 건 물엔 번듯한 간판조차 없다. 그저 조그마한 막대기에 검은 칠을 한 뒤 누 군가 정성스레 붓글씨로 써놓은 게 공부방을 알리는 전부다. 빛바랜 슬래 브 지붕, 소금바람에 삭아버린 페인트칠, 손바닥만한 구멍이 뻥 뚫려 있 는 비닐 미닫이문 따위도 이 동네 여느집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보잘것 없어 보이는 7평짜리 공부방에선 아이들의 꿈이 영글어간다.
지금 이 공부방은 가을걷이 준비에 한창이다. 코앞에 다가온 발표회가 아 이들과 이모·삼촌(실무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이렇게 부른다)들의 마음 을 바쁘게 만든다. 비좁은 공부방은 연극연습을 하는 열네댓명의 초등학 생들로 꽉차고, 선풍기 2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늦더위를 쫓아낸다. “얘 들아, 목소리를 좀더 크게 내봐. 조그맣게 목소리를 내면 마이크를 대도 안 들려. 그리고 경표 너, 책 읽니? 말하는 것처럼 한번 해봐. 자, 처음 부터 다시 해보자.” 향숙 이모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진다.
학교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공부방에 모이는 장면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학교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 “야! 끝났다” 왁자지껄한 아이들 의 목소리. 미정(만석초등학교 6학년)이는 고무줄 놀이를 하자는 친구들 을 뿌리치고 서둘러 가방을 챙긴다. 하나둘씩 아이들이 공부방으로 모여 들면서 공부방이 소란스러워진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이모의 힘 겨루기가 끝나면….
미정이네 집은 전형적인 이농 가정이다. 미정이가 기억하지 못할 만큼 먼 옛날, 전남 진도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가 이곳 인천 만석동으로 올라왔다 . 하지만 미정이는 여섯살 때까지 진도에서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 아야 했다. 여인숙을 전전하며 일자리를 찾던 엄마·아빠에게 미정이를 데려오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할머니랑, 할아버지한테 짜증내 고 그랬어요. 옆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면 엄마가 보고 싶어 막 울었어요. ”
가난을 고스란히 담으려는 아이들의 연극
(사진/만석동은 빈민지역의 상징. 기찻길옆 공부방에서 어린이들의 꿈이 영글어간다. )
미정이가 만석동으로 온 뒤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공장에 간 엄마와 아 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그냥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아침에 깨어보 면 엄마와 아빠의 잠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가슴 한켠에 쌓여 있던 외로 움 때문일까. 미정이가 처음 공부방을 찾을 때만 해도 친구들의 주위를 빙빙 겉돌기만 하고 남달리 수줍음을 많이 탔다. 그런 미정이가 이번 연 극연습을 하면서 눈에 띄게 명랑해졌다. “모든 것이 다 재미있어요. 집 에 와서도 막 연습하고 그래요. 발표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연극 내용은 평범하다.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그냥 연극으로 꾸몄을 뿐이 다. 이모·삼촌들과 같이 공부하는 장면, 아이들끼리 서로 다투다 화해하 는 모습, 그리고 공장에 다니는 엄마와 아빠 이야기가 연극의 전체 뼈대 다. 여기에 아이들이 틈틈이 쓴 글로 조금씩 살을 붙였을 뿐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였다면 좀더 재미있게, 좀더 극적으로 꾸몄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찻길옆 공부방의 발표회는 그게 전부가 아니 다. 누군가 아이들에게 만들어놓은 생채기를, 아이들은 연극을 통해 스스 로 치유하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대본작업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먼지 묻은 속내를 드러낸다. 그리고 연극을 반복하면서 아이들의 상처는 서서 히 아물어 가는 것이다. 자신이 없다고 울고 불고 주저않는 아이, 헌 장 구를 줬다고 토라져 그냥 집에 가는 아이. 그 아이들을 모두 보듬어안고 무대에 세우고 나면 아이들은 깊은 무력감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능청스런 연기에 눈시울 뜨겁다
이모가 수학공부에 따분해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똥바다’(공단폐수로 오염된 인천 앞바다 개펄)로 놀러가는 모습, 여학생들과 경표의 말다툼 장면이 지나가면 암전. 공부방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훌쩍 울고 있 는 진아(2학년)를 핀조명이 동그랗게 감싼다.
이모: 진아야, 또 집에 안 갔구나.
진아: 집에 가기 싫어요. 엄마도 없구, 아빠도 없단 말이에요.
이모: 오빠 있잖아.
진아: 없어요. 오락실 갔단 말예요.
이모: 벌써 8시가 다 돼가는데 곧 엄마 오시겠네. 집에 가서 기다려. 진 아, 아기처럼 왜 그래.
진아: 이모, 배 아파요. 머리도 아프고 열도 난단 말예요.
이모: 이리 와 봐(머리도 만져보고 배도 쓰다듬어 준다). 열도 별로 없네 뭐. 이모가 배만져 줬으니까 이제 안 아플 거야.
훌쩍이는 대목에서 어찌나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는지 정말로 우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연기가 끝나면 혓바닥을 쑥 내밀며 천연덕스럽게 웃 는다. 공부방은 이내 웃음바다가 된다. 1년 전만 해도 진짜 울보였던 진 아를 쳐다보는 이모·삼촌들의 눈이 따뜻하다.
만석동도 다른 가난한 지역과 똑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대부분 부두 하 역작업이나 인근 목재소 막일 같은 불안정한 직업을 갖고 있는 부모들. 불규칙한 퇴근과 늘 경제적 위협에 시달리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란 마음 같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은 누군가가 사랑과 관심을 기울 여주기를 갈구한다. 진아가 배아프다고 ‘엄살’을 피운 것도 관심을 끌 고 싶었기 때문이다.
훌쩍이던 진아가 무대 뒤로 퇴장하면 찬석이(가명·6학년)이가 자작시를 읽는다. 올 봄에 지은 시란다. “…. 내동생은 개구쟁이/ 자전거를 타면 태워 달래고/ 안 태워 주면 울고, 타라고 하면 웃고/ 내동생은 이상하다/ / 밤에 엄마, 아빠가 다 일나가서 없을 때/ 까불다가 혼내면/ 뒤돌아 누 워 텔레비전만 본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아/ 가서 보면/ 울다가 자고 있 다// 그럴 때 보면/ 동생이 불쌍하다.”
가출한 엄마, 울먹이는 아이들
(사진/네모난 상자모양의 집들이 이어져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
사실 찬석이는 공부방에서 유명한 말썽꾸러기다. 연극 속에서도 말썽꾸러 기를 자처한다. 이모·삼촌들이 하지 말라는 카드치기를 하고, 이모·삼 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찬석이도 연극준비를 하면서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연극준비가 한창이던 6월께, 찬석이가 친구들에게 트집을 잡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주의가 산만하긴 했지만 평소와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찬석이의 변화를 눈치챈 큰이모 김중미(35)씨. 큰이모 앞에서 한참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찬석이가 묻어놨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어머니가 가 출했다는 거였다. 큰이모의 품에 안겨 찬석이는 한참을 울었다.
찬석이는 요즘 동생과 함께 아침 6시에 일어나 10분 거리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간다. 거기서 아침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가는 것이다. 공부방 수업 이 끝나면 다시 할머니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그래도 겉으로는 어두운 그림자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학교 담임선생님한테 이번 발표회에 꼭 오시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고맙다고 했어요. 저는 연극배우가 돼서 멋있 는 자전거 하나 살 거예요.” 하지만 엄마 이야기에 대해서는 좀처럼 속 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환경 때문일까. 아이들은 엄마의 고생에 일찍부터 눈을 뜬다. 3학년 아름 이가 엄마에 대해 쓴 글에는 고마움와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우리 엄 만 눈이 아프다/ 어제 일 나갔다가 잘못해서 눈을 다쳤다/ 그리고선 집에 들어왔다/ 이마에 물 적신 수건을 올려놓고/ 눈에는 약을 넣고선/ 잠을 잔다./ 우리보고 일찍 잠을/ 자라고 하신다/ 우리 엄마는 불쌍하다/ 아프 면서 밥을 차려 주는/ 우리 엄마가.”
연습시간이 30분을 넘기면서 아이들의 몸이 비틀리고 꼬이기 시작한다. 영락없는 초등학생이다. “이모, 우리 쉬었다 해요.” “안 돼, 발표회 날짜가 얼마 안 남았잖아.” 이모의 재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느긋해진다. 장난꾸러기 경표는 한켠에서 친구들과 계속 딴청을 부린다. 빨리 밖에 나가 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모습이다. 첫번째 연습 때 칭 찬을 받았던 진아도 크게 하품을 한다. 지겨운 표정이 역력하다.
가난해도 마음은 부자
만석동은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집들이 네모난 상자를 본드로 붙여 놓은 듯 딱딱 달라붙어 있다. 그 사이사이 골목은 고양이들의 집이고 또 쥐들의 집”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는 놀이의 대상일 뿐이 다. “하도 좁은 골목이 많아서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 할 때 최고”라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이곳 만석동에서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소 중한 것을 배우는지도 모른다. “우리 동네는 아주 낡았지만 사람들이 많 이 있다. 사람들은 잔치도 하고 즐긴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동네 사람 들이 모여서 밥도 하고 잔치도 한다.” ‘마음이 부자’인 아이들의 눈엔 가난한 공동체에 흐르는 따뜻한 정이 보이는가 보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