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삶

기차길 옆 공부방의 터줏대감 최흥찬·김중미씨 부부

최흥찬(35)·김중미(35)씨 부부는 공부방의 터줏대감이다. 아이들한테는 큰삼촌·큰이모로 불린다. 대학을 졸업하고 천주교도시빈민회 회원으로 만석동에 공부방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게 88년이니, 이곳 생활만 벌써 10년째다. 처음에 ‘실무자’로 들어온 최씨와 김씨는 그동안 결혼을 해 서 단비(7)와 솔비(1) 두딸을 낳았다. 함께 공부방을 시작한 실무자 8명 가운데 4명도 결혼을 해서 만석동에 정착했다. 이들도 지역신문 발행이나 청소년 쉼터 같은 일을 하며 최씨 부부와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최씨 부부는 ‘실무자’나 ‘활동가’로 불리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다. 그저 ‘단비 아빠’ ‘단비 엄마’로 불러 달란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 어놓는 데도 말을 아낀다. 만석동에 정착하게 된 이유도 처음에는 “그냥 좋아서”라는 게 전부였다. 흥찬씨에 대해 조금 더 들은 이야기가 이렇다 . 그는 정말 가난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단다. 그래서 한때는 가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하지만 어릴 때의 가난에 대한 경험 때문에 이질감 없이 억눌리고 소외된 사람과 함께 살겠다는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단다. 처음 만석동에 왔을 때 “바로 여기구나”라고 생각한 것도 어릴 때의 그 런 정서 때문이고. 또하나, 상처받은 아이들과 개별적으로 맺어진 정이 그를 만석동에 붙들어 맸단다.

그래도 너무 힘든 삶이다. 삶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은 작은 일상들 아 닌가. 한밤중에 일어나 20여m나 떨어진 공동화장실을 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여름에 샤워는 어떻게 하고. “남들이 보기에는 어렵고 힘든 삶인 것 같지요. 하지만 막상 삶의 지향을 ‘가난’으로 규정하고 나면 사회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주어진 환경에도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지요. 가난하게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따뜻 한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말이죠.” 남의 얘기처럼 무덤덤하게 얘 기하지만, 삶의 지향을 ‘가난’으로 규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번민의 밤을 보냈을까.

최씨 부부에게 소박한 꿈이 하나 있다. 내년 봄까지 탁아시설을 새로 만 들고 공부방과 청소년 쉼터를 합칠 만한 작은 공간을 얻는 일이다. 그래 서 요즘에는 재정을 마련할 방법을 찾느라 밤잠을 설친다. “공부방은 초 등학교 이상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지요. 그런데 입학 전의 아이들은 사실 상 방치돼 있어요. 또 이곳 청소년들은 대부분의 언론에서 ‘가해자’로 묘사되는 그런 학생들이죠. 일단 사고를 일으키고 나면 조치할 재간이 없 어요. 그전에 예방을 하는 게 중요하지요.”

마지막으로 짓궂은 질문을 해봤다. 단비와 솔비의 교육 문제였다. 단비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 하지만 ‘우리 아이들만큼은…’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아빠·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이들의 삶의 원칙과 기준이 될 거라고 믿으니까요. 그래서 미사를 드릴 때마다 기도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 식을 먹이고 싶을 때, 좋은 옷을 입히고 싶을 때는 우리 아이보다 낮은 곳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게 하소서.’”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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