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스포츠/연재

월드컵의 진실(2) 국민성 닮은 발재주 연출

(사진/독일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빈틈없는 경기를 치른다. 미국 월드컵에서 한국과 맞붙은 독일 대표팀.)

월드 스포츠로 불리며 많은 지구촌 가족을 열광시키고 있는 축구의 매력 은 대체 무엇일까? 축구의 재미를 분석하는 데는 여러가지 설명이 있으나 , 그 가운데서도 크게 두가지 주장이 그럴 듯하다. 첫째 규칙이 간단해서 누구나 알기 쉽고, 둘째 다른 숱한 스포츠와 달리 발을 쓴다는 것이다. 축구처럼 관중이 보기 쉽고 알기 쉬운 경기도 드물다. 축구는 손으로 공 을 건드리지 않고 상대방 골문에 정당하게만 넣으면 1점이다. 농구처럼 2 점슛이나 3점슛이 없다. 배구처럼 스파이크가 성공했는데도 서브권만 따 내는 일도 없다. 럭비처럼 트라이가 5점, 골이 2점, 페널티킥이나 드롭골 은 3점 따위의 복잡한 득점법도 없다. 축구는 한 골이 바로 1점이다. 상 대방의 반칙에 의한 프리킥이건 페널틱이건 혹은 멋진 패스로 연결된 헤 딩슛이건 아무튼 1점이다. 게다가 축구의 규칙은 고작 17조에 불과하다. 구기 가운데 가장 소박한 경기방식이다. 규칙이 간단하고 적을 뿐아니라 알기도 쉽다. 보통 사람이 생각해서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는 플레이 는 모두 반칙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축구가 발을 쓰는 스포츠란 점도 축구의 재미를 더한다. 옛부터 사람들은 거의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해왔다. 발이란 걷거나 뛰거나 뛰어오르는 데만 쓰였다. 똑같이 신체의 일부이면서도 발은 손처럼 잔재주를 부리기 힘들 다. 발로 작은 물건을 툭 차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이 길 바닥에 굴러다니는 솔방울이나 작은 나무토막 혹은 돌멩이 따위를 차보았 는지 모른다. 아마 차보니까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동물 가운데 발을 앞으로 내질러 물건을 찰 수 있는 종은 사람뿐이다. 말의 발길질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뒷발질에 불과하다. 사람이 발을 앞으로 내지를 수 있는 것은 복근이 발달해 있고, 두 다리로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앞 발질은 사람만의 특기다. 따라서 “축구는 가장 사람다운 스포츠”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의 분석은 여기에 또다른 관점을 제공 한다. 대단한 축구광이었던 키신저는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국민성이 나타나는 경기다. 그래서 더욱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축구의 매력이 이따금 집단적인 광기로 발전하는 비밀을 짐작케 하는 분석이다. 키신저에 따르면 독일 축구는 게르만 민족의 기질이 그대로 배어 있어 플 레이가 매우 합리적이고 견실하다. 마치 독일제 기계의 튼튼함을 떠올리 게 한다. 독일 축구는 전쟁을 치르듯 참모본부를 두고, 세부사항까지 작 전을 세운다. 그리고 착실한 준비와 맹훈련으로 경기에 빈틈없이 대비한 다. 독일 축구가 아무래도 딱딱하다는 지적은 이 때문이다.

독일 축구와 달리 브라질 축구는 플레이가 자유롭다. 선수들은 서커스단 의 곡예사처럼 신묘한 재주를 펼치기도 한다. 물론 브라질 축구도 현대적 인 축구 흐름을 타기 때문에 강력한 통제력을 지니고 있긴 하다. 그러나 화려한 개인기는 브라질 축구만의 독특한 밑바탕이다. 누가 뭐래도 브라 질 축구는 삼바 리듬을 타고 그라운드를 휘젓는 눈부신 공격이 트레이드 마크다. 선수 개개인과 팀 전체가 약동감으로 넘친다.

이탈리아 축구는 폭발적이다. 참을성 있게 철저히 수비를 펼쳐 상대를 피 로하게 만든 뒤, 기회가 나면 그동안 축적해둔 에너지를 단숨에 폭발시켜 골을 집어넣는다. 이탈리아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초반에는 화련한 맛 이 전혀 없다. 그러나 상대가 페이스에 말려들었다고 판단하는 순간, 세 계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화려한 플레이를 펼친다. 키신저는 그 폭발력을 이렇게 분석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오랜 영고성쇠 속에서 생사를 건 치열한 싸움에서는 막판 고비를 위해 힘을 비축해둬야 한다는 신념을 키 워왔다. 그들의 축구에는 그런 신념이 반영돼 있다.”

축구의 발상국인 영국은 지나치게 틀에 박힌 축구를 한다. 축구의 조국이 라는 자부심 때문인지 고전적인 플레인만을 고집한다. 공을 상대 문전으 로 힘껏 차내고 전력으로 달려가 공격하는 게 영국 축구의 오랜 특징이다 . 이른바 킥 앤드 러시다. 이 때문에 현대 축구의 가장 큰 특징인 지역방 어를 뚫는 패스의 다양함을 개발하는 데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키신저는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국가대항 스포츠로서 축구가 가장 알맞다 고 주장한다. 국민성을 배경으로 개인의 기량과 팀워크, 전략적인 감각의 세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뛰어난 분석이다.

고두현/스포츠평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