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김종필, 또 곡예 벌인다

(사진/`주가 높이기'를 시도한 JP.그러나 `지지율 저하' 따위의 역효과에 직면해 있다.)

JP의 의도는 무엇일까.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안양만안 보선에서 승리하자마자 12월 대선 ‘폐기 ’와 김영삼 대통령 임기 내 내각제 개헌을 들고 나왔다. 김영삼 대통령 이 ‘결단’만 내리면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날로부터 40일 전까지 개헌을 마치고 내년 2월25일 내각제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눈길 한번 확 끌어보자”

JP의 제안은 일단 집권당이 겪고 있는 미증유의 위기상황 속에서 뭔가 틈 새를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생겼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최소한의 여당 고정표라는 20%를 밑돌아 14∼15%까지 떨어진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 의 지지율. 후보교체론이 당내 쟁점이 되고 있는 현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당선 가능성은 높아지고, 김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은 흔들리 고…. 이런 마당에 김 대통령도 더이상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으리라는 판단이다.

게다가 자민련 내에서는 9월 말로 잡힌 DJP 단일화 협상시한을 앞두고 ‘ 단일화 반대파’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단일화=JP의 양보 '라는 등식이 기정사실화하면서 JP의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다.

JP는 이런 상황에서 연내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한 여권과의 협상이 훌륭 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연합공천에 힘입은 안양만안 보 선 승리의 여파로 손쓸 틈도 없이 단일화 물결이 일어날 가능성을 차단해 야 했다”는 이동복 총재비서실장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JP 구상’의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이에 대한 여권의 반응은 일단 부정적이다. 청와대와 신한국당 모두 “김 대통령 임기중 개헌불가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반응들이다. 흥미로 운 것은 이번 카드가 지난달 말 KBS TV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화끈 하게 치고 나갈’ 소재를 찾던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발전한 것이란 점이다. 따라서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김 대통령에게)이런 뜻을 전 달했다”(JP, 지난 9월5일 당사 기자간담회)는 말과 달리, 여권과의 구체 적인 교감의 흔적도 거의 없어보인다.

또 JP의 제안처럼 연내 내각제 개헌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관측이다. 대선을 1백일밖에 앞두고 있지 않은 데다 김 대통령이 JP의 주문대로 먼저 국민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선도한다는 위험부담을 안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이회창 대표와 김대중 총재, 독자출마설이 나도 는 이인제 경기지사 등의 격렬한 저항도 예상된다.

당 안팎에서는 이에 따라 기존의 DJP 단일화와 병행해 대선 뒤 내각제 개 헌을 매개로 여권과의 연대 가능성도 열어두는 ‘맞보기 행보’를 JP가 예고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선 뒤 내각제 개헌이라면 여권도 딱히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이 대표는 ‘국민대통합론’을 통해 모든 정 치세력과의 연대 입장을 이미 밝혔다. 이 대표 측근들은 JP와의 협상 가 능성을 겨냥해 정강정책에서 대통령 중심제 조항을 빼는 방안을 검토했으 며, 이 대표쪽의 백남치 의원이 JP의 ‘복심’으로 알려진 김용환 자민련 부총재를 찾아가 연대 의사를 타진한 바도 있다.


단일화 협상파들 “걱정없다”

JP와 여권의 대선 전 연대가 이뤄진다면 대선구도는 근본적으로 뒤바뀐다 . 이 대표쪽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기사회생할 수도 있다. 여권 주도의 반DJ연합의 출발점이 되면서, 3당합당을 통해 ‘DJ 포위전선’을 형성한 92년 대선구도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권과의 협상 역시 부담은 만만치 않다. JP가 그동안 ‘오만과 독선에 가득 찬 신한국당 정권의 심판과 정권교체’를 외쳐왔기에 우선 명분이 약하다. 3당합당 이후 처절하게 ‘배신’을 당해본 악몽도 떨치기 어렵다. 자신의 출마 포기를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JP를 그동안 괴롭혀왔던 지지율 저하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주가 높이기 ’ 시도가 역효과를 낳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얘기다.

당내의 단일화 협상파들은 이에 따라 JP가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치다가 여의치 않으면 다시 DJP 단일화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선 전 내각제 개헌을 제안한 지난 9월5일의 기자간담회 직후 국민회의 창당 2주 년 기념식에 참석해 ‘후보단일화를 통한 공동정권’을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로써 JP의 곡예는 시작됐다. JP는 이런 이중 게임을 통해 자신 의 캐스팅보트로서의 역할을 극대화하려는 듯하다. 지난번 KBS토론에서부 터 JP는 “10월, 11월 들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줄타기 행보 가 능성을 예고한 바 있다.

박창식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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