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파괴력 잃어가는 조순

(사진/조순 총재의 지지율이 약세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다른 정치적 거인들에 의해 끌려다닐 가능성이 크다.)

‘격동’하는 대선정국에서 후발주자인 조순 민주당 총재의 행보에는 변 화가 없을까.

다른 3당 후보에 비해 조직과 자금면에서 턱없이 열세인 조 총재 입장에 서는 우선 각종 정치세력과의 연합을 통한 ‘세불리기’가 절실한 과제라 고 할 수 있다. 조 총재는 연대문제와 관련해 “철학을 달리하는 사람과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 것이 연대라 그런 것은 할 생각이 없다”며 무차별 적인 합종연횡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조 총재는 이와 함께 “내가 내세운 정치철학과 비전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총재의 이런 발언을 현실정치적으로 해석하면 결국 여든 야든 자신을 중심으로 한 연대를 추 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통령과의 제휴에도 촉각

이 때문에 조 총재쪽이 구상하는 연대의 ‘스펙트럼’은 거의 모든 정치 세력을 망라한다.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는 말할 것도 없고, 자민련 TK 세력, 김종필 자민련 총재, 신한국 민주계 등이 그 대상이다.

일찍부터 논의가 있었던 통추의 경우 사실상 합류가 무산된 것으로 보인 다. 통추는 조 총재가 자신들이 추진했던 야권단일화를 위한 ‘범국민후 보’를 걷어차고, 이기택 전 총재쪽과 손을 잡음으로써 사실상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조 총재는 야권단일화에는 관심이 없으며,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의 막 판 단일화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게 주변의 말이다. 조 총재쪽은 일단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의 야권단일화가 쉽지 않다고 보고 자민련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 나름대로 지지도를 확보하 고 있는 점을 토대로 이 지역 자민련 의원들과의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 려졌다.

조 총재쪽은 또 야권단일화가 깨질 경우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도 이른바 ‘J-J연합’을 성사시킨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하지만 김종필 총재의 내 각제를 매개로 한 ‘대선연기론’에 대해 조 총재가 “난국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의사를 명백히 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접 근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조 총재가 내심 관심을 두고 있는 대목은 김영삼 대통령과 신한국당 민주 계의 동향인 것으로 보인다. 8월16일 김 대통령과 조 총재의 회동 이후 불거진 김 대통령과의 제휴 가능성은 아직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없 다.

조 총재는 실제로 8월20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 대통령의 개혁실패에 대해 “집권여당이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잘 보필하지 못했다”며 김 대통 령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에서도 지난번 개각 직전 박세 일 사회복지수석이 조 총재에게 찾아와 총리직을 완곡히 제의했던 점으로 미루어 조순 카드를 검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청와대와 민주계가 조순을 ‘대타’로 내세울 가능성 은 그다지 크지 않다. 9월 ‘태풍정국’ 변화의 중심은 아무래도 이인제 경기지사이기 때문이다. 조순 카드는 이인제 전 지사 문제가 어떤 형태로 든 정리되기까지 그 파괴력에서 부차적인 종속변수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 다. 민주당의 한 의원이 “이인제 지사가 지사직만 내놓아도 조 총재의 지지도는 추락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조순 중심의 대연합에 회의적 시각

조 총재가 그리는 ‘큰 그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결국은 조 총재가 갖고 있는 잠재력의 문제와 연결된다. 연대가 이뤄지기 위해서 는 후보 본인의 경쟁력이 최우선의 요건이기 때문이다. 대선출마 선언 직 후 20%대를 상회했던 조 총재의 지지도가 최근 ‘거품’이 빠지면서 10% 대로 하락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이기택 전 총재에 ‘더부살이 ’하는 형국으로 비칠 정도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 총재를 중심으로 ‘구심력’이 형성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따라 서 조 총재 중심의 ‘대연합’ 구상은 현재로서는 구상 자체로 끝날 공산 이 크다.

반대로 조 총재의 대선 파괴력이 약해져감에 따라 조 총재나 민주당이 다 른 정치세력에 ‘흡수’당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고 하겠다. 실제로 벌써부터 이인제 경기지사 주변에서는 자신들쪽으로의 민주당 단일화 얘 기가 흘러나오고 있으며, 신한국당쪽에서도 민주당과의 대연합 구상이 끊 이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민주당 주변에서도 신한국당 후보와의 단일화 얘기가 거론되고 있다. 조 총재가 9월 말까지 지지율에서 약세를 계속할 경우 민주당과 조 총재의 정치적 운명은 다른 정치적 거인들에 의해 끌려 다닐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백기철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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