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제2의 3당합당 시도하는가

“대선구도 새 판을 짜라. 그리하여 선두 김대중후보를 역포위하라.”

연말 대선을 앞둔 여권에 비상이 걸렸다. 7월21일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 회창 후보가 당선됐을 때만해도 대선 승리는 따놓은 당상으로 여겼던 여 권의 상황이 이처럼 극단적인 처방을 추진하는 이유는 물론 여당 후보인 이회창 대표의 지지율 하락이다. 또 하락한 지지율이 통상적인 방법으로 는 반전의 기미를 거의 보이지 않는 점은 이 처방의 필요성을 강화하고 있다. 사실 여권의 인식은 이미 경기지사직을 사퇴한 이인제 전 지사의 독자출마 움직임 등의 분열 양상과 겹쳐 현구도대로면 대선은 해보나마나 질 것이라는 필패의 분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확고부동한 지지표에 비해 여권표는 앞으로 플러스 알파는 고사하고 오히 려 ‘다양하게’ 분산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후보교체론은 아직 소수 의견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는 여권의 흐름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후 보교체론이고 다른 하나는 이 대표 중심 단합론이다. 후보교체론은 말 그 대로 이회창 후보로는 승리가 힘든 만큼 다른 사람으로 빨리 바꿔서 선거 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으로, 서석재 서청원 의원 등 비주류 민주계 의 원과 이 전 지사쪽 사람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이 후보의 지지도가 떨어 진 것은 당이나 정부 탓이 아니라 바로 이 후보 본인에게 원인이 있는 만 큼 후보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여권이 일사분란하게 이 후보를 밀어준다고 해서 병역문제가 해결되고 이 후보의 지지도가 올 라가겠느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후보교체론은 일단 정치적인 명분과 현실적인 실현가능성 문제에 부딪혀 소수 의견으로 몰려있는 상태다. 자유경선으로 뽑은 후보를 법적 인 하자가 없는데도 ‘거세’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의 일반원칙에 어긋난 다는 정치적 명분이 더 힘을 얻은 때문이다. 또 설령 후보 교체라는 정치 적 쿠데타를 감행하려해도 후보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방 법이 없는데다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충돌은 분당사태로 이어져 패가망신 만 할 뿐이라는 우려가 확산됐다. 후보교체를 하더라도 현재 상태의 여권 세력은 그대로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이 경우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단독질주는 결승점까지 계속되리라는 게 여권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청와대의 ‘후보교체 불가론’이나 김윤환 고문의 ‘이회창 중심단합론’ , 이한동 고문의 ‘정권재창출론’ 등은 모두 이러한 인식에서 제기됐다. 결국 여권의 기류는 한가위 연휴 전에 이 후보 중심으로 다시 한번 힘을 모아 나가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셈이다. 9월8일의 전국 지구당위원장 및 의원 연석회의와 청와대의 연찬회 등이 모두 이회창 후보 중심의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 중심단합론’이 여권 내부에서 대세를 잡았다고 해서 여 권의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즉, 이인제 지사의 출마 움직임이 계속되 고 있는데다 설령 이 지사가 주저앉는다고 해서 이 후보의 지지율이 한가 위 연휴 이후 상승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노 사면 파동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이 후보의 지지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유일한 길은 ‘여권 후보단일화’

이러한 상황에서 여권이 구상하고 있는 카드가 바로 ‘판 흔들기’다. 현 재 예상되는 이회창-김대중-김종필-조순 후보의 4자 구도나 이인제 지사 가 가세하는 5자 대결 구도를 흔들어 새판을 짜자는 것이다.

4자 혹은 5자 대결은 결국 1명의 야당 후보 대 여러 명의 여당 후보가 다 투는 ‘1야(野) 다여(與)’ 구도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김 종필 후보나 이인제 지사의 경우 기존 여권표의 이탈이라는 데 이견 없으 며, 조순 후보의 민주당 지지표도 여권 성향의 표가 상당수라는 분석이다 . 특히 자민련의 김종필 후보가 야권 후보단일화를 통해 김대중 후보를 지지할 경우 단순히 기존 여권표의 분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알토란같 은 여권표를 야권에 고스란히 보태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계산이다. 따라서 여권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고 있는 방안은 현 재 여러 명으로 나뉜 여권 후보군을 하나로 합치는 ‘여권 후보단일화’ 다. 이른바 ‘보수대연합론’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선두주자인 김대중 후보를 꺾기 위해서는 여러 곳으로 흩어진 보수세력을 다시 끌어모으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엔 김종필 후보는 물론 조순 후보까지 끌어들 이고, 통추 세력과 박태준 의원의 영입까지 포함돼 있다. 제2의 3당 합당 인 셈이다. 신한국당의 김철 의원은 “이인제 경기지사가 독자출마를 선 언하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보수세력쪽에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날 것” 이라며 “연말 대선 이전에 현재의 대선 판도를 단순화하는 움직임이 가 시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물론 보수대연합론은 아직 구상 단계에 불과하다. 이회창 후보가 10월까 지도 4자나 5자 대결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할 경우 이판사판으로 추진할 최후의 카드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은 이미 여권의 대세로 자리를 굳혔다. 이한동 의원 등 비주류가 처음 제기한 이래 최근에는 이 회창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인 김윤환 의원까지도 이를 수용한 것이다.

그의 한 핵심측근은 “일단 이 후보 중심으로 최선을 다하되 10월까지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판을 새로 짤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그것은 바로 보수 세력의 재결집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고문이 8월6 일 일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번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 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후보교체론을 비판하면서도 “당이 단결 해서 노력해봐도 안 될 경우 그때 가서 이러저러한 말들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한 것도 그러한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돼왔다.


JP도 신호 보냈다

청와대나 이회창 대표쪽도 보수대연합론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여권에의 협력 가능성을 비친 JP의 9월5일 제안 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제의가 있다면 당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 는 반응을 초기에 보였다. 자민련과의 연대에 대한 속내를 슬쩍 비춘 셈 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얼토당토않는 말’이라고 일축했던 그들이었 다.

이 대표가 얼마 전 “국민회의와 자민련, 민주당, 통추 등 기존 정파를 떠나 뜻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대통합의 정치를 펼치겠다”며 ‘대통합의 정치’를 표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측근인 황우여 의원은 “대통합 정치를 언급한 것은 당장 정파간 연합이나 연대를 하자 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에는 여러 함축과 여백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상황 변화에 따라 자연스런 정치적 결합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 다. 이 대표도 혼자 힘으로 집권이 어렵다면 어차피 연대를 모색할 수밖 에 없다.

실제로 이 대표쪽은 우선 자민련을 향해 상당한 노력과 정성을 쏟고 있다 . 백남치 의원이 얼마전 김용환 의원을 만나 연대를 타진하는 등 분위기 조성에 노력한 것은 그 실례이다. 이 대표쪽은 특히 JP의 ‘내각제 개헌 조건부 협력 제안’은 내각제 실현에 무게가 있다기보다는 여권과의 협력 가능성을 비친 데 의미가 실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황우여 의원은 “ 내각제를 하자는 것은 김종필 총재의 지론으로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면서 “이를 매개로 여권과 협력 가능성을 비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황 의원은 또 “김 총재의 제안은 어쨌든 전날의 안양 만안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우리쪽의 충격을 상쇄시키주는 것으로 어쨌든 우리 로서는 고마운 일”이라며 “우리와 자민련은 양쪽에서 모두 서로 끄는 인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출신의 민주계 한 초선의원도 “그동안 야권 후보 단일화에만 매달려온 JP가 앞으로는 여권과도 ‘거래 ’를 할 수 있다는 신호를 공개적으로 보낸 것 아니겠느냐”며 “자민련 소속 의원들의 정서를 감안할 때 김 총재로서는 내각제라는 목표만 달성 될 수 있다면 김대중 총재보다는 여권이 손잡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제만 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도

보수대연합론이 추진될 경우 그 고리는 JP가 언급한 내각제 개헌 문제가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김윤환 고문이나 이한동 고문, 게다가 이수성 고문까지도 내각제로의 전환에 긍정적이다. 이회창 후보쪽은 물론 내각제 개헌을 이번 대선 전에 하자는 것은 아니다. 15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20 00년이나 15대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는 2003년에 내각제로의 전환을 추진 한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보수세력의 연대를 선언하면 된다는 것 이다. 이와 함께 차기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장 등의 권 한을 분산시키는 권력분점을 실천에 옮기면 된다. 이 경우 민주당도 끌어 들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여권의 판단이다.

이러한 보수대연합론의 밑그림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권력을 특정세 력이 계속 누리기 위한 정략적인 야합이라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가능 성이 높은 데다 각 정치세력간에도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민주계의 한 중진 의원은 “김종필 총재 등과 보수대연합을 이룬다고 해서 표에 무 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그 경우 조순 후보나 이인제 지사의 세대교체 주장이 더욱 돋보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쨌거나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선두 유지=정권 교체’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여권의 구상과 기득권세력의 의지는 12월18일 대선일까지 대선 구도를 뒤흔드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게 분명해 보인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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