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추적

사형선고 ‘스캔들’

(사진/SBS 97 톱탤런트 선발대회 해외촬영. 참가자들이 뒤늦게 성추행을 폭로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돼 있더라”라는 말이 현실로 나타나는 곳이 연 예계지만, 반대로 “자고 일어나니, 망했더라”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곳 도 연예계다.

스캔들 때문이다. 스캔들은 연예인에게 그대로 사형선고가 되기도 한다. 특히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사회적 범죄, 매춘 등의 경우에는 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가장 빈번한 스캔들은 역시 성추문이다.


“…카더라” 통신에 스타 생명 끝나기도

90년 탤런트 ㅎ씨는 매춘 스캔들에 휘말렸다. 나중에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경찰서에 붙잡힌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쳐지고, 언론에 대서 특필된 뒤라 사실과 관계없이 패가망신은 이미 끝난 뒤였다. 데뷔 당시 < 억새풀>, <첫사랑>(유인촌, 황신혜 주연의 86년 MBC드라마) 등에서 차분 하고 지적인 연기로 정애리의 뒤를 이을 기대주로 각광받았으나, 그 사건 으로 연예생활이 중단됐고, 나중엔 퇴폐 또는 푼수 연기를 맡았고, 그마 저도 지금은 잘 볼 수 없게 됐다. 당시 스캔들에 같이 휘말렸던 신인배우 ㅅ씨는 기업체 사장과의 매춘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도약 직전에서 그대 로 스러졌다. 당시 그는 사귀던 약혼자에게도 파혼당했다. 이후 그는 깔 끔했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에로 비디오물에 몇편 출연하더니 연예무대 에서 아예 사라졌다. 가수 유연실은 변호사 박경재와의 스캔들 이후 아예 에로연기자로 변신했다. 80년대 후반 막 뻗어나가려던 가수 이지연도 스 캔들로 연예계를 떠났다.

이런 성추문 스캔들이 아니더라도, 도덕적 지탄을 받을 만한 사건으로 어 려움을 겪는 이들도 많았다. 지난해 신은경씨는 음주운전 교통사고와 뺑 소니로 누구나 “이젠 끝났다”라고 말했다.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당시 그는 하락세였는데, 사건 이후 출연광고도 방송에서 모두 사라졌다. 최근 그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신, 영화 <창>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그의 재기는 성공할지도 모른다. 성추문에 대해선 가부장적인 순결주의 탓에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매몰찬 대중들도 도덕적 실수(?)에 대해선 쉽게 용서해주기 때문이다. 똑같은 전철을 밟은 가수 김흥국씨도 월드컵이 가 까워오면서 재기가 눈앞에 보인다. 이런 식의 대형 스캔들이 아니더라도 말 한 마디가 때론 큰 손실이 되기도 한다. 최근 한화는 자사 기업광고를 똑같은 컨셉으로 모델만 궁선영에서 황수정으로 바꿨는데, 궁선영이 한 인터뷰에서 가장 호감가는 기업을 LG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경우는 다 르지만 채시라도 이번 파혼 파동으로 방송 캐스팅과는 별도로 광고쪽에선 당분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인기 연예인의 매니저는 “며 칠 전 광고주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채시라와 계약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할 예정이었는데, 이미지가 흐려져 모델을 바꾸려고 한다’고 제의가 들 어왔다”고 털어놓았다. 채시라는 지난해 화장품·가구·통신·제과 등 1 6편의 CF에 출연했다. 김지호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양이었다. 그러나 지 난해 기록을 올해도 계속 유지하리라고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한편 스캔들에서도 남녀 불평등 구조는 여실히 드러난다. 남자스타와 달 리 여자스타들은 똑같은 스캔들로도 재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박중훈, 이승철 등이 거듭된 대마초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지만, 이번에 같은 혐의로 구속된 재키 림이 그들처럼 재기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여자스타와 남자스타의 스캔들 때도, 남자는 살아남더라도 여자 는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스캔들에 뿌리깊은 성차별

(사진/지난 90년 마약과 매춘으로 검찰에 구속돼 세간의 화제가 됐던 연예인들. 연예인 위상이 높아지면서 권력과 돈에 약하다는 말이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

연예인 스캔들의 역사는 깊다. 그리고 대중사회에서 스타가 지니는 위상 에 따라 그 형태도 조금씩 달라진다. 과거 연예인들, 특히 여자연예인들 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권위주의적인 사회구조와 연예인에 대 한 폄하가 온존했기 때문이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영화 <서울무지개>의 소재가 된 X양 사건과 같이 권력자들이 원하면 언제나 불려간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또 6공시절, 탤런트 ㅎ씨와 정치인 ㅂ씨, 그리고 탤런트 ㄱ씨 와 ㅎ그룹 회장이 더블데이트를 즐겼다는 것은 수뢰사건을 수사한 검찰조 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다른 한축으로는 재벌들과의 끊임없는 염문이다. ㅎ그룹 회장이 70년대 영화배우 ㅎ씨와 살면서, 그에게 강남의 아파트 4채를 터서 줬고, 80년대 에는 아들을 낳아준 가수 ㅈ씨에게 병원을 주고, 90년대에는 배우 ㅇ씨에 게 하룻밤 대가로 수천만원을 건넸다는 이야기는 재계에선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몇년 사이에도 탤런트 ㅇ씨가 또다른 ㅎ그룹 회장과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고, ㅅ그룹 회장이 가수 ㄱ씨와 함께 타고가던 승용차가 일 간지 경찰기자차와 부딪혀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관계가 들통났고, 그 는 또 탤런트 ㅅ씨와 하룻밤 자면서 ㅅ씨의 드라마 촬영을 펑크나게 했다 는 등의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재벌그룹 회장 부인 과 남자연예인과의 염문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탤런트 ㅂ씨가 ㄱ그룹 회장부인 ㅎ씨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수백만원을 받았고, 또 ㅈ씨는 ㅈ그 룹 회장부인과의 염문설이 파다하다는 둥 말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어디 까지 사실인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머리 싸매고 이니셜 주인공이 누구 인지 낱말 맞추기를 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일들은 연예인들의 위상이 낮았기 때문에 계속 빚어졌다. 과거 연예 인들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 많았고 연예생활에서 큰돈을 벌기도 힘들었다 . 예나 지금이나 연예계는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곳이고, 여기에 마담 뚜의 끈질긴 공세는 굳은 의지마저 녹여버리곤 했다. 또 아직도 ‘딴따라 ’ 피해의식이 남아 있는 연예인들에게 정·관계 실력자들과 친하게 지내 는 것은 신분상승의 느낌과 함께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다는 믿음 때 문에 상당히 매력적이다. 실제로 현 정권에서도 이른바 '여권 실세'와의 관계 때문에 스타덤에 올랐다는 연예인들의 이름이 곧잘 입방아에 오르기 도 했다.

그러나 연예인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수입도 늘어나면서 이런 식의 스 캔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젠 스타 한 사람의 수입이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액을 능가한다. 또 연예인들도 고학력에 부잣집 자제들이 늘어나고 있다. 옛날과 달리 재벌이 아닌 연예인들끼리의 결혼이 늘어난 이유도 연 예인의 위상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따라서 연예인들끼리의 스캔들 은 예전에 비해 훨씬 왕성하다.


몸값 올리기 위해 스캔들 조작도

여자탤런트 ㅂ씨가 동료 ㅊ씨와 사귀다가 ㅊ씨의 결혼소식을 듣고 방송국 분장실에서 기절했고, ㅂ씨는 가수 ㅇ씨와 차안에 있다 전경에게 들켜 파 출소에서 훈방조치를 받았고,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던 남자탤런트 ㅇ씨와 여자탤런트 ㅅ씨가 잠자리를 같이 해 ㅅ씨가 임신하자, ㅅ씨가 드라마에 서 물러났고, 최근 한 드라마에서 동시 캐스팅됐던 ㅅ씨와 ㅇ씨는 둘 사 이의 애정관계 때문에 캐스팅을 동시에 포기하기도 했고, 가수 ㅅ씨와 탤 런트 ㄱ씨는 연예인이 되기 전 대학동창으로 서로 동거하던 사이였다는 따위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의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 은 애초 불가능하다.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 연예계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세계를 일반인의 잣대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요즘 어느 직장인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특히 연예인들은 외롭고,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 종이다. 결국 동병상련을 느끼는 연예인들끼리 가슴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직 어리고, 감수성이 풍부한 이들이라, 때론 자신의 감정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다잡는 것은 매니저의 역할이다. 매니저들은 밤에는 직접 집에 바래 다 주고,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귀가 뒤 연예인이 매니저에게 집 전화번 호로 호출을 하게끔 한다. 심지어 삐삐 비밀번호를 알아내 음성메시지를 엿듣기도 한다.

그래도 스캔들은 터진다. 이때 매니저들은 무조건 시치미를 떼야 하고, 돈을 뿌려서라도 기사를 막아야 하고, 기사가 터지면 억울함을 호소해야 한다. 치명적인 내용이라고 판단할 땐 언론사와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 도, 소송을 벌인다. 사실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명확한 증거가 없기에 패 소할 가능성이 적고, 그렇게까지 강하게 발뺌해야 팬들이 믿어주기 때문 이다.

일부 매니저는 소속 연예인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스캔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신인 연기자가 유명 스타와 염문설을 흘려 주가를 그 스타의 급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얻으려는 의도다. 또 정치권에서 정적 을 마타도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다른 연예인들을 공격할 목적으로 만드는 스캔들도 있다. 한 매니저는 “단란주점 보도 출신이라거나, 담배 없이는 못 살 정도의 골초라거나, 어려서부터 본드 흡입하고 가출을 일삼 았다는 따위로 매도하는 식이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제 연예인들의 스캔들도 과거와 달리 세간의 주목을 끌지 못하 고 있다. 연예인 숫자가 늘어나면서 스캔들도 워낙 많은 탓에 일반인들이 점차 둔감해지고 있고, 자유연애가 일반화되면서 연예인들끼리의 애정문 제에 대해서 “그게 뭐 어쨌다는거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스캔들과 연예생활을 아예 별개로 보는 경우도 많다.


진정한 스타로 거듭나는 계기 되기도

한편 스캔들이 없는 스타도 진정한 스타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스타는 시련을 겪으면서 그 스타성이 더욱 견고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70년대 말 가수 혜은이는 스캔들을 달고 살았다. 톱가수의 유명세치고는 좀 지독했 다. 하지만 혜은이는 그 스캔들을 헤쳐나가며 80년대 초반까지 가요계 정 상의 자리를 꾸준히 유지해 나갔다. 그리고 90년대 최고의 스타 최진실을 둘러싼 스캔들은 또 얼마나 심했는가? 얼마 전엔 심은하가 꽤 심한 진통 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스캔들마저도 일부 스타에게만 국한된다. 스캔들 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연예인들이 대부분이다.

만 존재할 뿐, 거기도 사람사는 곳이다. 한겨레21

권태호·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25일 제 1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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