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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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단아한 산줄기가 포근한 두타산의 단풍. 계곡은 아우라지 골지천으로 이어진다.)
남녁에서 곧게 뻗어 올라오던 백두대간은 두타산(1352m)에 이르러 왼쪽으 로 크게 용트림하면서 오대산 설악산으로 솟구친다. 두타산은 한반도 등 뼈의 한가운데를 든든하게 받쳐 주는 성채에 비견된다. 두타산 정상에 서 면 앞으로 동해가 끝없이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삼척시와 동해시가 가물 가물 떠오른다.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면 영월 평창 내륙으로 완만하게 이 어진 단아한 산줄기가 포근하다. 발 아래 정선골에는 아우라지 골지천이 아리랑 가락만큼이나 구성지게 휘어돈다.
두타산과 형제처럼 위쪽으로 나란히 붙은 게 청옥산(1301m). 산 덩치 전 체를 가리킬 땐 그저 두타산으로 통하지만 나름대로 숨은 내력이 있다. 고려 고종때 이승휴는 벼슬도 마다하고 청옥산 산자락에 있는 구동 외가 댁에서 지내며 수천년 이 땅의 역사를 시로 훑는다. <제왕운기>의 마디를 채우는 7언체, 5언체의 장엄한 시는 그렇게 탄생한다.
아우라지 골지천이 구성지게 휘돌고
바로 북쪽엔 불교의 성지 오대산이 위풍당당한 산세를 뽐낸다. <삼국유사 >는 오대산을 일컬어 “땅의 관상을 보는 사람이 말하기를 이 땅의 명산 가운데 오대산이 가장 승지이니 불법이 길이길이 흥할 곳”이라고 적고 있다. 이 때문인지 오대산을 이루는 호령봉(1560m) 비로봉(1563m) 상왕봉 (1483m) 두로봉(1421m) 동대산(1433m) 다섯개 봉우리에는 석가, 관음, 문 수, 대세지, 지장보살의 현신이 있다고 한다. 오대산에 바둑알처럼 촘촘 히 사찰들이 박혀 있는 것도 그런 연유다.
우선 해발 1천2백m에 위치한 적멸보궁은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우리나라 4대 보궁 가운데 하나. 이 보 궁을 중심으로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이라 하여 예로부터 명당자리로 손꼽힌다. 부처의 진신이 상주하는 곳으로 신성시되고 가끔 영서가 일어난다고 하여 예불객 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비로봉 산자락엔 자장율사가 창건한 상원사가 자리잡고 있다. 오대산의 사찰들이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 새로 복원됐지 만, 상원사만큼은 전화을 피했다. 위로 1.2km 떨어진 적멸보궁을 참배하 러 오는 승려와 신도들 뿐만 아니라 참선을 하려는 전국의 선승들이 모여 든다. 월정사도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동대산에서 떠오르는 보름달 빛이 유난히 밝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지었다고 전해진다.
한강이 발원하는 우통수도 이곳 오대산에 있다. 풀섶 밑을 흐르는 작은 물줄기들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강줄기를 이루는 신비를 곱씹어보라. 오 대산 자체는 딱이 아름답다거나 매혹적이지 않지만 이런 사연들이 산의 신성함을 더한다.
(사진/설악산 대청봉을 뒤로 한 용아장성. 내설악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후덥지근한 속세에 묻혀 사는 사람들에게 설악산은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 다. 순결한 흰눈의 이미지 때문일까. 사실 설악산은 눈으로 이름난 산이 다. 옛날 문헌들은 “한가위에서부터 이듬해 하지에 이르기까지 눈이 스 러지지 않으니 그 이름이 설악”이라고 하고 “봉우리 위에 줄지어 솟은 바위 빛깔이 모두 눈빛이라 이름하여 설악”이라고 산 이름의 내력을 밝 히고 있다.
그러나 설악산이 제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이 전까지만 해도 설악산은 금강산의 장관과 위용에 가리어 은산(隱山)이라 불릴 정도로 숨겨져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만 해도 양양사람들이나 설악 이란 이름으로 불렀지, 인제쪽 사람들은 한계산이라 불렀다. 휴전선 때문 에 발굴된 남쪽의 금강산이라 할 만하다.
금강산의 위용·장관이 부럽지 않다
설악산에는 금강산 못지 않은 천장단애의 능선과 기라성처럼 많은 예봉,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숨은 부채꼴 모양의 계곡들이 무수하다. 계곡 곳곳 에는 담과 소, 그리고 폭포와 탕이 있고, 우리나라 계곡 중에서 가장 많 은 철제 등산로를 갖고 있을만큼 험함을 자랑한다. 산세를 보면 정상을 정점으로 긴 산줄기가 동서로 대청봉과 귀떼기청봉, 대승령을 잇고 있다. 정상에서 외설악쪽인 동북쪽으로는 화채능이 뻗어나가고, 내설악쪽인 서 북쪽으로는 공룡능과 용아장 능선이 갈라진다. 마치 불가사리가 X자로 진 을 치고 앉은 꼴이다.
이런 산의 오묘한 앉음새로 가야동, 구곡담, 천불동과 같은 계곡들이 실 오라기처럼 무수하게 퍼져 나간다. 여기에 화채릉 들머리의 토왕성 폭포 를 필두로 만포폭, 관음폭, 쌍룡폭, 염주폭, 천당폭 등 장쾌한 폭포들이 기암절벽 사이를 굽이쳐 흐르다 떨어지면서 계곡미의 극치를 이룬다. 그 래서 설악산에 한번 젖었다 나오면 그 한해는 내내 설악에 취해 산다고 산악인들은 말한다.
설악산은 그 험준함으로 인해 예부터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이면서도, 세 속의 권력 다툼에 등을 돌린 선비들이 숨어든 곳이기도 했다. 고구려와 신라가 각축을 다투던 곳도 이 산 언저리였고, 신라의 화랑들이 남모르게 심신을 단련했던 곳도 이 곳 설악산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전쟁의 피비린 내도 유독 이 산에서 혹심했다. 조선에 와서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 습이 숨어 들었고, 일제시대에는 만해 한용운이 설악산에 은거해 심신을 추스리며 <님의 침묵>을 일궈냈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1일 제 171호